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당옥수수밭. (사진=제주보타리농업학교 제공)
초당옥수수밭. (사진=제주보타리농업학교 제공)

제주의 6월을 대표하는 작물은 단연 단호박과 초당옥수수다. 최근 단호박과 초당옥수수가 서부지역 월동채소를 재배했던 밭들을 점령해 나가면서 제주의 봄 풍경이 바뀌고 있다. 단호박 생산량은 2019년 746톤에서 2021년 2610톤으로 3.5배 늘었고, 올해 재배면적은 450ha에 이른다. 초당옥수수 생산량은 2019년 23톤에서 2021년 905톤으로 39.3배 증가했고, 올해 재배면적은 296ha이다.   

단호박은 베타카로틴(4,783㎍/100g), 칼륨(435㎍/100g), 비타민C(25.99㎍/100g) 등 영양소가 풍부하고, 당도가 높은데도 칼로리는 낮아 다이어트 식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또 크기가 작아 혼자 사는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높다.

초당(超糖)옥수수의 당도는 16~18브릭스로 ‘Super Sweet Corn’이란 이름처럼 파인애플의 당도(14~16브릭스)보다 높다. 하지만 칼로리는 100g당 96㎉로 찰옥수수의 절반 수준이다. 거기에다 생으로도 먹을 수 있어 초여름 간식의 대표주자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또한 단호박과 초당옥수수는 월동채소 후작물로 생육기간이 짧고 재배가 용이해 농민들이 재배를 선호하는 작물이다. 따라서 두 작물의 재배면적은 계속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종자다. 단호박과 초당옥수수 종자는 전량 수입된다. 올해 단호박 씨앗 한 알 가격은 평균 600원이었다. 한 그루에 보통 4~7개가 달리고, 단호박 하나가 평균 1200원에 팔린다. 대부분 농부들은 묘를 사다가 심는다. 그러니 씨앗 값에 육묘비(모종을 기르는 비용:편집자)가 더해진 모종값은 매출액의 15%를 차지한다. 

묘종. (사진=제주보타리농업학교 제공)
묘종. (사진=제주보타리농업학교 제공)

단호박과 초당옥수수만 그런 것이 아니다. 양배추와 브로콜리의 종자 자급률은 1%에 불과하고, 당근은 15%, 양파는 17%다. 당근과 양파의 자급률도 외국 종자를 제때 구입하지 못해서 생겨난 가슴 아픈 수치이다. 최근 국내에서 육종된 ‘싱싱볼’이라는 양파종자는 100g당 9만6000원에 구입할 수 있다. 하지만 농민들은 48만원이 넘는 일본 종자를 구입한다. 종자는 수량과 품질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기에 아무리 비싸도 좋은 종자를 쓰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먹는 청양고추는 1983년 중앙종묘가 태국 고추와 제주도 고추를 교잡하여 만든 품종이다. 경북 청송과 영양 지역에서 임상실험을 했기에 청송의 ‘청’과 영양의 ‘양’을 따서 청양고추라고 이름을 얻었다. 중앙종묘는 IMF 때 멕시코의 다국적 기업인 세미나스에 1억7000만 달러에 팔렸다. 이후 세미나스는 몬산토에 팔렸고, 몬산토는 2018년 630억 달러에 바이엘에 합병됐다. 그래서 청양고추의 특허권은 다국적 기업 바이엘이 가지고 있다. 

초당옥수수. (사진=제주보타리농업학교 제공)
초당옥수수. (사진=제주보타리농업학교 제공)

IMF 시기에 중앙종묘 뿐만 아니라 흥농종묘, 서울종묘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던 종자기업들이 다국적기업에 팔려나갔다. 그래서 세계 20대 종자기업에 한국 기업은 없다. 한국의 종자기업들은 매출액이 5억원 미만인 업체가 89.9%를 차지할 정도로 영세하다. 우리나라 종자기업들의 연구개발비는 다 합해도 연간 300억원이 넘지 않는다. 하지만 이 금액은 바이엘로 합병된 몬산토가 6일 동안 사용하는 연구비이다. 

종자 관련 세계시장은 780억 달러 규모로 내드플래시 반도체 시장보다 크고, 연 5%씩 성장하는 블루오션이다. 또 종자는 식량안보와 직결될 뿐만 아니라 의약·향장품 산업의 원천이다. 그러기에 선진국들은 심화되는 기후 위기 속에서 종자시장을 선점하려고 총성 없는 전쟁을 하고 있다. 특히 후발주자인 중국은 2016년 세계 3대 종자기업인 신젠타를 430억 달러에 인수하는 등 미국으로부터 종자주권을 지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2011년, 종자수출 2억 달러 달성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10년 동안 4911억원을 투자하는 골든시드프로젝트(Golden Seed Project)를 추진하였다. 하지만 2021년 종자 수출액은 6091만 달러에 불과했다. 반면 수입액은 1억3406달러였다. 수치로 보면 분명 실패한 사업이었다. 국회의원들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혔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다.
  

단호박. (사진=제주보타리농업학교 제공)
단호박. (사진=제주보타리농업학교 제공)

딸기가 바로 그 사례다. 2005년 국내에서 재배하는 딸기의 90.8%가 일본 품종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96.3%가 우리 품종이다. 일본에 지급했을 로열티 650억원이 절감된 것이다. 매년 10%씩 증가하고 있는 딸기 수출액은 지난해 6450만 달러에 이르렀다. 또 2020년부터 감귤을 제치고 겨울철에 가장 많이 팔리는 과일이 되었다. ‘설향’, ‘매향’, ‘싼타’ 등 달고, 단단하며, 과즙이 풍부한 신품종이 개발된 덕분이다.

신품종 육성은 오랜 기간 많은 투자를 필요로 한다. 성공률도 낮다. 그러나 성공하면 ‘대박’을 치고, 그 혜택은 국민 모두에게 돌아간다. 

우리 국민들이 겨울에 먹는 신선 채소의 약 40%가 제주산이다. 따라서 영양, 저장성 등 품질이 우수하고 수량성이 뛰어난 월동채소 품종을 개발하면 국민들은 그만큼 건강하고 신선한 채소를 싼값에 먹을 수 있게 된다. 제주도뿐만 아니라 중앙정부가 월동채소의 품종개발연구에 적극 투자해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와 오영훈 도정에서도 여전히 월동채소 품종육성을 위한 실효성 있는 정책은 보이지 않는다.
 
잘 여문 보리씨를 고팡(광) 항(항아리)에 담으며 “밭보다 씨가 중하다”고 혼잣말하시던 아버님의 흐뭇한 표정이 새삼 그립다.

고기협.
고기협.

쌀 증산왕의 아들로 태어나다. ‘농부만은 되지 말라’는 아버지의 소망을 뒤로 하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다. 대학에서 농사이론을 배우고 허브를 재배하다. 자폐아인 큰딸을 위해서 안정된 직업 농업공무원이 되다. 생명 파수꾼인 농업인을 꿈꾼다. ‘말랑농업’은 건강한 먹거리와 지속가능한 농업을 연결하는 글이다. 격주 화요일 독자들에게 제주의 미래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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