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국수 자료사진. (사진=제주투데이DB)
고기국수 자료사진. (사진=제주투데이DB)

관광객에게 제주를 대표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물어보면 대부분은 흑돼지구이, 생선회, 갈치조림, 고기국수라고 대답한다. 제주의 젊은이들도 마찬가지다. 몸국, 자리물회, 보리빵, 오메기떡 정도를 더 보탤 뿐이다. 

하지만 시골 출신인 나는 국으로는 배추국, 미역국, 콩국, 호박잎국, 각제기국, 구살국, 멜국, 정각냉국, 우미냉국 등을 반찬으로는 마농지, 자리조림, 우럭콩조림, 호박탕쉬, 콥대산이무침, 양하무침, 자리젖 등을 먹고 자랐다. 이처럼 제주를 대표하는 음식과 실제로 제주사람들이 먹어왔던 음식 사이에는 괴리가 있다. 

또한 산업화로 인해 먹거리가 시장경제에 귀속되면서 밭과 바다에서 자급자족하던 식재료 중에서 상품화가 가능한 식재료만 살아남았다. 그리고 음식도 만들어 먹던 문화에서 사먹는 문화로 바뀌면서 어머니가 만들어 주었던 음식들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더구나 제주를 대표하는 음식들도 관광객의 입과 눈에 맞추다 보니 자극적이고 화려해져 본래의 음식과 달라지고 있다.

일곱 살 난 아기업개부터 팔십 난 할머니까지 모두가 자기 몫의 일을 해야만 했던 제주에서 식재료를 구입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음식은 자급자족이 원칙이었다. 그리고 자급자족을 가능하게 한 것이 우영(텃밭)이었다. 우영에서 키운 배추와 무로 국을 끓이고, 우영에서 딴 양하로 양하무침을 만들고, 우엉에서 나는 노각으로 냉국을 만들고, 우엉에서 따온 콩잎을 날된장에 찍어 먹었다. 이처럼 제주인들은 로컬푸드보다도 단계가 더 높은 셀프푸드를 먹었던 것이다. 

양애(양하). (사진=제주투데이DB)
양애(양하). (사진=제주투데이DB)

해산물도 마찬가지다. 자기가 잡은 갈치, 옥돔, 볼락, 멸치 등의 어류와 미역, 모자반, 톳 청각, 우뭇가사리 등의 해조류 및 소라, 전복, 보말 등의 어패류로 요리를 하였다. 이처럼 제주음식은 바로 잡은 재료를 사용하였기 때문에 신선하고 안전할 수밖에 없었다.   

제주에서 음식은 즐기는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것이었다. 거기에다가 낮은 토지생산력으로 인해 유한계급인 양반문화가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눈을 즐겁게 하고 입을 만족시키는 화려한 음식이 발달하지 않았다. 제주의 일상적인 식단은 잡곡밥, 배를 채우기 위한 국과 마농지, 콩자반 등으로 매우 단순했다. 

노동에 비하여 생산력이 낮은 토지생산력은 노동의 효율성을 극도로 요구하였다. 따라서 제주여성들은 물질과 밭일에 전념하기 위하여 음식을 간단하게 조리하는 것이 보편화되었다. 또한 음식재료가 신선하였기 때문에 재료 본연의 맛을 내는 데는 간단한 조리법이 최적이었다.

예를 들어 갈칫국은 아버님이 갈치를 낚아오면 어머님이 갈치를 토막 내어 솥에 끓이다가, 우영에 가서 호박과 배추, 풋고추 등을 따다가 썰어놓은 음식이다. 제주의 조리법은 시간이 낭비가 전혀 없으면서도 신선도를 최대한 살리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이제 우리 대부분은 우리가 먹을 음식이 어디에서 왔는지도 모른 채, 그저 마트에 놓인 음식을 구입한다. 오늘날 우리가 먹는 대부분의 음식은 소수의 초국적 식품기업들이 생산하여 대형유통망 체인을 거쳐 초대형 슈퍼마켓에 진열된다. 

대형마트 진열대 자료사진. (사진=이마트 홈페이지)
대형마트 진열대 자료사진. (사진=이마트 홈페이지)

현재의 이러한 농식품체계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먹거리가 상품화되면서 농업은 엄청난 양의 화석연료를 사용하고 있으며 단작화되었다. 이는 환경적으로 재앙이다. 둘째, 그 과정에서 농업은 외부 투입자재를 대량으로 사용하는 산업이 되었다. 종자, 비료, 농기계 등을 기업에 크게 의존하게 됨으로써 농민이 가졌던 생산주권이 심각하게 침해되어 노동자의 처지로 전락하고 있다. 

셋째, 농민과 소비자의 중간에서 시장을 지배하는 식품관련 기업들은 더욱 거대해지고 초국적화되면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한다. 넷째, 그 결과 먹거리의 본래적 의미인 생명은 사장되고, 먹거리도 상품으로만 기능한다. 그래서 소비자는 먹거리 생산에 전혀 관여를 못하는 수동적 존재로 전락한다. 

현대의 농식품체계는 사회적으로나 생태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다. 그렇지만 우리가 먹거리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사회적으로나 생태적으로 좋은 먹거리를 선택하고 생산자들과 연대하며 구조변화를 꾀할 때 변화의 단초는 마련될 것이다. 

올해 처음으로 스스로 재배한 콩을 갈아 만든 콩국을 들이켰다. 내가 무엇을 먹는가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굳게 믿으며…

#지난 2년 간 연재해왔던 [말랑농업]은 필자 개인 사정으로 잠시 쉬어갑니다. 제주투데이 독자들에게 또다른 '말랑한' 상상을 가져다줄 연재를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보려 합니다. 머지 않은 날 다시 만나기를 기대하며…

고기협.
고기협.

쌀 증산왕의 아들로 태어나다. ‘농부만은 되지 말라’는 아버지의 소망을 뒤로 하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다. 대학에서 농사이론을 배우고 허브를 재배하다. 자폐아인 큰딸을 위해서 안정된 직업 농업공무원이 되다. 생명 파수꾼인 농업인을 꿈꾼다. ‘말랑농업’은 건강한 먹거리와 지속가능한 농업을 연결하는 글이다. 격주 화요일 독자들에게 제주의 미래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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