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자치위원이 되다
나는 제주시 한림읍에 사는 주민이다. 지역의 주민자치위원을 뽑는다기에 이름에 끌려 주민자치위원에 지원했다. 평소에 민주주의가 제대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주민자치가 제대로 서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원하기에 앞서 주민자치위원은 무엇을 하기 위해 만들어졌는지 내 생각과 부합하는 일을 하는지 먼저 개념을 찾아봤다. 이런 설명을 찾아 읽었다.
[지역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자 하는 구체적인 움직임은 1991년 지방 의원선거 실시와 1995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실시를 계기로 본격화되었다. 주민들이 지역사회의 주인공이라는 주인의식이 발현되기 시작되면서 주민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는 전환점이 되었다. 이후 2000년부터 읍·면·동의 기능전환으로 주민자치센터와 주민자치위원회를 설치하면서 권위주의적 정치와 행정 문화를 극복하고 주민의 주권의식 향상을 위한 차원에서 주민 스스로에 의한 자치의식을 확대하고자 하였다. 주민자치는 주민이 스스로 지역사업을 결정하고 스스로 집행하고 스스로 책임지는 제도이다]
지역사회의 주인공인 ‘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주민이 스스로 지역사업을 결정하고 스스로 집행하고 스스로 책임지는 제도를 뒷받침하기 위해 주민자치위원회가 만들어졌다 하니 허투루 하면 안 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
주민자치위원 구성은 이장단협의회장이 당연직으로 들어왔다. 읍장 추천, 지역대표, 직능대표, 일반지원 등 주민자치위원으로 참여하는 루트는 다양했다. 또 [양성평등기본법 제21조] 에 따라 특정 성별이 총원의 40% 이상 되도록 구성 노력이라는 문구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일반지원으로 응모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성 지원자가 초과되어 공개추첨(제비뽑기)을 한다며 참관 의향을 묻는 전화를 받았다. ‘지원자가 많은 건 그만큼 주민참여 열의가 있다는 말이니 좋은 일’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개추첨 결과를 알려달라고 하고 통화를 종료했다. 나는 그렇게 이뤄진 공개추첨에서 뽑혔고, 이렇게 한림읍 주민자치위원이 됐다.
위원장 후보가 내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았지?
1월에 주민자치위원회 첫 회의를 연다는 안내 문자와 전화를 받았다. 첫 회의에서 어떤 논의가 오고갈지 풀뿌리 자치는 어디까지 가능할지 이러저러한 생각들을 하고 있던 차에 전화가 걸려왔다. 모르는 번호였다. 전화를 받았다. 이번에 주민자치위원이 된 사람인데 같은 마을에 한 명 더 있다고 해서 누군지 궁금하다 집에 두 번 갔었는데 집에 없던데 얼굴 한번 보자는 내용이었다.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런 두 가지 의문이 생길 것이다. (1) 어라? 내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았지? (2) 주소를 알고 집에 방문 할 정도면 첫 회의 전에 하고 싶은 말이 있는건가?
궁금했다. 그리고 빨리 만나고 싶었다. 통화한 바로 그날 저녁에 만났다. 어떻게 내 전화번호를 알게 됐는지 묻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거기에 대해서는 첫 회의 자리에서 공식적으로 질문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같은 마을 사람이어서 반갑다면서 본인은 어디에 살고 무슨 일을 하며 한림읍을 위해 그동안 어떤 일들을 해 왔는지에 대해 말했다. 대화 중 서로 아는 누군가의 이야기가 나오자 바로 그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 통화했다. 그리고 본인이 주민자치위원장 후보로 나올 테니 잘 부탁한다고 말을 했다. 아는 후배도 후보로 나온다는 말을 들었다는 말과 함께.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기대했던 첫 회의가 열렸는데... 어라?
주민자치위원회 첫 회의가 있던 당일 시내에 볼 일을 보고 1시간여 일찍 주민자치센터에 도착했다. 주민자치위원으로 보이는 분이 이미 도착해 있었다. 그 분은 이미 말로 들었던 또다른 위원장 후보였다. 집에 찾아왔던 후보와는 서로 아는 사이 같아 보였다. 두 분 다 전 이장 출신으로 지금까지는 (10기까지 이번 기수는 11기다) 위원장 후보가 단독 후보 였는데 주민자치위원들에게 죄송하게 됐다며 (뭐가 죄송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단일화를 논의하기 위해 좀 일찍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 분은 연락처를 알 수가 없어 나에게 연락을 못했다며 주민자치위원으로 만나서 반갑다는 인사를 건냈다. (위원장 후보 중 한 사람은 사전에 전화번호를 제공 받았지만 다른 한 사람은 받지 못했던 것일까. 전화번호를 받는 자체도 문제겠지만 그것이 한 사람에게만 제공됐다는 것은 또 어떤 의미일까.)
