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의 본질
거의 끝나간다. 도지사가 임명하는 기관장 인선 말이다. 아직 몇 ‘자리’가 남긴 했다. 근데 그 ‘자리’의 본질이 뭔가? 선거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자에게 내리는 전리품인가, 아니면 시민을 위해 봉사하라는 머슴의 역할인가?
내가 너스레를 떨고 있는 건가? 다 알면서 순진한 척, 뻔한 원론을 꺼내고 있는 건가? 좋다. 선거 공신 챙기기라는 현실을 인정하자. 선거 때 투척한 투자금(?)을 회수하려면 당선 직후부터 이권에 개입할 가능성도 있다. 물론 티 나지 않게, 법망에 걸리지 않는 선에서. 그러니 인선 자체가 거래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세상이 아무리 그렇다 해도 원칙은 있어야 한다. 이권 이전에 도덕성이다. 논공행상 이전에 전문성이다. 특권의식이 아니라 머슴 의식을 가진 자라야 한다. 권력을 이용하여 이권 챙기기에 나설 자가 아니라, 맡겨진 권한을 활용하여 시민 복리에 헌신할 사람이어야 한다. 단지 연줄 잡기만으로 이뤄진다면 그건 부패다.
그걸 방지하고자 만든 제도가 ‘인사청문회’다. 하지만 일련의 인사청문회가 끝나면서 ‘맹탕 청문회’, ‘들러리 청문회’, ‘청문회 무용론’이 나오고 있다. 괜히 나온 말들이 아니다.
불신을 자초하는 도의회
제주시장과 서귀포시장은 둘 다 농지법 위반 의심을 받았다. 제주시장 강병삼은 이에 대해 “부끄럽다”라며 과오를 시인했다. 반면 서귀포시장 이종우는 설득력 없는 변명으로 일관했다. 직접 농사를 짓지 않으면서도 농업직불금 40만 원 가량을 받았고, 농민수당도 신청했다. ‘40만 원을 챙겨야 할 정도로 삶이 팍팍했구나’ 생각하면 애잔해지기도 하지만, 그런 값싼 동정심이 고위 공직자 인선에 작용해선 안 되는 게 원칙이다.
그런데도 도의회는 제주시장 부적격, 서귀포시장 적격 의견을 달았다. 제주시장 강병삼은 해당 투기 토지에 대해 이해충돌 가능성이 있어서 부적격, 서귀포시장 이종우의 경우 문제 해결 의지가 보이므로 적격이라고 했다. 헛웃음이 나온다. 이게 적격, 부적격을 나눈 기준이라고?
황당하다. 내 눈에는 똑같아 보이는 의혹이다. 오히려 과오를 시인한 강병삼이 더 나아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도 도의회의 판단은 달랐다. 문제는 두 시장에게만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도의회 역시 스스로 불신을 자초하고 있다. 도덕성, 전문성보다 더 큰 기준이 작용하고 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친소관계? 영향력 있는 인물의 입김? 나는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도지사 오영훈은 이 둘을 모두 시장에 임명했다. 도의회의 ‘부적격’ 의견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들러리 청문회’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선화 ㈜제주국제컨벤션센터(이하 ICC제주) 대표이사 사장의 경우는 논란이 더 심했다. 도덕성과 전문성 모두 문제가 되었다. 제주MBC 재직 시절 방송 출연자들과 작가들에게 지급되어야 할 출연료와 작가료 등을 지급하지 않았다는 의혹, 그와 관련해 징계를 받았는데, 그 징계 사실에 대해 거짓 답변을 했다는 것이 도덕성 관련 내용이다.
컨벤션 산업에 경험이 없기에 전문성 부족이 지적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도 도의회는 적격 판정을 내렸다. 도덕성과 전문성은 그다지 중요한 요소가 아닌가 보다. 더 결정적인 요인이 있다는 의미다. 이번에도 역시 나는 그 요인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암튼 불신은 도의회 몫이다.
여기서 국민의힘 제주도당이 ‘분노, 비통’의 심정으로 이선화 임명 반대를 외친 것은 더 웃긴 코미디다. 국민의힘 당을 배신하고 오영훈 도정으로 넘어간 것에 대한 분노는 이해하겠으나, 그들이 이선화의 도덕성을 문제 삼을 처지는 아닌 것 같다. 그렇게 도덕성에 문제 있는 인물을 국민의힘 당에서는 훌륭한 도의원으로 발탁해 쓰지 않았던가. 그때는 조용히 있다가 왜 이제 와서 이선화의 도덕성을 문제 삼는가?
