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제주특별자치도가 마라해양도립공원 공원계획 변경 용역 최종보고회‘를 열었다. 여기에 제주평화대공원 부지에 야구장과 파크골프장, 전지훈련 시설 등이 포함된 ‘스포츠타운’을 조성하는 계획도 담겼다. 그러자 제주사회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높게 일고 있다. 일제강점기와 냉전, 4·3, 한국전쟁 등 한국의 근현대를 아우르는 알뜨르비행장 일대 지역의 역사성을 무시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제주투데이는 역사학자인 이영권 논설위원의 '제투_시평'을 통해 6차례에 걸쳐 오영훈 제주도정이 놓치고 있는 지점을 짚는다. 

① 오영훈의 표 계산 오류
② 체류형 관광지를 만들고 싶은가
③ '이 공원'은 '그 공원'이 아니다
④ 알뜨르에 평화가 흐르게 하라

18일 오후 제주웰컴센터에서 제주특별자치도는 ‘마라해양도립공원 공원계획 변경 용역 최종보고회’를 개최, 평화대공원 부지에 스포츠타운을 조성하는 계획안을 발표했다. 임홍철 도 기후환경국 환경정책과장이 방청석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박성인 이사)
18일 오후 제주웰컴센터에서 제주특별자치도는 ‘마라해양도립공원 공원계획 변경 용역 최종보고회’를 개최, 평화대공원 부지에 스포츠타운을 조성하는 계획안을 발표했다. 임홍철 도 기후환경국 환경정책과장이 방청석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박성인 이사)


이 부끄러움은 왜 도민 몫이 되어야 하는가?

무식함의 소치다. 알뜨르 평화대공원 안에 스포츠타운을 집어넣는다는 발상 말이다. 알뜨르가 어떤 곳인가? 평화의 산 교육장이다. 일본군 전쟁 유적이 그 바탕이 된 역사 유적지다. 규모와 보존 상태에서 이 정도 남은 것은 정작 일본에도 없다.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유적지다. 체계적 조사와 깊이 있는 연구가 아직 부족해서 그 가치를 아는 사람이 적다는 게 문제다.

그러나 이곳에 스포츠타운을 건설하겠다는 망발은 더 큰 문제다. 이는 마치 창덕궁 후원에 파크 골프장을 짓겠다는 것과 같은 발상이다. 창덕궁은 조선 시대 사실상의 정궁이었다. 궁궐 건물들도 빼어나지만, 뒤편의 후원은 더 유명하다. 면적도 건물 구역보다 더 넓다. 그런데 이 후원은 무지한 자의 눈으로 보면 ‘놀고 있는’ 공간이다. 그러니 그 빈 공간에 파크 골프장을 짓자고 말한다면? 

문화재청이 생산한 창덕궁의 건물 배치도. 건물이 들어선 구역보다 후원 구역이 더 넓다. (사진=문화재청)
문화재청이 생산한 창덕궁의 건물 배치도. 건물이 들어선 구역보다 후원 구역이 더 넓다. (사진=문화재청)

미쳤다는 소리가 절로 나올 것이다. 그런데 이런 무지막지한 짓을 제주도 행정에서 추진한다는 것이다. 만에 하나, 이게 철회되지 않고 진행된다면? 제주도민들은 전국적 아니 세계적 조롱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왜 이 부끄러움은 도민 몫이 되어야 하는가?


스포츠타운은 죄가 없다

오해가 없길 바란다. 나는 스포츠타운을 반대하는 게 아니다. 나 역시 스포츠 '광신자'다. 국민 건강 증진과 건강 보험료 부담 감소를 위해서도 스포츠를 권장해야 한다. 지난 18일 제주웰컴센터에서 열린 ‘마라해양도립공원 공원계획 변경 용역 최종 보고회’에서도 스포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주장들이 많았다. “스포츠가 평화다”, “스포츠는 일상의 삶이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모두 맞는 말이다. 하지만 핵심은 그 ‘일상이자 평화’인 스포츠를 위해, 그 스포츠타운은 역사 유적지 밖에 건설해야 한다는 점이다. 역사 유적지 안에 건설하겠다고 해서 분쟁이 생기면 그건 평화가 아니다. 분열이고 갈등이다. 일상의 스포츠를 위해서는 스포츠타운이 마을 옆에 있어야 한다. 멀리 평화대공원까지 갈 일이 아니다.

지난 18일 제주특별자치도가 '마라해양도립공원 공원계획 변경 용역 최종보고회'에서 배부한 자료 내 스포츠타운 조성 계획 구역을 표시한 배치도. 스포츠타운의 최적지는 현재 구상하고 있는 구역(노란색 부분)이 아니라 오른쪽 위 2개의 원을 그려 놓은 곳이다. (사진=제주특별자치도, 편집=이영권)
지난 18일 제주특별자치도가 '마라해양도립공원 공원계획 변경 용역 최종보고회'에서 배부한 자료 내 스포츠타운 조성 계획 구역을 표시한 배치도. 스포츠타운의 최적지는 현재 구상하고 있는 구역(노란색 부분)이 아니라 오른쪽 위 2개의 원을 그려 놓은 곳이다. (사진=제주특별자치도, 편집=이영권)

제주도 행정에서 추진하고 있는 이 스포츠타운은 전지훈련과 관광을 연계한 체육시설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현재의 관광 시설과 연결하는 것이 좋다. 마라도로 가는 선착장 주변에 많은 상가와 민가가 있다. 그리고 그 너머에는 넓은 농경지가 있다. 이곳을 활용하는 것이 맞다.

