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제주특별자치도가 마라해양도립공원 공원계획 변경 용역 최종보고회‘를 열었다. 여기에 제주평화대공원 부지에 야구장과 파크골프장, 전지훈련 시설 등이 포함된 ‘스포츠타운’을 조성하는 계획도 담겼다. 그러자 제주사회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높게 일고 있다. 일제강점기와 냉전, 4·3, 한국전쟁 등 한국의 근현대를 아우르는 알뜨르비행장 일대 지역의 역사성을 무시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제주투데이는 역사학자인 이영권 논설위원의 '제투_시평'을 통해 6차례에 걸쳐 오영훈 제주도정이 놓치고 있는 지점을 짚는다.
① 오영훈의 표 계산 오류
② 체류형 관광지를 만들고 싶은가
③ '이 공원'은 '그 공원'이 아니다
④ 알뜨르에 평화가 흐르게 하라
스포츠타운 조성, 수익성 분석이라도 해 봤는가?
돈은 되겠는가? 알뜨르 평화대공원 안에 집어넣겠다는 스포츠타운 말이다. 제주도 관계자와 일부 주민들은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될 거라 말한다. 추진하고 있는 스포츠타운은 전지훈련을 겨냥하고 있다. 선수와 임원이 며칠씩 머무르니 지역에 돈이 돌 거라는 주장이다.
맞다. 육지에서 많은 선수와 임원이 오면 가능하다. 그런데 전지훈련 하러 제주도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는가? 확실한가? 아니다. 막연한 추측일 뿐이다. 전지훈련 수요에 대한 연구가 사실상 없다. 연구 분석은커녕 통계 자료조차 엉성하다. 이번 조사 용역에서마저 스포츠타운의 수익성 분석은 없다.
오래전부터 ‘겨울철 스포츠 메카 제주’라는 홍보용 문구가 있었다. 남쪽이 따뜻하니 훈련장으로 적합할 거라는 논리다. 그런데 실상이 그러한가? 아니다. 이런 논리야말로 ‘탁상행정’의 전형이다. 사실 겨울철엔 육지나 제주나 모두 춥다. 기온 차이가 나긴 하지만, 따뜻한 정도가 다른 지역과 비교해 경쟁력이 될 정도로 차이가 나진 않는다.
재정이 넉넉한 스포츠팀은 겨울에 오키나와로 간다. 거긴 확실히 따뜻하다. 그러나 가난한 팀은 못 간다. 그럼, 그들은 오키나와 대신 제주도로 오나? 아니다. 대신에 선수들 더 잘 먹이고, 장비 보완하는 데 돈을 쓴다.
좋다. 제주도에 많이 온다고 치자. 그런데 제주시 오라동의 종합경기장 주변도 대규모 스포츠타운으로 변신을 준비하고 있다. 게다가 오라동의 숙박·음식업 인프라는 더 낫다. 오라동과의 경쟁에서 이길 묘안은 있는가? 알뜨르 스포츠타운을 믿고 숙박, 요식업에 투자했다가 선수들이 오지 않으면, 투자금을 날릴 수도 있다. 대정지역의 밑바닥 경제가 더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말이다.
물론 스포츠타운을 조성하면, 초반에 반짝 경기는 살아난다. 하지만 그건 건설 토목 경기에 국한된다. 또한 일시적 현상일 뿐이다. 그러나 그것이 끝나면 다음은 내리막일 수도 있다. 선수들은 오지 않고, 시설 유지 보수를 위한 비용만 늘어갈 수도 있다.
게다가 이 비용은 대정읍민만의 세금이 아니라 제주도민의 세금으로 충당된다. 그러니 더욱 철저히 따져 보고 시행해야 한다. 대정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제주도민 전체의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내가 너무 비관적인가. 물론 나 역시 전지훈련 수요 규모에 대해 잘 모른다. 다만 인근 서귀포 강창학종합경기장의 썰렁함을 보며 합리적 추론을 해 볼 뿐이다.
