제주투데이가 창간 19주년을 맞아 ‘제주대안연구공동체’ ‘인문숲이다’와 공동으로 제주개발사를 8회에 걸쳐 짚어보는 자리를 마련한 가운데, 김동현 제주민예총 이사장이 지난달 23일 강연을 하고 있다. (사진=박지희 기자)
제주투데이가 창간 19주년을 맞아 ‘제주대안연구공동체’ ‘인문숲이다’와 공동으로 제주개발사를 8회에 걸쳐 짚어보는 자리를 마련한 가운데, 김동현 제주민예총 이사장이 지난달 23일 강연을 하고 있다. (사진=박지희 기자)

"제주에서 이뤄진 개발은 도민의 기억이 국가와 자본의 폭력으로 치환되는 과정이었다."

제주시 삼도2동 소재 주차장. 이곳은 본래 도내 최초의 극장 '현대극장'의 자리였다. 1944년 개장 이후 70년만에 건물 노후화를 이유로 철거됐다.

현대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했던 연인, 예술발표회를 했던 학생 등은 건물이 사라졌음에도 근대 문화예술의 성지이자, 원도심이 갖고 있는 장수성을 증언했던 장소로 기억한다. 반면, 그 외 사람들은 평범한 주차장으로 인식할 뿐이다. 그리고 미래에는 주차장으로만 기억하는 사람이 더 많아질 것이다.

이처럼 장소가 사라진다는 것은 기억이 지워진다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국가와 자본의 개발로 인해 장소가 지워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제주투데이는 창간 19주년을 맞아 ‘제주대안연구공동체’ ‘인문숲이다’와 공동으로 제주개발사를 8회에 걸쳐 짚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지난달 23일 세 번째 강연을 맡은 김동현 제주민예총 이사장은 1970년부터 1980년대에 이뤄진 제주 개발을 심성사적 관점으로 바라봤다. 그는 개발을 '보편에 대한 욕망'에서 비롯된 것으로 봤다.

(자료= 김동현 제주민예총 이사장)
(자료= 김동현 제주민예총 이사장)

#. 보편주의에 대한 염원

제주도내 지식인들은 왜 개발에 저항하지 못했을까?

김 이사장은 저서 '오리엔탈리즘'으로 제국주의에 근거한 서양 위주의 사고방식을 비판한 팔레스타인 출신 영문학자 에드워드 사이드의 문헌에 주목했다. 서양인들이 동양에 갖고 있는 편견은 일본 제국주의 시절에도 등장했다는 설명이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저서 '권력과 지성인'을 통해 "지식인은 집단적 사고와 민족주의, 계급 등 특권 의식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자, 관습적 논리에 반응하지 않고 변화를 재현하는 것에 반응하는 자"라고 정의한다.

그러나 당대 지식인은 이와 정반대의 모습을 보였다. 일본의 식민 지배를 합리화하는 방법으로 '조선에 문명을 전달해준다'는 명분을 내세우는 등 식민지 체제에 옹호했다. 

'조선어 해소론'을 주장한 국어학자 현영섭과 '일지의 윤리'를 쓴 시인 김종환, '민족개조론'을 주장한 이광수 등이 대표적이다. 친일의 길에 제 발로 걸어들어간 것은 일본으로부터 인정받고 싶다는 갈망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김 이사장의 견해다.

김 이사장은 이같은 인정욕망은 1970년대를 비롯한 현재 제주사회에도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정치인들의 사고는 식민 지배 시절 당시 지식인들의 사고방식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 일본에서 중앙, 즉 서울로 바뀐 것 뿐이다. 

그는 "'탐라 천년의 정신'을 내세운 제주도는 남북을 뒤집은 지도를 가리키며, 제주가 변방의 섬이 아닌 대한민국의 중심이라고 치켜세운다"면서 "보편을 지향하는 욕망이 되풀이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료= 김동현 제주민예총 이사장)
(자료= 김동현 제주민예총 이사장)

#. 중앙 시선으로 재편성 된 제주 : 도로 건설과 관광단지 개발

김 이사장은 "1970년대 서울의 위치에 있는 권력은 왜곡된 시선으로 지방을 바라봤다"고 강조했다.

일주도로, 한라산 횡단도로 등 당시 제주의 도로개발은 지방의 고유한 사상과 생각, 관습, 전통을 서울의 시각으로 재편성하려는 시도였다는 의견이다.

