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훈 제주지사(사진=박소희 기자)
오영훈 제주지사(사진=박소희 기자)

오영훈 제주도지사의 대표 공약인 ‘15분도시’. 오 지사의 15분도시는 기존 개념에서 상당히 동떨어져 있다. 프랑스 파리를 비롯, 주요 대도시에서 적용 가능한 개념을 충분한 고민없이 제주도로 이식하려 한 탓이다.

15분도시는 대도시의 문재를 해결하기 위해 고안된 정책이다. 제주도는 애초 도시가 아닌 지역의 면적이 훨씬 넓다. 그럼에도 오 지사는 제주 전역을 15분도시로 만들겠다고 한다. 기본 개념과 취지를 살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조건부터 다르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제주형 15분도시’라고 우길 수 있는 정도가 될 것이다.

오 지사의 15분도시는 도시 생태환경과 공동체 복원 및 활성화라는 기본 취지보다 새로운 인프라 조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보행과 자전거가 아니라, 자동차를 이용해서 15분 만에 필수 인프라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하겠다 한다. 제주의 15분도시가 ‘7대자연경관’ 해프닝 이후 제주 최대의 사기극이 되지 않을까 우려되는 지경이다. 이 같은 우려를 최소화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파리의 15분도시 개념의 핵심은 보행 중심의 도시 생활권을 설계하는 것이다. 보행자와 자전거 이용자를 위한 환경 조성과 도시 녹지 공간 확충 방안이 필요하다. 이를 위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을 것이라면 15분도시 공약은 캐비닛에 넣는 편이 낫다. 그저 이런저런 생활인프라 건물들만 제주 전역에 조성하는 건설사업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제주의 보행 및 가로수 관련 조례, 부산시와 비교해보니...

15분도시 개념을 제주도보다 먼저 도입한 부산시는 일찌감치 보행자들의 보행 환경과 가로수 조성 및 관리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부산시는 지난 2019년, 보행자들의 권리를 밝힌 보행권리장전을 선포했다. 보행 혁신 전담팀도 꾸렸다. 보도를 공사하면 그 시작 단계부터 장애인 등 보행 약자가 참여하도록 하고 있다. 보행환경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부산시는 그보다 앞서, 보행환경 개선과 도시 녹지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정책을 시행해 왔다. 이 정책들은 지난 2017년 1월에 시행한 ‘부산광역시 가로수 조성 및 관리 조례’를 근거로 한다. 제주도는 그보다 약 5개월 전에 ‘제주특별자치도 가로수 조성 및 관리 조례’를 만들었다. 그러나 두 지자체의 조례를 뜯어보면 그 내용은 천지 차이다.

부산시는 이 조례에서 “부산광역시는 도시녹화 및 경관향상을 위하여 가로수의 조성·관리에 노력하여야 한다”고 도지사의 책무를 명시하고 있다. 그러면서 가로수 조성·관리계획 수립, 가로수조성·관리위원회를 설치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 조례에 따라 부산시는 가로수의 조성·관리를 위한 계획을 10년마다 수립 및 시행해야 한다.

부산광역시 가로수 조성 및 관리 조례’
부산광역시 가로수 조성 및 관리 조례’
제주특별자치도의 가로수 조성 및 관리 조례
제주특별자치도의 가로수 조성 및 관리 조례

그러나 ‘제주특별자치도의 가로수 조성 및 관리 조례’에는 이 같은 내용들이 빠져 있다. 왜 그럴까. 두 조례가 명칭만 같을 뿐 애초 목적부터 다르기 때문이다. 제주도의 조례는 “가로수 심기나 옮겨심기, 제거 또는 가지치기 등을 하고자 할 때 승인절차, 기간, 비용부담 등에 관한 사항을 정함을 목적으로 한다.”

반면, 부산시는 “가로수의 조성 및 관리에 필요한 사항을 정함으로써 가로수의 공익적 기능을 향상시켜 시민의 삶의 질 향상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어느 쪽이 시민들에게 이로울지는 명약관화다. 제주도에서 가로수로 벌채 등으로 인한 논란이 줄기차게 불거지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제성마을 가로수 무단 벌채 갈등...가로수조성·관리위원회가 있었다면?

부산시의 경우처럼, 제주도에 가로수조성·관리위원회가 있었다면 최근에 발생한 제성마을 벚나무 무단 벌채로 인한 갈등을 예방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늘 없는 거리에서 땡볕에 노출된 보행자들을 위한 보다 적극적인 목소리가 위원회에서 나오지는 않았을까. 제주도는 가로수 조성 및 관리를 위한 계획을 수립하지 않는다. 때문에 도시 가로수들을 어떻게 가꿔나갈 것인지에 대한 체계적인 접근이 불가능하다.

부산시는 보행안전 및 편의증진에 관한 조례를 통해 ‘지역보행안전편의증진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비슷한 성격을 띤 제주도의 조례는 ‘보행권 확보 및 보행환경 개선에 관한 기본 조례’다. 하지만 보행자를 위한 위원회 운영을 위한 근거는 없다. 제주도의 현실이다. 15분도시 실현을 위해서는 보행자의 보행환경 개선하고 가로수를 제대로 관리할 수 있는 근거를 확실하게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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