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시인의 행복론》서정홍 글, 녹색평론사 펴냄
《농부시인의 행복론》서정홍 글, 녹색평론사 펴냄

2010년에 나온 책이다. ‘제주선흘녹색평론읽기모임’에서 이 책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몇 사람 오진 않았지만 나와 또 한 분만 빼곤, 이 책이 시대에 좀 뒤쳐진다고 했다. 하루하루 먹고살기 바뿐데, 농사꾼이 되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요즘 젊은이들 귀엔 들리지 않을 거라 했다. 젊은 사람들은 땀 흘려 일해도 돈을 벌 수 없다면 그 일에 달려들지 않을 거라 했다. 맞는 말이다. 열심히 일을 해도 돈을 벌 수 없다면 누가 일을 하려 하겠는가. 그럼 글쓴이는 어떻게 먹고살까. 그도 고백했다. 농사를 지어서 나오는 돈보다, 책을 써서 나오는 돈과 강연을 해서 버는 돈이 훨씬 많다고. 글쓴이는 화학비료와 농약을 치지 않고 농사를 짓지만, 풀과 벌레를 죽이는 독약을 뿌리며 농사를 짓는 농사꾼을 탓할 수 없다고.

이 책이 나온 지 14년이 되었다. 그때 우리나라 밀농사가 1%가 안 되었다 10년 안에 10%가 될 거라고 정부에서는 큰 소리를 쳤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나라 밀은 1%가 안 된다. 우리 농산물은 25% 채 안 되고. 나머지는 다른 나라에서 사들여서 먹는다. 기후위기가 심해지면서 농산물 값이 오른다. 만약 다른 나라에서 먹을거리를 제대로 들여오지 못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굶을 수도 있다. 또 다른 나라에서 들여오는 먹을거리는 유전자를 고쳐서 만든 것이 많다. 그것을 먹으면서 우리 몸은 망가졌다. 어린아이들도 어른들이 걸리는 병에 잘 걸린다.

이미 열 명 가운데 세 명의 어린이가 고혈압, 지방간과 같은 성인병 증세를 보이고 있다고 하니 눈앞이 캄캄합니다. 10대(66.5%)와 20대(54%)의 절반 이상이 밥 대신 햄버거를 먹는다고 합니다(...)우리 식구들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생명의 밥상’을 차려야 합니다.(72쪽)

이렇듯 먹을거리를 일구는 일은 힘들고 돈도 벌 수 없지만 꼭 해야 한다. 농촌에 사는 사람들이 농사를 짓지 않으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살 수가 없다. 답은 하나다. 농사꾼과 도시 사람들이 만나야 한다. 농사꾼들이 지은 농산물을 그 마을에서 먼저 사고팔아야 한다. 도시 사람들도 작은 텃밭이라도 일구어야 한다. 농촌과 도시가 직접 농산물을 팔고 사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 모든 목숨붙이들은 땅에서 태어나서 땅에서 죽는다. 땅을 귀하게 여귀지 않는 세상과 사람들은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흙은 사람들 곁에서 멀어져 갔습니다. “한국 온실 가스 배출, 17년 새 2배 늘어”, “초등생 13% 시험 끝난 뒤 ‘죽고 싶다’, 41% 손떨림, 39% 식은땀 등 몸에 이상”(<한겨레>, 2007년 12월 5일자)과 같은 기사들이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어찌 돌아온 것이 이것뿐이겠습니까. 이혼, 자살, 교통사고, 알콜 중독, 온갖 범죄와 무서운 질병 따위가 이 나라를 뒤덮고 있습니다. 사람이 흙을 떠나 살고부터 ‘사람의 마음’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208쪽)

이는 17년 앞서 나온 신문 기사다. 지금도 여전하다. 돈을 많이 버는 일이 아니라, 사람과 세상과 나를 살리는 일을 해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농사꾼이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 되겠지만, 땅을 살리는 일은 누구나 나서야 한다. 사람이 눈 똥이 다시 거름이 되고, 석유를 써서 농사를 짓지 않고, 땅에 지렁이가 살도록 농촌 독약을 뿌리지 않고 먹을거리를 일구는 꿈을 꾼다. 어느 것 하나 쉽게 이룰 수 없다. 아니 어쩌면 하나도 이루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해야, 내가 살고 이웃이 살고 세상이 살고 자연이 자연 그대로 아름답게 살 수 있다면 해야 하지 않을까. 경상남도 합천에 있는 황매산에서 먹을거리를 일구며 시를 쓰고, 세상을 살리는 이야기를 나누는 글쓴이처럼 말이다. 그는 2024년에 ‘권정생문학상’을 받았다. 수상식에서 다음 권정생 글을 옮겼다.

밭 한 뙈기

돌멩이 하나라도

그건 ‘내’ 것이 아니다

온 세상 모두의 것이다

-권정생 시 ‘밭 한 뙈기’ 중

글쓴이 은종복 씨는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에 위치한 인문사회과학 책방 '제주풀무질'의 일꾼이라고 자기 자신을 소개한다. 책과 사회를 또박또박 읽어내려가는 [또밖또북] 코너로 매달 마지막 주에 독자들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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