원형의 현장성과 희소성
전지훈련 장소 유치에 연연하는 데엔 이유가 있다. 소위 ‘체류형 관광지’를 꿈꾸는 것이다. 사실 현재의 대정지역은 체류형 관광지가 아니다. 하루 이틀 숙박하는 관광객은 거의 없다. 살짝 관람하고 나서 제주시나 서귀포 중심지를 향해 떠나 버린다. 그러니 대정지역에 돈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게 안타까운 거다.
안타까움을 뒤로 하고 잠시 딴 동네 이야기를 해 보자. 먼저 파리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 사이즈가 크지 않다. 53×77cm. 게다가 작품 보호를 위해 멀찌감치 통제 라인을 만들어 놓았다. 그러니 그녀의 미소는 보이지도 않는다. 구글에서 검색한 이미지로 보는 게 훨씬 낫다. 아니면 세부 감상이 가능한 미술관 책자가 차라리 실속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굳이 애를 쓰며 미술관으로 간다. 입장권 가격도 비싸고 구하기도 쉽지 않다. 그런데도 간다. 그 넓은 박물관에서 모나리자 전시실을 찾는 것도 버겁다. 겨우 찾았다 싶으면 수많은 인파에 밀린다.
그렇다고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다. 치열한 몸싸움을 해가며 접근 제한 라인까지 밀고 간다. 그 라인에 도착하면 모나리자를 보는가? 아니다. 바로 몸을 돌려 셀카를 찍는다. “갔노라, 보았노라, 인증샷 남겼노라”를 시연해야 한다.
농담 같은 이야기지만 그 속에 주목할 게 있다. 그 사람들이 추구한 것이 무엇일까? 실물, 원형, 현장성이다. 복제품이나 사진을 본 게 아니라 실물을 봤다는 뿌듯함, 훼손되지 않은 원형을 친견했다는 자부심, 그리고 현장의 생생함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모나리자 ‘원본’은 하나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은 오로지 루브르에서만 볼 수 있다. 이처럼 원형(원본)은 희소하다. 희소하기에 더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이것이 원형의 희소성과 현장성이다. 아무 곳에서나, 아무 때나 볼 수 있다면 사람들이 그렇게 열광하지는 않는다. 희소하기에 그 많은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이다.
다음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라는 페루의 마추픽추. 흔히 잉카 문명의 정수라고 말하지만 모든 것이 수수께끼다. 언제 조성된 도시인지, 왜, 누가 만들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사라졌는지에 대해 밝혀진 게 별로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뛰어난 건축술, 주변 경관의 빼어남, 전설 같은 신비함 등이 있어서다.
여기서 내가 주목하는 것은 이 유적지로의 접근 방법이다. 두 가지밖에 없다. 하나는 ‘잉카 트레일’ 즉 걷기다. 과거 잉카인들이 걸었던 산 중턱 길을 따라 걸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기차(Inka-rail)다.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도로가 아예 없다.
그러니 주변 마을에서의 1박은 필수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된다. 불편함의 ‘끝판왕’이다. 입장권을 구하기도 쉽지 않다. 그런데도 많은 이들의 버킷 리스트에 들어간다. 희소해서 그렇다. 그 희소한 원형을 현장에서 느끼고 싶어서 그렇다. 여기서 불편함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지나친 편리함이 싸구려를 만든다
이쯤에서 현재 제주의 관광 패턴을 돌아보자. 송악산과 알뜨르를 예로 든다. (사실 제주도 내 다른 관광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렌트카 혹은 승용차로 코 앞까지 진입한다. 주차장에 내린 후 슬쩍 둘러본다. 30분도 걸리지 않는다. 그리곤 나와서 제주시나 서귀포로 빠져 버린다. 이 과정에서 동네 편의점 이용도 별로 없다. 아이스크림, 음료수라도 하나 사 먹으면 좋으련만 그것도 없다. 화장실에 들러 배설만 하고 떠난다.
