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거리 생산수단인 농지가 투기의 대상이 된 지는 이미 오래다. 양도세를 감면받기 위해 실경작자인 임차인과 구두로 계약하여 농업경영체등록을 하고 공익직불금을 받는 부재지주도 많다.
농지법 위반 의혹으로 국회의원 시절 탈당 권고를 받았던 민선8기 오영훈 제주도정에서 이루어진 여섯 차례의 인사청문회에서는 농지관련 문제가 네 차례나 쟁점이 되었다. 농지법 위반 혐의로 강병삼 제주시장과 이종우 서귀포시장은 고발당했고, 양덕순 제주연구원장은 잘못을 시인했으며, 이선화 제주국제컨벤션센터 대표이사는 변명으로 일관했다.
지난 9월에는 주말 체험농장을 운영하겠다며 허위로 농지취득자격증명을 발급받아 서귀포시 지역의 농지 1만322㎡의 지분을 나누어 매입한 혐의로 기소된 대구·구미 주민 8명이 징역 3~6월형과 벌금 300~500만원을 각각 선고받았다.
2021년 말 기준으로 제주도에서 농지를 매입한 후 농사를 짓지 않아 처분명령을 받은 농지는 1만3481필지, 1390ha로 우도면적의 2배가 넘는다. 농지처분명령을 이행하지 않아 부과된 이행강제금도 총 34억7300만원에 달한다.
농지는 자기의 농업경영에 이용하거나 이용할 자가 아니면 소유할 수 없다. 다만 1000㎡ 미만의 주말농장 용도이거나 상속받은 경우는 예외이다. 하지만 비농업 종사자의 농지 소유에 대해 농지법 위반으로 처벌하는 경우는 드물다.
정부통계로도 임차농지 비율이 47.7%(2021년 기준)에 이를 정도로 비농업인의 농지소유가 너무 흔하고 관행이 되다보니 처벌은 말할 것도 없고 감독 자체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고위공직자를 임명할 때마다 농지법 위반이 단골메뉴로 등장한다.
8년 이상 직접 경작했던 농지는 양도세가 감면되고, 농어촌특별세도 면제된다. 이는 농업인이 건강상의 이유나 정부의 국토개발로 인해 농지를 파는 경우 농업인의 조세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것이다. 그런 만큼 요건도 까다롭다.
첫째, 파는 토지는 농지여야 한다. 농지는 공부상 지목에 상관없이 실제로 경작에 사용되는 토지여야 한다.
둘째, 농지를 파는 사람은 농지소재지 또는 농지 소재지와 연접한 시·군·구에 거주해야 한다.
셋째, 농지 취득일부터 양도일까지 기간 중 8년 이상(통산) 직접 경작해야 한다.
넷째, 사업소득과 총급여의 합이 3700만원 이상이거나 복식부기의무자로 일정 금액(부동산 임대 7500만원, 제조업 1억5000만원, 도소매 3억원) 이상 매출이 있는 연도는 자경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한다.
다섯째, 자경감면에 의한 양도세는 한도가 있다. 1년에 1억원, 5년간 2억원이다.
그럼에도 일반인들은 8년 자경기간만 채우면 양도세가 감면된다고 잘못 알고 있다. 그래서 사업소득이나 급여가 3700만원 넘는 사람들도 농사를 지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형식적으로 농사를 짓거나 농지를 임대하고도 본인이 농사를 짓는다고 거짓으로 농업경영체 등록을 한다.
헌법 제21조를 보면 1항에서 ‘국가는 농지에 관해 경자유전의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며, 농지의 소작제도는 금지된다’고 천명하였다. 하지만 2항에서는 ‘농업 생산성의 제고와 농지의 합리적인 이용을 위하거나 불가피한 사정으로 발생하는 농지의 임대차와 위탁경영은 법률의 정하는 바에 의해 인정된다’며 예외의 길을 열어두고 있다.
농지법 역시 제6조 1항에는 ‘농지는 자기의 농업경영에 이용하거나 이용할 자가 아니면 소유하지 못한다’고 돼 있으나 2항부터는 ‘제1항에도 불구하고’ 농지를 소유할 수 있는 여러 예외 조항을 나열하고 있다.
LH직원들의 농지투기 의혹으로 국민적 공분이 들끓자 정부는 지난 해 3월 농지 투기 방지를 위한 ‘농지관리 개선방안’을 마련하였다. 이어 국회는 지난해 7월 농지법, 농어업경영체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 한국농어촌공사 및 농지관리기금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농지 취득자격심사와 취득 이후의 사후관리를 강화하고 부당이득 환수 등으로 농지 투기를 억제하겠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그에 따라 세대별로 관리하던 농지원부는 필지별 농지대장으로 전면 개편되고, 읍·면에 지역농민과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농지위원회를 설치하여 농지를 취득할 시에는 농지위원회의 심의를 의무화 했다.
또한 농업법인 사전신고제가 도입되고, 지자체가 매년 1회 이상 농지소유와 이용현황을 확인하도록 농지이용실태조사를 의무화 했다. 그리고 매년 전국 농지의 소유이용 현황 듣을 상시 조사하고, 농지관련 정보를 총괄적으로 수집, 분석, 관리하는 농지은행관리원을 설치했다.
하지만 정부가 아무리 투기근절 대책을 마련하여도 농지 투기에 따른 이득이 존재하고, 법적인 예외 조항이 있는 한 편법과 불법은 자행될 것이다. 부재지주가 농사를 짓지 않음에도 자기 명의로 농자재를 구입하고, 농산물을 판매한다고 거짓으로 농업경영체에 등록하고 공익직불금까지 수령하는 사례가 여전하다.
약자인 임차농은 임대인의 부당한 요구를 거절할 수가 없기 때문에 부재지주와 임차농이 말을 맞추는 한 이를 밝혀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농지문제의 해결은 경자유전의 원칙을 견지하는 것에서 찾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상속농지든 매입농지 등 비농민이 소유한 농지를 정부가 매입해 농민이 농지를 이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농업은 농민이 농사를 짓는 농지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농지가 부동산 투기의 대상으로 전락하여 사라지면 농민은 살 수 없고, 농민이 살지 않으면 농촌은 붕괴될 수밖에 없다.
쌀 증산왕의 아들로 태어나다. ‘농부만은 되지 말라’는 아버지의 소망을 뒤로 하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다. 대학에서 농사이론을 배우고 허브를 재배하다. 자폐아인 큰딸을 위해서 안정된 직업 농업공무원이 되다. 생명 파수꾼인 농업인을 꿈꾼다. ‘말랑농업’은 건강한 먹거리와 지속가능한 농업을 연결하는 글이다. 격주 화요일 독자들에게 제주의 미래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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