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에서 공모한 '가고 싶은 가로수 길' 사진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월정사 가는 길'. 제주도의 도로확장 공사 계획으로 인해 가로수 구실잣밤나무들이 사라질 위기다.(사진=제주시 제공)
제주시에서 공모한 '가고 싶은 가로수 길' 사진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월정사 가는 길'. 제주도의 도로확장 공사 계획으로 인해 가로수 구실잣밤나무들이 사라질 위기다.(사진=제주시 제공)

‘가장 걷고 싶은 가로수길’ 제주시 사진 공모전에서 최우수작으로 선정된 정실마을 ‘월정사 가는 길’의 구실잣밤나무들이 잘려 나갈 운명에 처했다. 행정당국은 이미 ‘전국 가장 아름다운 도로’로 선정된 비자림로의 삼나무 900여 그루와 설촌 때부터 주민들과 애환을 같이해온 제성마을의 벚나무 12그루를 무참히 베어냈다. 

그런 제주특별자치도가 지난 5일 ‘도민이 행복한 제주숲 만들기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제주도는 2026년까지 663억원을 투입하여 도시바람길숲, 장기미집행 도시공원 등을 조성하고, 도로변과 중앙분리대 등 자투리 공간을 녹화하는 데에 600만 그루의 나무를 심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면 2만6100톤의 탄소가 흡수되어 승용차 1만875대의 배출가스를 감축할 수 있다고 한다.

한편에서는 온실가스를 내뿜는 자동차들이 더 빨리 더 많이 달릴 수 있도록 나무들을 베어내면서 또 한편으로는 탄소 넷 제로를 위해 나무를 심겠다는 것이다. ‘파괴가 곧 건설이다’라는 말이 중첩된다.  

지난달 말 기준으로 제주도에 등록된 자동차는 68만4467대이다. 이중 도내에서 실제로 운행되는 차량은 역외세원차량 27만6249대를 제외한 40만8218대이다. 이를 기준으로 해도 제주도는 한 사람이 0.602대(전국평균 0.493), 한 세대가 1.312대(전국평균 1.071)를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전국 17개 시·도 중에서 전남 다음으로 높은 수치이다.

제주도의 도로 연장은 총 3217㎞로 일주도로를 열여덟 번 도는 길이다. 인구 1000명당 도로 연장은 4.8㎞로 전국 평균(2.2㎞)에 비해 두 배 더 길고, 면적 1㎢당 도로연장은 1.7㎞로 전국평균(1.1㎞)에 비해 35% 길다. 제주도의 도로 면적은 90㎢이다. 도로 면적 비율도 제주도는 4.8%(전국평균 3.4%)로 전국 17개 시·도 중에서 특별·광역시들을 제외하면 가장 높다. 

차량으로 가득 찬 제주시 도로. (사진=제주투데이DB)
차량으로 가득 찬 제주시 도로. (사진=제주투데이DB)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퇴근에 소요되는 시간은 제주도가 평균 1시간 21.1분(출근 34.1분+퇴근 47분)으로 전국평균 1시간 19.3분(출근 34.2분+퇴근 45.1분)보다 오래 걸리고, 특별·광역시들과 경기도를 제외하면 가장 길다. 

이렇다 보니 제주도 전체의 온실가스 직접배출량(4284천톤CO2 eq)에서 수송 부문(2018년 기준 2271천톤CO2 eq)이 53.0%를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2050년까지 제주도에서 탄소중립을 실현하려면 자동차 이용 자체를 줄일 수 있게 하는 정책이 핵심이 될 수밖에 없다. 화석연료로 가는 전기차로 탄소 없는 섬을 만들겠다는 정책은 눈 가리고 아웅이다.     

도로를 뽑고 확장하면 도시가 커진다. 도시가 커지면 도보나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것이 힘들어지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데도 불편이 가중된다. 그러면 자가용을 구입할 수밖에 없게 되어 도로는 더 정체되고 교통은 더 혼잡해진다고 한다. 