2023년 1월 10일 오후5시 한림읍 주민자치센터 2층 강당에서 첫 회의가 열렸다. 입구에서 참석자 이름을 확인했다. 계좌번호를 적고 사인했다.(회의 참가자는 7만원을 ‘회의참석수당’으로 받는다) 'ㄷ'자 형태 책상 배열에 이름 가나다 순으로 순차적으로 착석할 수 있게 자리 배치돼 있었다. 국민의례, 주민자치위원 위촉장 전달, 한림읍장의 인사말과 설연휴 종합상황실 운영계획과 서부보건소 코로나19 동절기 및 독감 예방접종 안내를 들었다. 그 다음 주민자치위원 중 연배가 제일 많은 분이 임시위원장으로 선임됐다. 이후 성원보고와 개회선언 그리고, 2022년 하반기 주민자치센터 운영결과 보고가 진행됐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될까?
자료를 보니 주민자치센터 운영에 따른 프로그램명 운영기간 참여인원 강사 등이 나와 있었다. 주민자치위원회 운영은 위원회 회의개최 6회/151명(하반기 6개월 보고이니 매달1회 회의가 진행된 거 같고) 자원봉사활동 13회/170명(자원봉사활동 현장을 가서 함께 한 횟수겠구나) 여기까지 순서가 진행되는 상황을 보면서 ‘아! 주민자치위원은 주민자치센터 운영을 주도적으로 하는 위원회인건가?’ 라는 질문이 생겼다. 의사진행발언으로 여러 질문을 했지만 분위기가 묘하게 겹치면서 질문을 했던 내용에 대해서는 충분히 설명을 듣지 못했다.
앞선 기수에서 주민자치위원을 해봤던 분들이 계셨다. 이미 경험을 한 분들은 주민자치위원이 해야 할 역할에 대해 모두 이해하고 있을 수 있겠지만, 처음 주민자치위원이 된 나 같은 경우에는 진행 방식이 친절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이어 주민자치위원회 임원 구성과 2023년 주민자치센터 연간 운영계획의 건이 진행됐다. 주민자치위원의 주요 역할 중 하나는 주민자치센터 운영과 관련된 것이다. 2023년 주민자치센터 운영예산은 약1억3천여만원으로 책정돼 있었다. 세부항목으로는 주민자치위원 회의참석수당이 약2천5백여만원 책정돼 있었다. 거기에 국내여비(벤치마킹 및 박람회 참가 등) 1백5십만원도 포함돼 있었다.
예산을 보면 해야하는 일이 분명해진다. 주민자치위원은 주민자치센터를 관리 운영하고 환경정비하고 프로그램 운영하고 환경을 정비하고(환경정비 항목이 세부항목으로 두 번 명시돼 있다) 공공요금 납부하고 국내 벤치마킹 하고 박람회 참가하고 행사실비보상금, 워크숍 등을 할 수 있다. 기대했던 바와 다르게 주민자치위원이 할 수 있는 일과 예산이 너무 협소하게 세팅된 것으로 여겨졌다.
자치위원의 목소리 하나하나를 중요하게 여겼으면...
그리고 임원선출이 있었다. 임시위원장이 계속 사회를 보고 위원장 후보를 자천 타천 받았는데 단일화가 이뤄지지 않았는지 두 명의 후보가 각각 자천으로 입후보 했다. 나처럼 이번에 처음 주민자치위원이 된 한 분이 위원장 후보로 나선 이들에게 위원장이 되면 무슨 일을 하려 하는지 정견발표를 듣자고 제안했는데 식당 예약을 잡아 놓아서 너무 늦어지면 안 된다는 피드백을 들었다. 위원장 선정보다 저녁 식사가 우선시 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올해 첫 주민자치위원회 회의가 차분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질문하고 논의하는 자리라기보다는 빠르게 끝내는 것이 중요한 것처럼 분위기가 조성됐다. 위원들의 목소리 하나하나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주민자치위원회는 과연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 이런 궁금증을 던지며 '주민자치위원 활동기'를 시작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