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맥주의 직원이 맥주를 따르고 있다.@김관모 기자
(사진=제주투데이DB)

비가 쏟아질 것 같다가도 끝내 오지 않는 날씨가 한동안 계속되었다. 장마철인데도 과수원 구석에 심은 수박과 노각은 가뭄에 지쳐 자라는 것을 잊었다. 밤더위를 먹은 감귤들도 지천으로 떨어졌다.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어서 퇴근 후에 과수원으로 달려가 물을 주었다. 내 몸도 땀으로 흠뻑 젖었다. 

집에 돌아와 아무도 없는 거실에서 김추자의 ‘봄비’를 틀어놓고 맥주를 마셨다. 입은 시원함에, 눈은 관능적인 춤사위에, 귀는 화염이 터지는 것 같은 목소리에 완전히 압도됐다. 에포케의 순간이었다. 그렇게 필자는 ‘하루 끝자락에 마시는 차가운 맥주야말로 삶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인지도 몰라요’라는 하루키의 말을 실감했다. 

예수는 보리를 재배하지 않는 지역에서 활동했다. 그래서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죽음의 물은 생명의 맥주’로 바뀌지 않았고, 최후의 만찬에서 ‘너희를 위해서 흘리는 피는 맥주’가 될 수 없었다. 로마제국에서 보리는 가축사료였기 때문에 보리로 빚은 맥주를 마시는 사람 또한 야만인 취급을 받았다. 

보리. (사진=플리커닷컴)
보리. (사진=플리커닷컴)

헤브라이즘과 로마제국의 전통을 계승한 중세유럽에서도 맥주는 여전히 2등 주류였다. 지금도 맥주는 소믈리에를 두어야 하는 와인과 달리 박스째 사서 마시는 대량생산품으로 취급된다.(물론 수제맥주를 찾아 브루어리 투어를 하는 맥주 애호가들의 생각은 다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맥주가 생산된 것은 1933년 조선맥주(하이트맥주 전신)와 소화기린맥주(동양맥주 전신)가 설립되면서부터이다. 해방 후 두 회사는 적산기업으로 관리되다가 1951년 민간에 불하되었다. 전쟁으로 멈추었던 두 회사는 1953년 휴전이 되자 다시 가동되었다. 

1950년대에 맥주는 세금을 가장 많이 냈던 3, 4위 기업이 동양맥주(오비맥주 전신)와 조선맥주였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516쿠데타로 고급요정이 대중음식점으로 바뀌면서 맥주소비량은 절반으로 줄었고, 이후 1970년대까지 술 소비에서 맥주의 비중은 5%를 넘지 못했다. 

70년대 후반 중동건설 붐과 수출호조로 경기가 활황 국면에 들어서면서 맥주를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 88올림픽을 치루면서 맥주는 대중의 술로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한국농수산유통공사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사람이 즐기는 술은 맥주(42.4%), 소주(25.4%), 전통주(20.0%), 리큐르주(5.1%), 외국산 와인류(3.4%), 외국산 증류주(3.1%)순이었다. 

코로나19로 ‘홈술’족이 부쩍 증가했는데, 홈술족이 많이 마시는 술도 국산맥주(28.3%), 소주(27.5%), 수입맥주(25.4%), 와인(6.0%), 막걸리(4.4%)순이었다. 맥주는 주류계의 절대강자임이 분명하다. 

맥주는 색깔과 단맛을 결정하는 맥아, 쌉쌀한 맛으로 맥아의 단맛을 상쇄하고 보존기간을 늘려주는 홉, 알코올 발효를 담당하는 효모, 깨끗한 물로 만들어진다. 그런데 국산 맥주에 사용되는 맥아는 95% 이상, 홉은 99% 이상, 미생물도 99% 이상이 외국산이다. 원료의 원산지를 따지면 국산이라고 말하기가 민망할 정도다. 제주위트에일, 제주거멍에일, 제주백록담에일 등 제주를 전면에 내세운 제주맥주도 일부 첨가물을 빼면 100% 외국산 원료를 사용한다. 이름만 제주인 것이다.

