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브라이언 헤어, 버네사 우즈 지음, 이민아 옮김, 디플롯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브라이언 헤어, 버네사 우즈 지음, 이민아 옮김, 디플롯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 혹은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다. 주어와 술어가 뒤바뀌었더라도 두 문장에는 차이가 없다. 강함과 생존은 동격으로 여겨진다. 우리 사회를 오늘날까지 추동해온 논리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것은 자연의 진화원리와 다르지 않다고 오랫동안 설파돼 온 주장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추천사에 생물학자 최재천은 “생물학자들의 죄가 크다.”고 쓴다. 동의한다. 그들의 죄라고 치는 수밖에! 적자생존이라는 말은 본래 다윈의 말이 아니다. 다윈은 도리어 최적자가 되는 것만이 생존투쟁에서 살아남는 게 아니라는 걸 여러 방식으로 말하려 들었다. 후대의 과학자들이 다윈을 적자생존과 한 묶음으로 만들었으니 그들의 죄가 크다. 우리는 그저 묻어가자.

개를 키우고 있는 사람들은 다들 한 번쯤 이런 의문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왜 저렇게 나를 좋아할까? 왜 저렇게 사람을 좋아하게 됐을까? 누군가는 개라는 종 자체가 병에 걸린 것 같다고 했다. 인간에 대한 심리적 의존증이 DNA에까지 새겨진 것이라고 말이다. 그럴싸했다. 석연치는 않았다. 그런 의견에는 역시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는 논리가 적용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개는 자기의 조상이었던 늑대처럼 강한 자와 싸우는 대신 그에게 선택받을 수 있도록 복종하고, 의존함으로써 생존을 유지하고 있다는 뜻이니까.

이 석연찮은 대목에서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를 읽을 필요가 있다. 책 제목이 모든 주제를 압축하고 있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심리적으로 유약하고 의존적이 된 늑대가 개로 선택받은 것이 아니라, 붙임성이 있고 친화력이 있는 늑대들이 인간과 함께 살기를 선택했다고 밝힌다. 개가 인간과 함께 생활하는 동안에도 자기가축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최대한의 친화력을 발현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야생을 선택한 늑대는 멸종의 위기에, 사람의 집 마당이나 거실을 차지한 개는 반려 동물의 지위에 이르렀다는 게 이 책의 견해다.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도, 침팬지와 보노보 역시도 늑대와 개의 관계와 비슷한 맥락에 있다.

자, 그렇다면 인간의 경우는 어떨까? 백인우월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위해서 폭력을 동원하는 데 거침이 없고, 그들을 반대하는 이들 역시 “KKK에게 죽음을!” 공공연하게 선언한다. 전쟁, 전쟁 이후의 스탈린주의, 중국의 문화혁명, 무정부 테러 등 모든 것들이 인간의 마음에서 태어났다. “시대와 문화와 국가를 막론하고 기층 심리는 같다. 극단주의자들은 구성원들에게 다른 집단이 우리를 인간 이하로 취급하고 있다고 믿게 만들어 비인간화의 악순환을 개시”한다. 이 잔인함은 인간의 친화력이라는 얼굴의 이면이다. 다정한 본성 속에 자리 잡은 어두운 면이다.

이 책의 감동적인 문장은 불시에 나타난다. “우리 종은 독재자가 되도록 진화하지 않았다.”도 그 중 하나다. 갓 태어난 아이는 본능적으로 부모의 눈동자 움직임을 따라서 움직인다. 자라서는 마주한 상대와 의사사통을 하고자 하는 강한 욕망을 끝내는 성공적으로 실현한다. 그리고 타인과 경쟁은 하지만 한편으로는 집단 안에 있는 타인에게 친절을 베풀기도 하는 존재로서의 인간들은 궁리 끝에 민주주의 같은 제도를 설계한다. 이 부실하고 단점 많고 불안정하고 소란한 제도를 보수하면서 살아간다. 언젠가는 끝내 모두가 모두에게 다정하게 살아보겠다고 말이다. 이 책이 쓰인 시기가 아이러니하게도 트럼프 제왕이 미국을 쥐락펴락하던 때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라는 명제는 생물종의 진화에 대한 새로운 가설이 아니라, 인간 사회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위한 최대한의 절박함이 반영된 기획일지도 모른다.

그걸 염두에 두고 다시 개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자. 책의 주장에 따르면, 평등한 사회일수록 개를 가족의 일원으로 더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개를 대하는 태도에 대한 관점은 우리가 타인 즉, 다른 집단과 다른 인종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도 반영되는 것으로 보인다. 개에 대한 사회지배 성향이 높을수록 ‘열등한’ 집단에 속하는 타인을 동물로 바라보기 쉽다.” 자신과 다른 집단이나 종을 비인간화 하지 않고, 타인에 대해서 독점적이거나 지배적이 되지 않고, 누가 누구를 더 정복했는가를 비교하기보다는 '누가 얼마나 더 많이 친구를 만들었는가'가 더 중요한 가치가 되는 것, 그것은 누가 뭐래도 이상적인 사회의 큰 그림이다. 다시 말하면, 개가 자기가축화를 거치면서 다정력을 상승시켰던 것에서 우리는 인간 사회의 미래를 구상해야 한다. 개가 끊임없이 사람에게 자기의 얼굴을 부비고, 언제나 눈동자로는 자기 보호자의 동선을 쫓으며, 신체적 대화를 통해 감정적 교감을 성공시키는 것처럼. 그러니까 ‘개처럼’ 살아야 한다.

제주시 이도2동에서 '금요일의 아침_조금, 한뼘책방'을 운영하는 노지와 삐리용.
제주시 이도2동에서 '금요일의 아침_조금, 한뼘책방'을 운영하는 노지와 삐리용.

'한뼘읽기'는 제주시에서 ‘금요일의 아침_조금, 한뼘책방’을 운영하는 노지와 삐리용이 한권 혹은 한뼘의 책 속 세상을 거닐며 겪은 이야기를 전하는 코너다. 사전적 의미의 서평 즉, 책에 대한 비평보다는 필자들이 책 속 혹은 책 변두리로 산책을 다녀온 후 들려주는 일종의 '산책담'을 지향한다. 두 필자가 번갈아가며 매주 금요일 게재한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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