(보고회에서 "시너지 효과"를 강조했던 제주도의 논리대로라면)알뜨르 평화대공원 부지 밖이면서 상가와 마라도가 연결되는 곳(위 사진 참조), 이런 곳이 스포츠타운의 최적지 아닌가. 스포츠타운 그 자체가 문제인 것이 아니다. 역사 유적지를 훼손하는 게 문제다. 유적지 밖이라면 아무 문제가 없다. 스포츠타운은 죄가 없다.

용역 보고회 현장에서 어떤 인사는 이 개발사업이 유적지 훼손이 아니라고 했다. 엄체호(흔히 ‘격납고’라고 잘못 부르는) 등의 시설은 건드리지 않고 주변 빈터만을 활용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 역시 무지한 소리다. 유적지는 원형에 가까울 때 가치가 있는 것이다. 알뜨르는 비행장 유적이기에 광활한 공간이 같이 남아 있어야 그 가치가 유지된다. 골프장에 둘러싸인 엄체호,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서귀포시 대정읍 산방산 앞으로 알뜨르 비행장 엄체호가 곳곳에 보인다. (사진=제주투데이 DB)
서귀포시 대정읍 산방산 앞으로 알뜨르 비행장 엄체호가 곳곳에 보인다. (사진=제주투데이 DB)


덧셈만이 아니라 뺄셈도 할 수 있어야

그날, 용역 보고회를 마치고 나올 때 누군가 내게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말이 맞긴 하지만, 사유지를 매입하려면 돈이 들지 않습니까, 그게 어려운 점입니다”라고. 그렇다. 바로 이거다. 선착장 주변 상가와 그 너머의 농경지에 스포츠타운을 건설하려면 토지 매입 비용이 발생한다. 반면 알뜨르는 국방부에서 무상 대여를 해줬기에 일이 쉬워진다.

선거를 항상 염두에 두는 행정가들은 지역 개발 공약으로 표를 얻으려 한다. 문제는 그 개발 비용이 넉넉지 않다는 점이다. 그런데 알뜨르처럼 ‘공짜’가 생긴다면? 

나는 이게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지난해 11월부터 시작된 ‘마라해양도립공원 공원계획 변경 용역’의 본래 과업 지시서에는 ‘스포츠타운’이 없었다. 올해 10월 말에 뜬금없이 등장한 게 스포츠타운이다. 

‘공짜 땅’을 활용할 꼼수가 떠올랐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 대정의 유지들은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것이라며 큰 기대를 하고 있다. 이 기대에 호응한다면 표가 될 것이라 판단했을 수 있다. 

지난 13일 서귀포 대정읍 상모리에 위치한 알뜨르 비행장 내 한 엄체호 앞에서 난징 대학살 87주년 제주 추모 11주기 행사가 열렸다. (사진=조수진 기자)
지난 13일 서귀포 대정읍 상모리에 위치한 알뜨르 비행장 내 한 엄체호 앞에서 난징 대학살 87주년 제주 추모 11주기 행사가 열렸다. (사진=조수진 기자)

하지만 나는 둘 다 계산 오류라 생각한다. 스포츠타운이 경제 활성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주장도 사실 검증된 바 없다. 과거와 달리 이제는 흉물로 남은 시설들이 적지 않다. 건설 당시 토목 경기만 반짝하고 완공 이후에는 내리막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 문제는 다음 글에서 다루겠다. 

표가 된다는 생각도 계산 오류다. 물론 지역 유지들은 지지할 것이다. 시설이 들어서면 소소한 이권 하나는 챙길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지역 밑바닥 민심도 그러할지는 의문이다. 유적지 훼손으로 인한 밑바닥 경제는 부정적으로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

게다가 전도적 차원에서 보면 마이너스가 될 것이 분명하다. 역사학계 등 지식인 그룹에서 지속적인 반대 운동을 펼칠 것이다. 문화 예술계에서도 천박한 문화 정책에 혀를 내두를 것이다. 철회하지 않을 경우, 반대 운동은 거세질 수밖에 없다. 

앞에서 돈을 많이 벌어도, 뒤에서 새는 돈구멍이 있다면 결과는 파산이다. 덧셈에만 취해 뺄셈을 잊어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길 바란다. 

이영권

역사사회학을 전공하고 《새로 쓰는 제주사》, 《제주역사기행》 등을 저술한 이영권 박사는 제주4.3연구소, 제주참여환경연대 등에서 활동한 바 있고, 일선 학교현장에서 역사 교사로 오랜 시간 교편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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