김 이사장은 "당시 도로건설 및 서울권 대학의 학술조사결과 관련 보도가 쏟아졌다. 이는 일본이 조선에 철도 건설을 주도하고, 그 나라의 지식인들이 조선에 대한 학술조사를 다수 진행했던 모습과 겹쳐보인다"면서 "70년대 박정희 정권의 제주 개발 프로젝트에서도 일정 부분 답습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정희 정권의 개발은 제주의 지리적 환경만 바꾸는 게 아니었다. 문화적 기획도 치밀했다. 탐라미인대회와 전국민속경연대회, 현재 '제주 전통문화'로 불리는 허벅춤 등은 모두 1960년대 집권 당시 만들어졌다.

그는 "포크레인 등을 동원한 개발은 저항하기 쉽지만, 문화적·근대화적 개발이 도입되면 그 자체를 거부하기 어려워진다"면서 "박정희 정부가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제주지역의 경제성장 성과를 선전의 도구로 활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자료= 김동현 제주민예총 이사장)
(자료= 김동현 제주민예총 이사장)

70년대가 도로 건설의 시대라면 80년대는 관광의 시대다. 제주는 관광을 통해 비약적 성장을 이뤄냈다. 그러나 현 제주는 난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는 상황. 시작은 토지수용법이었다. 

43년이 지나도록 끝나지 않은 사업, 중문관광단지. 이는 현 제주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962년 공익사업에 필요한 토지의 수용과 사용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는 '토지수용법'이 제정된 이후, 중문관광단지 개발은 빠르게 진행됐다. 관광지 지정 공고가 내려진 1971년 이후 7년만에 공사가 이뤄졌다. 

토지수용법은 공공복리의 증진과 사유재산권과의 조절을 도모, 개발.산업의 발전에 기여한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명백한 규제였다. 토지 수용시 보상한다는 내용이 법률에 명시돼 있었지만 실질적 보상에 미치지 못했다. 이 법을 통해 토지수용의 주체가 국제관광공사로 확대되고, 관광단지 개발촉진법이 제정되기도 했다. 

1977년엔 중문관광단지 공사와 함께 신제주 개발이 시작됐다. 유흥업소를 억제하고, 전원도시로 만다는 목적이었지만 사실상 실패로 끝났다. 오히려 외지인들의 투기 수요를 불러 일으킨 계기가 됐다. 신제주 개발로 주민들이 대거 이사를 간다는 보도가 연일 나오기도 했다.

김 이사장은 "토지수용법은 철저한 국가 주도 기획이었고, 결국 또다른 강제 행사의 명분으로 자리잡았다"면서 "90년대 들어서는 '동양의 하와이'나 '국제자유도시' 등을 이야기 한다. 그 전에 이같은 개발이 도민의 심성을 어떻게 황폐화시켰는지 들여다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료= 김동현 제주민예총 이사장)
(자료= 김동현 제주민예총 이사장)

#. 제주답지 않다 : 사라지는 기억에 대한 위기감

'제주답다.' 우리가 이 문장을 자주 사용하는 이유는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제주가 '제주답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유가 무엇일까.

정치생태학자 아르투스 에스코바르는 개발을 '기억을 갖고 있는 장소를 지워버리는 폭력'이라고 정의했다. 김 이사장은 이를 인용, 개발로 인해 제주만이 갖고 있는 기억들이 망실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위기감으로 바라봤다.

그는 "개발이 한창 이뤄질 당시에는 우리도 폭력인지 몰랐다. '성장하면 잘 살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은 채 '가장 제주다운 것'만 남겨뒀다. 나머지는 지우고 새로운 것을 만드려고 했다"면서 "4.3의 억울한 죽음들만 기억되고, 3.10 총파업의 원초적 역동성은 이제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이 대표적인 예"라고 강조했다.

이는 4.3에 국한되지 않는다. 서귀포 예래휴양단지와 헬스케어타운, 월정리 카페거리, 섭지코지 내 아쿠아플래닛 등 관광 목적으로 만들어진 모든 곳에 해당된다. 과거 그 땅에 기대어 삶을 이어나갔던 제주인들의 기억은 이제 없다.

김 이사장은 "4.3은 투창처럼 우리가 저항하고자 했던 외부적 힘이라면, 개발은 성장주의를 제주에 스스로 새기는 것을 기꺼이 감소했던 비수다. 두개의 칼날이 제주가 갖고 있던 장소와 사람을 지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면서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라진 장소를 되살리고, 그 곳에서 잃어버렸던 기억들을 만나는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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