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들리 스콧 감독의 '델마와 루이스(1991)'에서 두 주인공은 경찰의 추격 끝에 그랜드 캐년 벼랑 끝에 몰리게 된다. 코너에 몰린 델마와 루이스는 '앞으로만 달리자'고 다짐하며 벼랑으로 질주한다. 제주도는 지금 그 추락하는 자동차 속에 있다."
제주대안연구공동체와 시민정치연대 제주가치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수요 정책 라이브러리'에 첫 주자로 나선 박경훈 전 민예총 이사장은 제주의 현실을 영화 '델마와 루이스' 마지막 장면에 비유했다.
그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 19)가 종식되면 다시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는것 같지만 팬데믹은 한계에 도달한 사회에 대한 하나의 경종이다. 지금과 같은 대규모 관광산업을 제주도 기간산업으로 끌고가는 한 제주도는 곧 바닥으로 추락할 것"이라고 했다.
'저항의 역사 다른 내일을 위한 제주 담론'을 주제로 이날 강연을 펼친 박경훈 전 이사장은 내부 식민지적 역사를 가진 제주 역사를 수탈과 개발에 대한 투쟁사로 정리하며 지금부터라도 성장 중심 정책을 폐기하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상상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장이 이같은 무시무시한 경고를 한 이유는 화석연료를 태워 이룩한 산업화 시대가 이제 저물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1972년 발간된 이후 현재 '실제적 예견서'로 재평가 되고 있는 '성장의 한계'를 토대로 도내 현실을 설명했다.
'성장의 한계'는 당시 자본주의 시대의 미끼인 성장론에 찬물을 끼얹는다는 점에서 자본가와 그에 따른 전문가들에게 냉대를 받았다.
하지만 "성장주의에 기반해 지금의 시스템을 유지하면 적어도 2050년, 빠르면 2030년 안에 성장은 한계에 이른다"는 이 책의 경고는 40년이 지난 지금 현실이 됐다.
비단 우려만은 아니다. 제주지역 경제성장률만 보더라도 2018년부터 전국 평균을 밑돌다 지난해엔 코로나 19 직격탄을 맞아 폭삭 주저 앉았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제주경제 브리프’를 보면 지난해 제주 경제는 -3% 안팎의 성장률을 보였다. 또 지난 일년 사이 1만 명이 직장을 잃어 실직자가 총 2만명으로 늘었다. 이는 고용통계 작성 이후 역대급 기록으로 과거 IMF 시기를 능가하는 수치다.
문제는 코로나 발 '고용쇼크'를 해결 할 뾰족한 대책이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날 강연에 참석한 30대 청년은 "떨어지는 자동차가 바닥에 닿을 때 죽는 건 미래세대"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과연 코로나 19만 끝나면 해결할 수 있을까. 그는 위기의 시대가 끝나지 않을 것 같아 불안하다고 전했다.
지금의 위기는 코로나 19로 인해 야기된 것이 아니다. 사실상 '성장의 한계'를 통해 40년 전에 예견됐지만 이제야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팬데믹이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수면 위로 끌어 올리고, 낙관론으로 모르쇠하던 한계 사회를 앞 당겼을 뿐이다. 박 전 이사장이 성장 중심 사회를 유지하는 건, 추락하는 자동차 속에서 즐기는 칵테일 파티와 같다고 말한 이유다.
이날 박 전 이사장은 세계를 하나의 시장으로 만든 신자유주의가 코로나 19 시대의 마중물 역할을 했다고 역설했다.
