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제주특별자치도, 제주도의회, 강정마을회는 강정 크루즈터미널 앞에서 ‘상생화합 공동선언식’을 개최했다. 강정해군기지 건설 과정에서 발생한 반목과 갈등을 종식하고 명예를 회복한다는 취지였다.
'다시 부는 상생 화합의 바람'을 주제로 한 이날 행사에서 원희룡 도지사와 좌남수 도의회 의장은 책임을 통감한다면서 화해와 상생을 말했다. 2000년 4·3진상규명특별법 제정 전후부터 본격적으로 나온 화해와 상생이 2021년 강정마을에서 다시 등장한 것이다. 행사장 바깥에서는 찬반으로 갈린 마을 주민들이 충돌하고 있었다.
9일 오전 제주시 오라동 제주투데이 사무실에서 제주대안연구공동체와 시민정치연대 제주가치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수요정책라이브러리’에서 강은주 진보당 제주도당 위원장은 "현재진행중인 제주4·3은 강정마을로 연결된다"며 최근 있었던 강정마을 상생화합 선언식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진보 정당이 말하는 제주의 진보 정책’을 주제로 아홉 번째 강연을 맡은 강은주 위원장은 “전혀 다른 사안처럼 보이지만 가해자는 숨고, 피해자를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눈 뒤 이제 화해하는 방식이 똑같다”며 "과연 누구를 위한 화해와 상생이냐"고 반문했다.
제주제2공항도 마찬가지다. 공항 예정부지인 성산 주민들을 찬반으로 쪼개서 피해자끼리 반목하게 만들고 공동체가 와해된 이후에야 갈등 치유 필요하다는 식은 7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강 위원장은 제주4·3, 강정해군기지, 제2공항 모두 제주의 지정학적 가치 때문에 촉발된 문제라고 했다. 제주는 한반도, 중국대륙, 일본열도 어느 곳으로도 접근이 용이한 해상 요충이다. 따라서 일본은 '침몰하지 않는 항공모함(불침항모)'이라며 제주 모슬포를 공군기지로 만든 바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는 대미 결전의 최후 보루로 삼기 위해 섬 전체를 요새화 하기도 했다.
미군정 통치시절 발생한 4·3의 참혹한 피해도 무관하지 않다. 제주는 한반도를 둘러싼 나라들 사이에 낀 동북아의 화약고 역할을 해왔고, 이같은 역사는 강정해군기지를 거쳐 제2공항까지 연결된다.
강 위원장은 “'제주민군복합형관광미항'이라는 이름으로 미혹하게 하고 건설을 강행했지만 결국 해군기지였다. 제주제2공항도 마찬가지다. ‘성산공군기지’로 갈 것이다. 냉전시대에는 소련을 현재는 중국대륙을 견제 할 요새로서 제주를 군사기지화 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먼저 아직 정명되지 못한 제주4·3을 민중항쟁으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군사기지 없는 평화의 섬'을 실현하는 것이야 말로 '4·3민중항쟁' 정신을 이어온 제주가 풀어야 할 과제라고 했다.
그는 "불평등한 한미관계를 청산하지 않고는 친일청산도, 민주주의 전진도, 남북관계 진전도 이룰 수 없다"며 "주한미군철수를 비롯한 평등한 한미관계 수립이 ‘자주국가’로 나아가는 선결과제"라고 강조했다.
진보당이 꿈꾸는 자주국가는 노동자가 권력 주체가 되는 사회다. 우리 모두가 노동자라서다.
강 위원장은 “자주국가와 노동해방을 말하면 빨갱이로 치부해 진보정당의 씨를 말린 것이 한국 정치”라며 “지난 70년 간 한국사회 집권한 정치세력은 두 당 밖에 없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번갈아 집권하며 만든 한국사회는 어떠한가”라고 질문했다.
그는 “노동시장 진입이 어려워진 청년들은 대한민국을 헬조선이라고 부르고 있고, 자살률과 노인빈곤률은 세계 최고다. 두 세력 중 어느 세력이 집권해도 노동계급은 사회의 주인이 아니었다”고 했다.
따라서 상위 1% 엘리트에게 정치를 대신(대의민주주의) 맡기지 말고 노동자 자신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는 직접 정치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강 위원장은 "오는 8월부터 내년 대선 준비에 나선다"며 진보당의 의제와 정책들을 짧게 소개하기도 했다. 주로 노동자, 농민, 여성, 청년, 장애인 등 사회의 약한 고리를 위한 정책들이었다.
노동정책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공공부문 민간위탁 폐지와 직접고용 △생활임금 현실화 △관급공사 노동자 보호조례 제정 △지방정부에 노동전담부서 설치 등이다.
강 위원장은 특히 “진보집권은 농민이 주인이 되는 과정”이라며 농민 후보를 발굴해 농민기본법 제정 운동을 벌이겠다고 약속했다.
농민기본법 제정 외에도 △농민수당 현실화 및 농민수당지원에 관한 조례 개정 △농산물최저가격보장조례 △경자유전의 원칙 확립 △농업재해대책 현실화 △여성농업인 및 청년농업인 육성 △친환경 농업에 대한 지원 및 체계 구축 등 다양한 농업 정책을 소개했다.
눈에 띄는 것은 △대체에너지 확대 △취약계층에 대한 물·전기·가스 무상공급, △전기차 충전소 확대 △주민참여 형 도시숲 공원 조성 △미세먼지 저감 조례 제정 등 그간 약했던 환경과 에너지 관련 정책들도 기후변화 대응 대책으로 내놨다는 점이다.
강연을 마친 강 위원장은 택배노동자 총파업 기자회견장으로 서둘러 걸음을 옮기며 “진보는 한 발 나아가는 것이다. 나아갈 때 자기의 것을 내려놓고 가는 것"이라고 했다.
‘친재벌’벌이 아니라 ‘친노동’을 통해 착취와 약탈을 규제하고 일하는 사람들이 대접받는 ‘노동존중사회’야말로 진보당이 말하는 진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