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로 전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제주는 ‘2030 탄소 없는 섬’, ‘2040 플라스틱 제로 섬’, ‘2035 탄소중립 제주’ 등을 목표로 탄소 저감을 위한 환경정책을 시행 중이다. 그러나 각종 비용 부담을 둘러싼 이해관계자들의 갈등, 외부 요인에 따라 변동성이 큰 정부의 환경 정책, 기후위기에 대한 체감도가 낮은 시민 인식 등은 제주 환경정책의 방향성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에 <제주투데이>는 환경공익기금위원회와 함께 4회에 걸쳐 제주의 주요 환경정책의 도입부터 현재까지의 진행 상황을 돌아보고, 지속가능한 제주의 환경정책을 위한 논의를 시작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한국은 연간 플라스틱 사용량이 세계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는 플라스틱 다사용 국가다. 썩는데만 500년 이상이 걸리는 플라스틱은 기후위기의 주범으로 손꼽히며 사용 규제에 대한 목소리가 커져 갔다. 이에 환경부는 지난 2022년 12월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도입했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시행 2년여를 맞이한 지금,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어떻게 추진되고 있을까.
먼저 일회용컵 보증금제란 커피전문점과 빵집 등에서 음료를 구매해 포장할 경우 보증금 300원을 함께 지불한 뒤, 컵을 반납하면서 보증금을 다시 돌려받는 제도를 말한다.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실시하는 대상 업체는 전국에 프랜차이즈 가맹점 100곳 이상을 운영하는 커피·음료·제과 사업장이다.
해당 제도는 2022년 6월 전국 시행 예정이었으나 환경부는 소상공인 부담 등을 이유로 시행일을 12월로 미뤘고, 시행 지역을 제주도와 세종시로 축소했다. 1년여간의 시범 운영을 마치고 전국적으로 시행될 예정이었던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환경부가 전국 의무 시행이 아닌 ‘지자체 자율 시행’을 검토할 것을 암시하면서 제도는 서서히 동력을 잃어갔다.
일회용컵 보증금제, 도민 일상 되려던 찰나...의무화 철회?
제주는 ‘2040 플라스틱 없는 섬’ 실현을 내걸며 일회용컵 보증금제 선도 지역으로 선정됐다. 플라스틱 없는 제주를 목표로 야심차게 도입한 일회용컵 보증금제였지만 시작은 순탄하지 않았다.
시행 초기에는 제도를 보이콧하는 도내 프랜차이즈 점주들이 잇따르면서 시행 첫달 업체 참여율은 57.6%에 그쳤다. 그러나 업주들과 제주도가 수차례 간담회를 개최하며 합의한 결과 지난해 9월 96.8%의 업체 참여율을 기록하며 가장 높은 수치를 보였다.
사용자들의 컵 반환율은 지난 2022년 12월 9.6%(1689개)였으나 꾸준히 상승해 지난해 11월 78.4%(1만4826개)까지 오르면서 제도 안착에 성공했다는 평을 받았다. 반환된 컵 개수로 따지면 지난해 9월(2만6613개)에 가장 많은 일회용컵이 반환됐다. 세종시의 컵 반환율이 45%를 밑돈 것과 비교했을 때 제도가 안정적으로 자리잡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지난해 9월 권명호 국민의힘 의원이 일회용컵 보증금제 시행 여부를 지자체별로 결정하도록 하는 ‘자원재활용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제도는 휘청이기 시작했다. 지자체별로 시행 여부를 결정할 경우 지역별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는 우려에도 환경부는 국회에 발의된 권 의원의 자원재활용법 개정안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해당 개정안은 21대 국회가 끝나며 자동 폐기됐으나 ‘일회용컵 보증금제 전국 시행 무산’이라는 여론을 조성하기에는 충분했다. 아니나 다를까 환경부의 모호한 입장 발표에 제주지역에서도 참여업체들의 이탈이 잇따랐다. 컵 반환율 또한 함께 하락세를 보였다.
매장 참여율은 지난 5월 기준 49.4%로, 가장 높았던 지난해 9월 96.8%의 절반 정도 수준에 머물렀다. 컵 반환율은 7월 14일 기준 51.3%로 하락했다. 특히 지난 6월의 컵 반환율은 48.4%에 그쳐 가장 높았던 지난해 11월 78.4%에 크게 못 미쳤다.
지자체 자율 시행 확정 아님에도 동력 잃어...제주도의 노력은?
일회용컵 보증금제가 지자체 자율적으로 시행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자 제주도는 지난해 9월 브리핑을 열고 “해당 개정안(권명호 의원 발의 자원재활용법)에 대해 도 차원에서 반대 의견을 냈다”고 밝혔다.
제주도 관계자는 제주투데이와의 통화에서 “환경부가 전국 시행을 포기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자 도내 업체들 절반이 이탈하는 등 제도가 동력을 잃었다”고 우려하면서 “그래도 현행법상 일회용컵 보증금제 대상업체가 아니더라도 환경부 승인으로 참여 가능해 도내 모든 업종(카페, 제과, 패스트푸드점 등)의 업소들이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또 “제도가 전국 지자체에서 의무시행되고, 지자체 조례로 적용 대상 매장을 확대하는 내용 담은 ‘자원재활용법 시행령‘의 개정을 환경부에 요청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도의 계획에 따르면 현행 대상업체 수가 500여개소에서 3400여개소로 늘어날 수 있다.
이밖에도 제주도는 △성실 이행매장의 ‘자원순환우수업소’ 지정 및 인센티브 지원 △1회용컵 5개당 10리터 종량제봉투 1장 제공하는 ‘1회용컵 회수보상제’ △공공청사 내 1회용컵 반입 금지 △참여 업체 일회용컵 반환 카드 수수료 인센티브 제공 등을 실시하고 있다.
일회용컵 보증금제 폐지 논란 이후 이탈한 매장들을 복귀시키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악성 미이행 매장에 대한 집중 지도도 실행하고 있다. 도 관계자는 “지난 5~6월 집중 점검을 실시해 일부 업체에 과태료를 부과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일회용컵 보증금제가 전처럼 활력을 찾기엔 역부족이란 지적도 나온다. 김정도 제주환경운동연합 정책국장은 “일회용컵 보증금제 확대의 가장 간단한 방법은 환경부가 원래대로 전국 시행하겠다고 밝히는 것”이라며 “환경부는 일회용품에 대한 규제를 의무가 아닌 자율화시키는 방침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가가 손을 놔버린 상황에서 도 차원에서 일일이 패널티를 매기는 등 제도를 복구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며 “프랜차이즈 업체와의 갈등이 아니라 자영업 전체와의 갈등으로 번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하지만 도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일회용컵 보증금제 전국 시행을 환경부에 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현재 실시하고 있는 자율 참여업체에 대한 인센티브도 더 확대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