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사진=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사진=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윤석열 대통령은 서울대를 나와 사법고시를 패스한 첫 대통령이다. 윤 대통령은 자신과 같이 서울대를 나온 고시 출신으로만 국정원장·금융위원장·공정위원장·국세청장·대통령비서실장을 지명했고, 서울대[11명(57.9%)]와 고시 출신[9명(47.4%)] 위주로 내각을 꾸렸다. 윤 정부의 인사는 대한민국에서는 시험만 잘 치면 부와 명예는 물론 높은 지위를 쉽게 얻을 수 있음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를 알기에 좀 산다는 부모들은 자식들의 하늘 입장권을 사기 위해 온갖 수단을 활용하고, 때로는 편법과 반칙까지 저지른다. 반면에 그 축에 끼지 못하는 부모들은 현 입시를 ‘할아버지의 재력,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연줄’로 당락이 결정되는 제도라며 차라리 한 번의 시험으로 일등부터 꼴찌까지 줄을 세우는 학력고사로 돌아가자고 주장한다. 대한민국은 시험을 위한 시험에 의한 ‘시험만능 공화국’인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려면 대학까지는 말할 것도 없고, 사회에 나와서도, 심지어는 지방선거 후보가 되기 위해서도 시험을 치러야 한다. 대한민국이 시험만능국이 된 건 시험이 그나마 개인능력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공정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고려대와 서울대에 다니는 학생들이 조민씨의 부모찬스에 촛불을 들었었다. 그들은 그렇게 공정을 부르짖을 만큼 그들만의 능력으로 그 자랑스러운 대학에 들어갔을까? 미식축구 레전드인  배리 스위처(Barry Switzer)는 “어떤 사람들은 3루에서 태어났으면서도 자신이 능력으로 3루타를 친 줄 안다.”는 명언을 남겼다. 그 표현에 따르면 능력을 키울 기회조차 갖지 못했던  흙수저들이 보기에 조민씨는 홈 바로 직전에 태어났고, 그 학생들도 최소한 1루를 지나서 태어났다. 하지만 공정을 논하는 곳에는 경기장에조차 들어가지 못한 자들의 자리는 없다. 

입춘을 맞아 제주의 촛불이 다시 타올랐다. 설 연휴 한 차례 쉬었던 제주의 촛불이 4일 15번째를 맞았다.@변상희 기자
촛불 자료사진. (사진=제주투데이DB)

문제는 이러한 공정성 논란이 능력에 따른 승자독식 피라미드를 인정하는 기제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시험성적이 개인의 능력을 나타내는 객관적인 지표라는 환상을 가지고 있다. 그러기에 시험성적에 따른 승자독식과 패자몰락을 능력에 따른 지극히 당연한 차별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공정성에 민감할수록 성적주의는 공고해지고, 불평등은 참을 수 있어도 불공정은 참지 못하는 사회가 되어간다.

2020년도 전국 40개 의대 신입생의 52.4%, 전국 25개 법학전문대학원의 51.4%가 소득 9분위(월소득 949만원 이상)와 10분위(월소득 1424만원 이상)에 속하는 고소득층의 자녀이다. SKY 의대는 고소득층 비율이 무려 74.1%다. 시험점수가 계층 상속의 지렛대로 이용되고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평등을 개선하려는 노력도 ‘시험도 안치고 들어온 주제에’라는 말에 꼼짝 못하는 것이 대한민국 현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시험을 매개로 능력주의가 구현되는 것이다.  

능력주의는 한정된 자원을 능력에 따라 배분하는 시스템이다. 귀속지위가 아닌 개인능력에 따라 재화와 지위를 나누는 것은 일견 정의로워 보인다. 문제는 능력주의 사회에서는 3루에서 태어난 사람도 자신의 능력으로 3루타를 쳤다고 보상을 독차지하고, 타석에 들어설 기회조차 갖지 못한 사람은 안타를 치지 못했기 때문에 보상에서 배제된다. 능력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3루타는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매화농장의 첫 손님은 꿀벌이다.
매화와 꿀벌. (사진=제주투데이DB)

능력주의의 가장 큰 폐해는 능력주의가 기회와 과정에서의 불평등을 은폐하고 노골적이고 불법적인 불공정을 알리바이 삼아 불평등구조를 유지한다는 점이다. 조국과 한동훈 딸의 특혜에 대한 기사는 물 끓듯 했지만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교육 시스템에 대한 비판 기사는 눈에 띄지 않았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능력주의를 명분으로 계층을 대물림하는 현상이 점점 굳어지고 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부·학력·성·장애 등으로 차별하지 않는 과정에서의 공정뿐만 아니라 경기장 밖으로 밀려난 자도 경기에 뛸 기회를 제공받는 출발선에서의 평등과 실패자도 재기할 수 있는 사회안전망도 구축되어야 한다.  

딸이 대학을 자퇴한다고 선언하였다. 학교에 다녀서 얻는 이익보다 학교에 다니기 위해 포기해야 하는 것이 훨씬 많다는 이유였다. 각시가 “대학 졸업장은 우리나라에서는 상징적 가치를 갖고 있다”며 “남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가는 차별에 대해서도 그렇게 민감한 네가 고졸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아?”라고 협박했다.

그러자 딸 아이는 “그건 모르겠고. 대학 강의에서보다 같이 일하는 중국유학생에게 중국어를 더 잘 배우고 있거든.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률이 40%밖에 안 되는데, 내게 필요하지도 않을 지식을 위해 대학을 다니는 건 시간낭비야.”라며 기회비용을 강조했다. 

두 모녀의 팽팽한 논쟁을 지켜보던 필자도 슬며시 끼어들었다. 각시의 눈치를 보며 “아무리 우수한 개체들도 제꽃가루받이를 계속하면 열등해지는 ‘자식약세’ 와 유연관계가 먼 개체끼리 교배하면 훨씬 뛰어난 F1이 나오는 ‘잡종강세’ 현상이 나타나는 것처럼 순혈주의는 쇠퇴되고 잡종이 대세가 될 거야. 그리고 잡종 세계에서는 경계를 긋는 학력주의가 들어 설 자리가 없지. 학력으로 장벽을 치게 되면 융합 자체가 불가능하거든”이라고 미래에는 대학 졸업장이 중요하지 않을 거라는 말을 돌려서 했다.

또 “자퇴 여부보다 더 중요한 건 어떻게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갈 것인가에 답하는 거야. 아빠는 네가 경쟁에서 이기는 개천용이 되기보다는 네가 좋아하는 일을 사람들과 연대하며 살아가는 잡종이 되었으면 .”라고 덧붙였다. 한국 사회에서 SKY 출신도 아니고 금수저를 물려받지도 못한 딸이 개천용이 될 수 없음을 너무나 잘 알기에 한 말이었다. 

행복은 현실을 직시하는 것에서부터 비로소 시작된다.

*딸의 자퇴 논쟁은 일단 휴학계를 내고 학교를 계속 다닐지 결정을 미루는 것으로 끝이 났다. 

고기협.
고기협.

쌀 증산왕의 아들로 태어나다. ‘농부만은 되지 말라’는 아버지의 소망을 뒤로 하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다. 대학에서 농사이론을 배우고 허브를 재배하다. 자폐아인 큰딸을 위해서 안정된 직업 농업공무원이 되다. 생명 파수꾼인 농업인을 꿈꾼다. ‘말랑농업’은 건강한 먹거리와 지속가능한 농업을 연결하는 글이다. 격주 화요일 독자들에게 제주의 미래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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