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의 징후들

위기는 갑자기 닥치는 게 아니다. 사전에 신호를 보낸다. 한계에 도달했다는 경고다. 그렇다면 그 신호는 어떻게 파악할 수 있을까? 상식적이지 않은 일들이 이어지는 것, 그게 신호다. 납득하기 어려운 일들 말이다.  

# 1. 아란길 공영주차장 복층화 사업에 20억을 들여 19면의 주차장을 확보했다. 주차면 1개당 평균 1억 원을 썼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한 해 500억 원의 주차장 건설비용이 편성되고 있다. 납득하기 어렵다.

# 2. 버스 준공영제 관련, 보조금 비리가 끊이지 않는다. 비리는 논외로 하더라도, 버스의 수송 분담률은 14%에 그치고 있다. 시민들이 버스를 외면하고 자가용 승용차를 이용한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매년 1000억 원 이상의 혈세를 여기에 쓰고 있다. 납득하기 어렵다.

# 3. 대중교통으로 모든 생활을 15분 이내에 해결하겠다던 ‘15분 도시’ 공약은 소외 지역 문화시설 확충으로 대체되고 있다. 건물 짓고,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으로 때우겠다는 말이다. 납득하기 어렵다. 애당초 실현 불가능한 공약이었다. 지역 거점에 의료, 교육, 편의시설이 없다면 기존 도심을 찾아갈 수밖에 없다. 행정과 재정에서 철저한 지역 분권 없이는 불가능하다.   

# 4. ‘탄소 없는 섬’을 위해 수망리에 마라도 2.7배 면적의 태양광 사업을 벌일 모양이다. 약 3만8천 그루의 나무를 베어내야 한다. 자동차가 내뿜는 탄소를 흡수하는 건 숲이다. 그런 숲을 없애고 ‘탄소 없는 섬’을 만들겠다는 말이다. 납득하기 어렵다. ‘Carbon Free’보다는 지목 변경을 통한 부동산 가격 상승을 도모하는 것은 아닌지, 나는 의심한다. 태양광 발전은 다수의 옥상지붕형으로 가야 한다. 

땜질식 처방이 한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근본적 전환이 필요하다. 물론 근본적 전환은 어렵다. 기존 사회의 틀을 흔들어야 하니 기득권자들은 극렬하게 저항할 것이다. 일반 시민들도 낯선 일은 두려워한다. 

9유로 티켓

두려움은 당연하다. 가보지 않은 길이 편할 리는 없다. 하지만 선발대가 아니라면 조금은 걱정을 내려놓을 수 있다. 유럽의 성공 사례들을 벤치마킹하면 된다. 

한달간 대중교통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독일 9유로 티켓. 
한달간 대중교통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독일 9유로 홍보 포스터. 

독일 정부는 지난 3개월 간, 한 달 9유로 티켓으로 기차, 지하철, 트램, 시내버스를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정책을 펼쳤다. 독일철도(Deutsche Bahn) 이사인 Evelyn Palla는 이 실험이 ‘완전한 성공’을 거두었다고 평가했다. 

180만 톤의 탄소가 사라졌다. 이는 35만 가정이 배출하는 탄소량이라고 한다. 포츠담 대학 연구원들도 7%의 대기질이 향상되었다고 발표했다. 많은 사람들이 자가용 승용차를 놔두고 대중교통을 이용한 결과다. 

대기질만이 아니다. 서민 경제에 큰 도움이 된 건 당연하다. 9유로는 우리 돈 1만2천~1만3천 원이다.

독일의 실험이 끝나자 이제는 스페인 정부가 나섰다. 올해 말까지 4개월 동안의 무상철도계획을 발표했다. 물론 통근자를 주요 대상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관광객도 조건이 맞으면 이용할 수 있다.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경우 반경 50㎞ 이내는 기차 무료 이용이 가능하다. 지하철, 버스, 트램은 최소 30%, 카탈루냐 지역은 50%가 할인된다.

예산은? 우리는?

당장 반론이 나올 것이다. 돈이 어디 있냐고? 우리 현실에 맞지 않다고. 스페인 정부는 은행과 에너지 회사로부터 징수한 횡재세(windfall_횡재라고 할 만큼의 이익을 낸 기업에 추가로 물리는 '초과이윤세')를 활용할 것이라 한다. 물론 초대기업과 초부자들에 대해 13조 원 감세를 추진하는 윤석열 정부는 할 수 없는 정책이다.

제1회 추가경정 예산안 심사에 앞서 제주도의회가 7월 21일 개최한 제408회 본회의에서 인사말을 하는 오영훈 제주도지사 (사진=제주도의회)
제1회 추가경정 예산안 심사에 앞서 제주도의회가 7월 21일 개최한 제408회 본회의에서 인사말을 하는 오영훈 제주도지사 (사진=제주도의회)

하지만 오영훈 도정은 윤석열 정부와는 다를 것이라 기대한다. 정권을 잡는다는 것은 세금을 어디에 쓸 것인지 배분하는 권한을 갖는다는 의미다. 의지만 있다면 못할 것도 없다. 관행대로 예산을 집행하기 때문에 안 되고 있을 뿐이다. 관행을 바꾸면 된다. ‘15분 도시’처럼 준비 안 된 정책에 헛돈을 쓰지 않으면 된다. 예산 집행의 우선순위를 다시 조율하면 가능하다. 

이미 한계의 징후들이 드러나고 있기에, 이제 과감한 발상의 전환을 시작해야 한다. 물론 대전환은 철저한 준비가 있어야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선 행정 철학을 새로 정립하고, 그에 따른 원칙을 세워야 한다. 서민 생계 안정과 환경 보존에 방향을 맞추고 우선순위를 정하면 된다. 