모나리자, 마추픽추와는 많이 다르다. 우리의 경우 진입이 너무 쉽다. 게다가 무료 관광지도 많다. 현재의 송악산과 알뜨르도 그렇다. 주차장에 내리면 금방이다. 게다가 입장료도 없다. 너무 편리하고 너무 저렴하다.
그러니 사람들이 만만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30분짜리 관광지를 스스로 자초하고 있는 셈이다. 그 결과 희소하지도 신비하지도 않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그저 그런 싸구려 관광지 취급을 하는 것이다.
물론 ‘격’이 다른 거 아니냐고 반박할 수 있겠다. 맞는 얘기다. 하지만 그 ‘격’을 우리 스스로 떨어뜨리고 있지 않은지 성찰할 필요도 있다. 비용 부담 없이 차로 코앞까지 갈 수 있는 관광지가 되면, 격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시간과 돈과 공을 들여야 관람할 수 있는 곳으로 격상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금은 불편해야 한다. 접근도 조금은 어려워야 한다. 또한 너무 저렴해서는 안 된다. 고급을 지향해야 한다. 요즘 고급 드립 커피는 적게는 8,000원 많게는 10,000원까지 받는다. 제주도 동쪽 성산에 있는 ‘빛의 벙커’는 입장료가 19,000원이다. 그런데도 간다. 아니, 그래야 더 간다. 이처럼 요즘 관광객들이 돈 쓰는 패턴도 달라졌다. 마음에 들면 돈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니 이제는 명품 관광을 지향해야 한다.
알뜨르와 송악산은 출입을 통제했으면 좋겠다(주민의 경우 출입증을 발부해 주면 된다). 입장료를 받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또한 승용차, 렌터카 접근을 먼 곳에서 제한했으면 좋겠다. 알뜨르의 경우, 걷기와 모노레일 등으로만 입장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이처럼 조금은 불편하게, 조금은 접근을 어렵게 해야 격이 올라간다. 보존에도 큰 도움이 된다. 더하여 체류 시간도 늘어난다. 이왕 늘어나는 체류 시간이라면 일몰과 일출 관광까지 이어지게 만들 수도 있다. 실제 해외에서 이런 사례를 적잖이 보았다. 일출 혹은 일몰이 너무 좋아서 예정보다 하루 더 연장하며 숙박하는 사람들 말이다.
낡은 사고에 묶인 사람들은 이런 제안에 대해 크게 반발할 것이다. 그랬다간 관광객이 하나도 오지 않을 것이라고. 그런가? 그런 관광객이라면 오지 않아도 된다. 편의점 이용도 하지 않으면서 배설만 하고 바로 떠나 버리는 관광객에 이제는 연연할 필요가 없다.
사람들을 붙들어 두려면
물론 그들의 우려를 무시하자는 게 아니다. 지금까지의 관광 관행에 익숙한 사람들은 제주 여행을 기피할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가 그들을 그렇게 길들인 탓도 있다. 그러니 서서히 고급 관광지로의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19,000원의 입장료를 받는 ‘빛의 벙커’는 여전히 성업 중이다. 같은 제주도 안에서의 현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가치가 특출해야 한다. ‘짝퉁’은 포장을 잘 해도 결국 버림받는다. 하지만 송악산과 알뜨르는 명품으로서의 가치가 충분하다. 세상에 다시 없는 진품들이다. 희소한 원형들이라는 말이다. 이걸 더욱 희소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걸 원형 그대로 현장에서 느낄 수 있게 해야 한다. 사람들을 감동케 하는 건 이제 우리의 몫이다.
괜히 하는 소리가 아니다. 나는 송악산과 알뜨르가 모나리자와 마추픽추에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아직 잘 다듬지 않았고 또 너무 값싸게 내놓았기에 그 진가를 모르고 있을 뿐이다.
이영권
역사사회학을 전공하고 《새로 쓰는 제주사》, 《제주역사기행》 등을 저술한 이영권 박사는 제주4.3연구소, 제주참여환경연대 등에서 활동한 바 있고, 일선 학교현장에서 역사 교사로 오랜 시간 교편을 잡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