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노형동 제주경찰청 내 조성된 추모공원 '시민과 함께 하는 열린 공원'. (사진=조수진 기자)
제주시 노형동 제주경찰청 내 조성된 추모공원 '시민과 함께 하는 열린 공원'. (사진=조수진 기자)

4·3 당시 처형 위기에 처한 주민 수백 명을 구한 공덕을 인정 받아 경찰 영웅으로까지 추대받은 문형순. 

‘4·3 의인’이라고도 불리는 문형순의 흉상이 4·3 진압에 나섰던 경찰 추모비와 같은 공간에 들어섰다. 

제주경찰청은 최근 제주시 노형동으로 청사를 옮겨 추모공원 ‘시민과 함께하는 열린공원’을 조성했다. 공원 안쪽 언덕엔 추모비와 문형순 흉상이 나란히 세워졌다. 

제주경찰청 내 추모공원 언덕 안쪽에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 가운데가 새로 건립된 추모비. 왼쪽에 제주시 한울누리공원 인근에서 옮겨진 충혼비, 오른쪽에 문형순 흉상. (사진=조수진 기자)
제주경찰청 내 추모공원 언덕 안쪽에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 가운데가 새로 건립된 추모비. 왼쪽에 제주시 한울누리공원 인근에서 옮겨진 충혼비, 오른쪽에 문형순 흉상. (사진=조수진 기자)

이 추모비는 지난해 12월 제주경찰청과 제주특별자치도 재향경우회가 함께 설립한 것으로 공직 중 전사하거나 순직한 경찰 명단(237명)이 올라갔다. 

비석은 모두 5개의 면으로 되어있으며 설립 취지와 설립 단체 이름이 적힌 앞면을 제외한 4개의 면에 경찰 이름과 직위 등이 새겨진 명패가 붙어있다. 

2개면엔 한국전쟁과 공무수행 중 순직한 경찰 명단, 나머지 2개면은 ‘4·3사건 당시 순직’ 명단으로 채워졌다. 그 왼쪽엔 최근까지도 제주도민 무차별 체포를 명령했던 박진경 비석 옆에 있었던 충혼비가 옮겨와 터를 잡고 서 있다. 

제주시 한울누리공원 인근에 있던 충혼비(붉은 동그라미). 왼쪽에 박진경 비석. (사진=제주투데이DB)
제주시 한울누리공원 인근에 있던 충혼비(붉은 동그라미). 왼쪽에 박진경 비석. (사진=제주투데이DB)
제주경찰청 추모공원으로 자리를 옮긴 충혼비(붉은 동그라미). (사진=조수진 기자)
제주경찰청 추모공원으로 자리를 옮긴 충혼비(붉은 동그라미). (사진=조수진 기자)

이 충혼비는 1950년 4월3일에 세워진 것으로 4·3 때 목숨을 잃은 경찰들 명단이 새겨져 있다. 물론 이들 중에는 인민유격대의 공격으로 숨지거나 상사의 명령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진압 작전 등에 참여한 경찰들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4·3 당시 제주도민 열 명 중 한 명이 희생당한 배경엔 공권력이 자행한 국가폭력이 있다는 점을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 국가폭력의 피해는 대한민국 정부가 인정해 사과까지 한 역사적 사실이다. 

더욱 아이러니한 건 이러한 공권력에 의한 주민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나섰던 인물 흉상이 바로 옆에 나란히 서 있는 풍경이다. 

제주경찰청 추모공원 내 새로 건립된 추모비(왼쪽)와 자리를 옮겨온 문형순 흉상(오른쪽). (사진=조수진 기자)
제주경찰청 추모공원 내 새로 건립된 추모비(왼쪽)와 자리를 옮겨온 문형순 흉상(오른쪽). (사진=조수진 기자)

흉상의 주인공인 문형순은 4·3 당시 여러 차례 주민들을 총살의 위기에서 구해냈다. 

1948년 12월 모슬포지서장으로 있을 당시 군경이 확보한 좌익 명단에 포함된 하모리 마을 주민 100여명이 처형당할 위기에 처했다. 이때 면장 등이 명단에 올라간 주민들은 인민유격대에 식량과 의복을 전달한 죄밖에 없다고 선처를 구하자 주민들의 자수서를 받는 것으로 희생을 막았다. 

또 한국전쟁 중인 1950년 이승만 정부가 사회주의 등 좌익 활동 이력이 있는 민간인 명단을 만들어 집단학살을 자행한 ‘예비검속 사건’. 당시 성산포경찰서장이었던 문형순은 예비검속자 총살 집행을 지시하는 공문에 “부당하므로 불이행”이라 직접 쓰고 날인하며 거부했다. 

문형순이 여러 차례 주민 피해를 막아선 이유는 본인이 스스로 밝혔듯 당시 공권력에 의한 폭력이 부당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흉상에는 이를 설명하는 문구 또는 경찰 당국의 책임이나 사과는 없고 마치 좌익으로 몰려 억울한 피해를 당할 뻔한 주민들을 구해냈다는 식으로만 쓰여 있다. 

제주경찰청 내 조성된 추모공원 '시민과 함께하는 열린 공원' 입구. (사진=조수진 기자)
제주경찰청 내 조성된 추모공원 '시민과 함께하는 열린 공원' 입구. (사진=조수진 기자)

이에 대해 강호진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 집행위원장은 “화해와 상생이라는 큰 틀에서 4·3 당시 순직한 경찰 추모비가 세워질 순 있는데 혹여 이분들 중 부당한 국가폭력을 행사해서 도민에게 피해를 입힌 분들이 있지 않겠느냐”며 “그런 사실관계나 규명 없이 이런 추모비를 세운 건 유감이다. 최소한의 규명은 이뤄져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와 관련 제주경찰청 측은 “경우회 차원에서 순직자로 되신 분들에 대해 추모비를 세운 것”이라며 “문제가 있는 분들 특정을 해주면, 구체적인 명단을 주면 설명을 하겠다. 하나하나 다 확인하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또 4·3 관련 역사적 사실이 충분하지 않다는 데 대해선 “우리(경찰청)는 장소만 내준 것이지, 추모비 내용에 대해선 경우회에 문의하시라”고 답했다. 

이 공원이 이름 그대로 ‘시민과 함께하는’ 공원이 되기 위해선 과거 부당한 공권력에 희생 당한 시민에 대한 역사를 제대로 밝히는 일이 기본 아닐까. 

한편 새로 세워진 추모비 제막식은 오는 11일 오후 2시 열린다. 이 자리엔 4·3희생자유족회장, 4·3평화재단 이사장 등도 참석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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