여기서는 글 앞부분에서 지적한 교통과 환경만을 언급하겠다. 최근의 교통 예산을 먼저 살펴보자. 자동차 구입 보조와 기반 시설 확충에 전체 교통 예산의 76.1%를 사용해 왔다. 반면 대중교통에는 20.4%, 보행에는 0.2%, 자전거에는 0.25%만을 배정해 왔다. 

이제 이것을 완전히 바꾸어야 한다. 주차장 1면에 1억 원을 투입하는 게 정상적인가? 14% 분담률에 그치는 준공영버스에 매년 1000억 원을 지원하는 게 합리적인가? 불법 주차로 좁아터진 도로는? 서울 못지않은 교통 정체는? 기존의 땜질 처방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

보행자-자전거-대중교통-자가용 순으로

원칙을 세워야 한다. 자가용 중심에서 대중교통 중심으로 바꾸는 것이다. 그 전에 보행자와 자전거에 대한 배려가 우선 필요하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의 '자전거 도로와 보행자 도로'. 자전거 도로는 턱이 없고, 아스콘 포장이 잘돼 있으며, 보행자 도로는 가로수가 우거져 걷고 싶게 만든다. (사진=이영권)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의 '자전거 도로와 보행자 도로'. 자전거 도로는 턱이 없고, 아스콘 포장이 잘돼 있으며, 보행자 도로는 가로수가 우거져 걷고 싶게 만든다. (사진=이영권)

물론 걷는 일이 귀찮고 피곤할 수 있다. 그러나 발상을 전환하자. 굳이 올레길을 찾아가지 말고, 도심을 올레길로 만들어 보자. 그러기 위해선 우선 가로수가 풍성하게 조성되어야 한다. 걷고 싶게 만들어야 사람들은 걷는다. 

또한 가칭 ‘뚜벅이 수당’을 지급하자. 성인 연령이 되어 자가용을 등록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일정 금액의 수당을 지급하는 것이다. 정당성이 있다. 뚜벅이들은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다. 게다가 교통 혼잡을 유발하지 않는다. 그에 대한 보상은 당연히 이뤄져야 한다. 관행처럼 0.2%의 예산편성으로는 안 된다.

다음은 자전거다. 네덜란드 수상은 매일 자전거로 혼자 출근한다. 홍보용이 아니다. 생활이다. 우리의 행정 관료들과 의원들은 이러면 안 될까? 자전거로 출퇴근해보면 현재 자전거 도로의 문제점을 곧바로 파악할 수 있다. 

파인 곳이 많다. 교차로에선 어김없이 턱이 나타난다. 그러니 불편하다. 불편하니 차도로 내려오게 된다. 위험과 교통 혼잡은 당연한 결과다. 자전거를 집어넣고 다시 자가용으로 돌아간다. 어쨌든 자전거족들에게도 탄소 배출 책임이 없으니, 자전거 구입 등에 예산 지원을 생각해볼 만하다. 턱을 없애고 차도처럼 견고한 아스콘 포장을 하는 섬세함도 꼭 필요하다. 

다음은 버스다. 14%의 분담률. 왜 시민들은 버스를 외면할까? 역시 타보면 안다. 뱅뱅 돌아서 간다. 돈 되는 곳을 샅샅이 훑으며 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영제가 필요한 거다. 공영제는 ‘돈 중심’이 아니라 ‘시민 편의 중심’으로 운영된다. 게다가 공영제는 보조금 비리도 해결할 수 있다. 기존 버스회사에 지급하는 보조금을 서서히 줄이고, 시 직영 버스에 투입되는 예산을 늘려가다가, 종국에는 모든 버스를 공영으로 운영하면 된다.

노선은 정밀하게 검토하여 다시 짜야 한다. 다수의 가로축과 세로축 도로에 버스를 투입하되, 그 축을 멀리 벗어나지 않는 방식으로 노선을 만들어야 한다. 뱅뱅 돌아가지 않게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궁극에는 무상 버스를 실현해야 한다. 시민이 세금을 냈으니 당연히 그 혜택을 받아가야 한다. 공영제로 바꾸면 무상 버스는 어렵지 않다.

다음은 자가용 승용차다. 걸을 만하고, 수당도 받고, 자전거 출퇴근이 적당하고, 무상 버스가 촘촘하게 이어진다면, 굳이 자가용을 타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용하더라도 먼 길 갈 때만 쓰면 그만이다. 도심으로 진입할 때마다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싱가포르 방식의 규제는 최후의 수단이다. 우선은 대중교통 강화로 해결할 문제다. 

정리하자. 제주의 교통과 환경 문제는 이제 한계에 이르렀다. 철저하게 준비하고, 시민 공감대를 넓혀가면서 근본적 전환을 시도하자. 우선순위 다시 정하기, 뚜벅이 수당, 관료들의 솔선수범 자전거 출퇴근, 버스 공영제, 무상 버스. 

결국 문제는 예산이 아니라 철학과 의지다. 

이영권

역사사회학을 전공하고 《새로 쓰는 제주사》, 《제주역사기행》 등을 저술한 이영권 박사는 제주4.3연구소, 제주참여환경연대 등에서 활동한 바 있고, 일선 학교현장에서 역사 교사로 오랜 시간 교편을 잡았다. 올해부터 제주투데이 논설위원으로 위촉된 이영권 위원의 칼럼은 매달 두번째 금요일 게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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