그는 "메르스가 도시로 오는 데 500년이 걸렸는데 지금은 5일밖에 안 걸린다. (팬데믹은) 초연결 사회의 완판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1980년대 신자유주의 질서라는 이름으로 지구화를 주도한 미국과 영국은 경제 영역에서 개인과 국가가 연결되기를 요구했고, 그러한 지구적 실험은 2002년 '국제자유도시'라는 이름으로 제주도까지 이어진다. 팬데믹으로 인해 전 지구적 시장이 멈추며 우리는 현재 시스템이 질병 하나에도 붕괴될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했고, 이는 국제자유도시라는 신자유주의 실험실이 된 제주도도 예외는 아니다. 박 전 이사장이 기간산업으로서의 대규모 관광산업을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에 박 전 이사장은 "코로나 위기는 호포사피엔스 문명의 예견된 미래였다"며 '성장의 한계'에 수록된 프랑스 수수께끼를 하나 냈다.
하루에 2배씩 면적을 넓혀 가는 수련이 있다. 만일 수련이 자라는 것을 그대로 놔두면 30일 안에 수련이 연못을 꽉 채워 그 안에 서식하는 다른 생명체들을 모두 사라지게 만들 것이다. 그러나 처음에 보기에는 수련이 너무 작아서 별로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수련이 연못을 반쯤 채웠을 때 그것을 치울 생각이다. 29일째 되는 날 수련이 연못의 절반을 덮었다. 연못을 모두 덮기까지는 며칠이 남았을까?
박 전 이사장은 "29일? 아니다. 남은 시간은 단 하루다. 시간이 없다. 제주도의 비극은 성장의 한계에 대한 시대적 사유가 전혀 고려되지 않은 장기비전과 전략을 마치 제주미래의 청사진인 양 흔들어대고 있다는 데 있다"며 "이제는 개발에 의한 성장보다 섬의 환경수용력을 생각할 때"라고 강조했다.
또 "탄소발자국 산업으로 대표되는 관광으로 먹고사는 제주도의 산업구조는 반환경적이며, 반생태적 속성을 지닌다"며 "인간이 개발이란 명목으로 자연을 파괴하며 사는 삶은 (코로나 19 사태가 보여주듯)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그렇다고 기간산업인 관광산업을 버리면 제주도는 당장 먹고 살 길이 막막해진다.
이에 대해 박 전 이사장은 "GDP(국내총생산)는 결코 누가 돈을 버는지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정부와 경제인들, 소위 자본가들은 GDP만 오르면 제주도민 모두 잘 살 것인 양 떠들었다. GDP 낙수효과로 우리의 삶은 풍요로워졌냐"며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제주 경제 현실이 보여주지 않냐"고 답답해 했다.
그러면서 "제주를 먹여살린다는 관광산업은 우선적으로 대규모 자본이 필요하다. 결국 도내자본으로 감당 안 되니까 투자유치, 외자유치로 갔다. 그 결과가 어떤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천혜의 자원을 이용해 얻은 수익은 대자본에게 돌아가고 떡고물이라고 하는 일자리는 임금이 낮은 비정규직이나 일용직이 대부분"이라며 "제주도는 40년 간 다른 선택지를 찾지 않고 가지 말아야 할 벼랑 끝으로 계속 달려온 셈"이라고 개탄했다.
그렇다면 다른 제주는 가능할까?
박 전 이사장은 "제주도가 다음 세기에도 살아남으려면 지금의 약탈적 관광올인 정책을 폐기하고 환경수용력 안에서 새판을 짜야 한다"고 했다. 기간산업으로서 관광은 리스크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한계 초과 시대를 극복하기 위한 경제 구조 재배치, 환경 정책의 포괄적인 재검토, 위기에 대한 과학적 정보 수집과 예측치 확보, 사회적 총량으로서의 위험부담률과 위험부담금 산출 등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제라도 구체적인 상상력을 가동할 때다. 아직 뾰족한 답이 있는 건 아니지만 이 강좌가 흩어져 있는 담론들을 모아 상상력을 구체화 시키는 실천 중 하나가 될 것"이라며 강의를 마무리 했다.
한편 두 번째 '수요정책라이브러리'는 고은영 전 제주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이 오는 8일(목) 오전 10시 제주대안연구공동체에서 '다른 제주 만들기 실전 1'에 대해 이야기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