양덕순 제주연구원장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전형적인 ‘폴리페서’라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그런 만큼 공정성과 객관성을 담아낼지 의문이다. 대뜸 제2공항 찬성 의견을 드러내는 것만 봐도 그렇다. 그런데도 큰 고민 없이 도의회는 적격 의견을 달았다. 이러니 ‘맹탕 청문회’뿐만 아니라 ‘도의회 들러리론’까지 나오고 있는 것이다.
도의회의 항변
물론 도의회도 할 말이 있다. 맹탕, 부실, 들러리의 원인이 도의원들의 도덕성 결여에서 기인한 게 아니라, 자료 확보의 한계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부실한 자료나마 검토할 절대적 시간이 부족하다는 항변 또한 일면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면죄부가 될 순 없다. 의혹이 사실로 확인되어도 슬그머니 ‘적격’ 의견을 내는 경우가 많다, 비슷한 의혹을 받는데도 판정은 다르게 나오는 경우가 있다. 때로는 더 심한 의혹을 받는 자가 적격, 덜한 자가 부적격을 받기도 한다. 기준이 고무줄이다. 이는 시간과 자료 확보 한계로는 설명이 안 되는 내용이다. 기준에 일관성이 없다.
또한 도덕성의 경우, 소위 ‘작은 흠결론’으로 넘어가려는 경향이 많다. 작은 흠결 때문에 훌륭한 능력자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물론 사람은 완벽하지 않다. 그러니 작은 흠결은 용인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도 사람에 따라 ‘작은’의 기준이 달라진다. 그러니 도민 합의의 기준을 세워야 한다. 때에 따라 달라지는 ‘작은’이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과오가 명백히 드러났을 때의 반응도 살펴야 한다. 과오를 시인하는 경우와 끝까지 우기는 경우로 나눠야 한다. 작은 흠결은 용납할 수 있어도 거짓말을 일삼는 자는 걸러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익 환수 등 추가 조치를 실질적으로 이행하는가에 대해 끝까지 추적하고, 그에 대해 책임지게 하는 게 필요하다. 그 순간만을 어물쩍 넘기려는 사람들을 많이 봐서 하는 말이다.
고의숙의 투트랙 방안
도덕성과 전문성 이외의 요소가 적격, 부적격을 결정해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서 시스템을 보다 촘촘하게 만들어야 한다. 기준은 언제나 일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교육의원 고의숙은 이에 대해 투트랙 방안을 제시했다. 먼저 비공개 도덕성 검증을, 그리고 그 검증을 통과한 자에 한해서 공개 인사청문회를 실시하는 방안이다. 두 번째 단계인 공개 인사청문회에서는 정책 검증이 이뤄진다. 다시 말해 1차 도덕성 검증 그리고 이를 통과한 자에 한해 2차 전문성 검증을 하자는 주장이다.
1차 도덕성 검증은 굳이 도의회에서 하지 말자고 한다. 도의회로 넘기기 전에 제주도 자체에서 비공개로 하라는 얘기다. 이를 위해서는 도민이 합의하는 기준과 지표가 먼저 필요하다. 그리고 심사는 도지사의 복심들이 하는 것이 아니라 배심원들이 해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거르게 된다.
이 절차를 통과한 자들만 도의회 인사청문회로 넘기는 것이다. 그리고 그 청문회에서는 철저하게 능력 검증만을 한다. 이 경우 도의원들의 전문성 또한 동시에 상승하게 된다. 전문성 검증을 하려면 질의를 하는 도의원 스스로의 전문성도 높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여 진행하는 인사청문회, 그런 인사청문회라면 맹탕, 들러리라는 소리는 듣지 않을 것이며, 또한 도의회는 도민의 신뢰를 다시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술안주로서의 도의원은 이제 그만 할 때도 되었다. 존경받는 도의원들로 거듭나기를 충심으로 기원하다.
이영권
역사사회학을 전공하고 《새로 쓰는 제주사》, 《제주역사기행》 등을 저술한 이영권 박사는 제주4.3연구소, 제주참여환경연대 등에서 활동한 바 있고, 일선 학교현장에서 역사 교사로 오랜 시간 교편을 잡았다. 올해부터 제주투데이 논설위원으로 위촉된 이영권 위원의 칼럼은 매달 두번째 금요일 게재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