▲왼쪽부터 제주위트에일, 제주펠롱에일@사진제공 제주맥주
제주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일부 첨가물을 빼면 대부분 외국산 원료로 만든다. (사진=제주맥주 제공)

지금은 맥주를 외국산 원료로 만드는 것이 당연시되지만 15년 전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맥아의 원료인 맥주보리 자급률은 1986년 100%였다. 그런데 올림픽 특수로 맥주 소비가 급격히 늘면서 맥주보리가 수입되기 시작했고, 수입량은 점점 늘어났다. 그래도 2010년까지는 맥주보리 자급률은 25~45% 수준을 유지했다. 

하지만 한·EU, 한·미 FTA가 잇달아 체결되자 가격과 품질에서 외국산에게 밀린 국산 맥주보리는 설 자리를 완전히 잃었다. 그래서 1980년대 8000ha 내외였던 제주의 맥주보리 재배면적은 2021년 1742ha로 줄었다. 이를 월동채소가 대체하였다.  

홉도 마찬가지다. 홉은 1966년부터 재배되기 시작해 1985년에는 생산량이 675톤에 이르렀고, 1987년에는 미국으로 수출까지 했다. 그러나 홉도 수입개방의 파고를 이기지 못해 지금은 수제맥주에 쓰이는 일부를 제외하면 전량 수입된다.     

국내 수제맥주 시장은 최근 2년 새 ‘곰표밀맥주’를 비롯해 100여종이 출시될 정도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2014년 54개에 불과했던 수제맥주 업체 수는 2021년 163개로 늘었고, 매출액도 같은 기간 164억원에서 1520억원으로 10배 가까이 증가했다. 맥주시장에서의 점유율도 4.9%로 높아졌다.

제주맥주 양조장의 모습(사진제공=제주맥주)
제주맥주 양조장. (사진=제주맥주 제공)

하지만 이러한 양적성장이 질적 성장으로 이어질지는 의문이다. 곰표밀맥주나 제주맥주처럼 잘 나간다는 수제맥주들이 크래프트 특유의 맛으로 승부하는 ‘Only One’을 지향하기보다는 대량 판매를 위해 이미지와 디자인에 초점을 맞추는 ‘Number One’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제맥주라는 용어는 원래 소규모 양조장에서 만드는 ‘크래프트 비어’를 직역한 것으로 공장형 맥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다양한 특색을 가미한 창의적인 맛과 장인정신이 핵심이다. 

그런 의미에서 맥아, 홉, 효모, 물 등 100% 제주산으로 만든 수제맥주를 제주에서 맛보고 싶다, 또 그런 제주 특유의 ‘브루어리’를 찾아다니는 투어가 제주여행의 하나로 자리 잡기를 기대해 본다. 

그렇게 해서 맥주보리 사용량이 많아지면 월동채소 연작으로 나날이 병들어 가는 제주의 땅과 물도 비료와 농약을 덜 써도 되는 맥주보리 재배로 되살아날 것이다. 필자가 정말 누리고 싶은 것은 넓게 펼쳐진 맥주보리밭 가장자리에 앉아, 김추자의 봄비를 들으며, 바람처럼 쓰고도 시원한 맥주를 딸아이와 함께 마시는 것이다. 

고기협.
고기협.

쌀 증산왕의 아들로 태어나다. ‘농부만은 되지 말라’는 아버지의 소망을 뒤로 하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다. 대학에서 농사이론을 배우고 허브를 재배하다. 자폐아인 큰딸을 위해서 안정된 직업 농업공무원이 되다. 생명 파수꾼인 농업인을 꿈꾼다. ‘말랑농업’은 건강한 먹거리와 지속가능한 농업을 연결하는 글이다. 격주 화요일 독자들에게 제주의 미래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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