따라서 교통정체와 혼잡을 줄이기 위해서는 도로를 확장하는 공급 중심의 정책보다는 이동의 필요 자체를 줄이는 수요억제 정책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그런 정책을 추진하는 도시 중의 하나가 제주도와 인구 규모가 비슷한 미국 오리건주 북서쪽에 위치한 포틀랜드다. 

포틀랜드는 “Keep Portland Weird(포틀랜드를 괴짜로 놔두어라)”라는 슬로건이 말해주듯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성장보다는 ‘작은 도시로 유지’하려는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경제성장을 이룬 미국 도시 중에서 탄소 배출량을 감소시킨 유일한 도시이다.  

도로 확장으로 인해 베어진 제주시 연동 제성마을 입구 벚나무. (사진=조수진 기자)
도로 확장으로 인해 베어진 제주시 연동 제성마을 입구 벚나무. (사진=조수진 기자)

이 도시에서는 도보나 자전거 또는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출퇴근을 하고 시장을 본다. 이는 도보 20분 권역에 주택, 상점, 사무실 등 생활에 필요한 핵심 기능이 밀집된 고밀도 다운타운을 조성하고, 걷기 편한 보도와 노면 전차인 ‘라이트레일’ 및 버스로 대중교통시스템을 정비했기 때문이다. 

또한 농지와 자연을 지키려고 ‘도시성장한계선’을 설치하였다. 농가는 농지 훼손이나 판로 걱정 없이 농사를 지을 수 있고, 시민들은 가격이 조금 비싸도 지역 내에서 생산된 농산물과 공산품을 구입한다. 지역 안에서 경제적 선순환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기후위기는 텀블러로 커피를 마시고, 플라스틱 병에 담긴 생수를 사지 않으며, 에코백을 들고, 쓰레기 분리배출을 잘하는 것만으로는 막을 수 없다. 과잉소비로 유지되는 경제체제가 지속되는 한 잉여 생산으로 인한 탄소배출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11일 오후 찾은 제주시 구좌읍 비자림로 확장 공사 현장. (사진=조수진 기자)
지난 6월11일 오후 찾은 제주시 구좌읍 비자림로 확장 공사 현장. (사진=조수진 기자)

자본주의는 생산과 소비라는 두 개의 바퀴로 굴러간다. 수요보다 생산이 부족했던 산업자본주의시대에는 상품은 생산되는 즉시 팔려나갔다. 하지만 생산력이 발전하여 생산이 소비보다 많아지자 상품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이것이 경제공황이다. 

이때부터 자본은 ‘남보다 특별하다는 욕망과 남보다 뒤처진다는 공포심을 불러일으켜 그 상품이 꼭 필요하다고 느끼게 만드는’ 마케팅으로 과잉소비를 창출하기 시작했다. 이런 마케팅에 노출된 소비자들은 무의식적으로 브랜드를 수용하여 자기 정체성을 브랜드로 표현하게 되었다. 내가 하는 소비가 나의 의지대로 하는 소비가 아니라는 말이다.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길은 어쩌면 ‘나는 어떤 소비를 얼마까지 해도 되는가?’를 고민하고, ‘자리(自利)가 이타(利他)인, 그럴 수 없다면 적어도 ‘자리가 해타(害他)가 되지 않는’ 소비에서부터 열릴지도 모른다.    

‘월정사 가는 길’은 내가 먼저 ‘자동차가 불편한 도시’의 삶을 선택할 수 있을 때에만 살아남을 수 있다.

고기협.
고기협.

쌀 증산왕의 아들로 태어나다. ‘농부만은 되지 말라’는 아버지의 소망을 뒤로 하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다. 대학에서 농사이론을 배우고 허브를 재배하다. 자폐아인 큰딸을 위해서 안정된 직업 농업공무원이 되다. 생명 파수꾼인 농업인을 꿈꾼다. ‘말랑농업’은 건강한 먹거리와 지속가능한 농업을 연결하는 글이다. 격주 화요일 독자들에게 제주의 미래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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