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녹색당 캠페인 자료사진. (사진=플리커닷컴)
캐나다 녹색당 캠페인 자료사진. (사진=플리커닷컴)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세계 환경중심도시 제주실현’이라는 올해 제주특별자치도의 도정 목표에 삐딱이 후배가 딴죽을 걸었다. 도시는 자연 파괴를 전제로 하는데 환경중심 도시라는 어휘가 성립하느냐는 물음이었다. 후배에게 이런 근본적인 질문을 받을 때마다 필자는 논리적 오류를 인정하면서도 나름의 당위를 역설하는 비굴한 개량주의자 신세로 전락한다.

사르트르의 희곡 <닫힌 방>에 나오는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대사처럼 ‘지구를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주범은 너와 나를 포함한 인류 자체다’라는 언설은 얼마나 명쾌한가? 그렇다고 인류를 지구에서 사라지게 할 수는 없지 아니한가? 그래서 현실의 정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에서 시작되는 것이고.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올해 도정 목표는 사람·상품·자본의 국제적 이동과 기업활동의 편의가 최대한 보장되도록 규제의 완화 및 국제적 기준이 적용되는 국제자유도시를 만들자는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의 목적과 견주어 볼 때 진일보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도정 목표가 ‘그린워싱(greenwashing)’인지 아닌지를 감시하면서 그린워싱이 되지 않도록 한편으로는 조력하고 또 한편으로는 압력을 가하는 것이다. 

그린워싱은 환경을 상징하는 ‘green’과 더러운 곳을 흰색으로 덧칠한다는 ‘whitewashing’의 합성어로 실제는 친환경적인 것이 아니지만 친환경처럼 보이도록 포장하는 ‘위장환경주의’를 말한다. 

(출처=Terra Choice 사의 The Seven Sins of Greenwashing)
(출처=Terra Choice 사의 The Seven Sins of Greenwashing)

기후위기가 심각해지면서 환경을 생각하는 가치소비가 트렌드를 넘어 하나의 규범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그러면서 전 세계적으로 유기농업, 탄소배출 절감, 제로웨이스트, 비건 등을 실천하는 인구가 급증하고 있다. 이제 친환경을 넘어 ‘필(必)환경’시대가 개막된 것이다. 

기업들은 이러한 흐름에 맞추어 에너지시스템 최적화, 폐기물 매립 제로, RE100(기업이 사용하는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캠페인) 등 탄소배출 절감과 환경친화적인 생산수단 및 상품 개발에 주력하면서 ESG경영을 부르짖고 있다. 

지난 9월 14일 ‘Don’t buy this jacket’ 카피로 유명한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의 창업주 이본 쉬나드는 ‘지구가 유일한 주주’라며 4조2000억원에 달하는 회사 지분 전부를 기후위기대응과 환경보호 활동에 쓰라고 기부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이번 결정이 “소수의 부자와 셀 수 없이 많은 가난한 사람으로 귀결되는 자본주의가 아닌 새로운 형태의 자본주의 형성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 이러한 사례는 특별한 경우이다. 모든 것을 이익과 손해라는 돈의 논리로 파악하는 기업들은 환경에 대한 관심과 우려를 소비로 표현하는 ‘착한 소비(Meaning Out)’마저도 상업적으로 이용하려고 한다.

벤츠는 2019년 ‘2039년까지 모든 차량을 전기차·수소차로 전환하여 탄소배출량을 대폭 감축한다’는 ‘앰비션 2039’를 발표하였다. 그러나 바로 이듬해인 2020년 독일, 미국, 한국 등에서 판매하는 자동차의 배출가스 저감장치를 조작한 것으로 드러나 소송에 휘말렸다.

아디다스는 ‘신발의 50%가 재활용된다’고 광고했지만 증거 부족으로 프랑스 정부의 광고감독기관으로부터 그린워싱기업으로 지목되었다.

아모레퍼시픽은 한정판으로 종이 병에 담은 이니스피리 화장품을 판매했다. 그런데 ‘페이퍼 보틀’이라고 쓰인 포장지 안에는 플라스틱 용기가 감추어져 있었다. 

다국적 석유 기업인 쉘은 자사를 풍력발전소로 광고한다. 독일군이 사용했던 독가스를 만들고, 유전자 조작 씨앗과 살충제로 돈을 번 몬산토를 인수한 바이엘은 사람, 동물, 그리고 식물의 건강 개선에 앞장선다고 자랑한다. 

방귀 뀐 놈들이 불쾌한 냄새를 지우려고 향기로운 향수를 팔고 있는 형국이다. 

그린워싱은 정보의 비대칭 때문에 발생한다. 기업과 정부는 상품과 서비스에 관한 정보들을 독점하거나 소비자보다 더 많이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해당 정보들을 축소·과장·은폐하여 경제적 이득을 취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린워싱의 해결책은 투명성을 확보하고 정보를 공개하도록 하는 것이다.

지난달 24일 제주시청 일대에서 제주기후위기정의행진이 열리고 있다. (사진=이길훈)
지난달 24일 제주시청 일대에서 제주기후위기정의행진이 열리고 있다. (사진=이길훈)

그린워싱의 최대 피해자는 소비자이다. 그러기에 소비자는 그린워싱 간파법을 익히고, 그린워싱에 해당되면 공표하고, 항의하며, 집단으로 불매하는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야 한다. 

하지만 정직한 친환경 상품 소비로 기업들이 친환경 상품을 생산하도록 유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불필요한 소비 자체를 하지 않는 것이다. 에코백은 동물 가죽과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기 위해 등장했다. 하지만 2011년 영국 환경청 조사에 따르면 에코백은 최소 131회 이상을 사용해야 환경보호효과가 발생한다고 한다. 스테인리스 텀블러도 1000번 이상을 써야 효과가 있다고 한다.

지금 당장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욕망을 전보다 줄여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자원은 고갈되고, 탄소배출은 많아지며, 환경은 오염되고, 종 다양성은 악화되어 지구는 재생불능 상태에 빠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삐딱이 후배의 주장처럼 지구의 생존을 위해 인류를 자연에서 격리하여 한정된 공간인 캡슐도시에서 살아가도록 하는 정책을 펼쳐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비굴한 개량주의자인 필자는 미래비전을 ‘위대한 도민시대, 사람과 자연이 행복한 제주’로 정하고, 국제자유도시 비전을 폐기한다고 선언한 오영훈 도정이 ‘그린워싱’의 의심에서 벗어나려면 제2공항에 대해 찬성인지 반대인지부터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고 주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고기협.
고기협.

쌀 증산왕의 아들로 태어나다. ‘농부만은 되지 말라’는 아버지의 소망을 뒤로 하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다. 대학에서 농사이론을 배우고 허브를 재배하다. 자폐아인 큰딸을 위해서 안정된 직업 농업공무원이 되다. 생명 파수꾼인 농업인을 꿈꾼다. ‘말랑농업’은 건강한 먹거리와 지속가능한 농업을 연결하는 글이다. 격주 화요일 독자들에게 제주의 미래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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