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박소희 기자)
제주대안연구공동체와 시민정치연대 제주가치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수요 정책 라이브러리'가 8일 오전 10시 제주대안연구공체에서 진행됐다. (사진=박소희 기자)

제주 경제는 지난 몇 년간 지표상 뚜렷이 성장했지만, 도민의 삶은 나아졌는가. 

8일 자신을 '동네백수'라 소개한 고은영 전 제주도지사 후보는 이같은 질문에 "아니요"라고 말하며 다른 해답을 찾는 실험을 제주도가 시작해야 할 때라고 제안했다.  

제주대안연구공동체와 시민정치연대 제주가치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수요 정책 라이브러리' 두번째 주자로 나선 고은영 씨는 이날 '다른 제주 만들기 실전 1' 주제로 강연하며 제주 정책과 예산 목표를 '부(GRDP:지역내총생산)의 성장'이 아닌 '행복 증진'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했다. 

GRDP는 지금까지 지역경쟁력을 평가하는 주요한 지표로 활용됐다. 하지만 GRDP는 경제활동의 명암을 모두 반영하진 않는다. 

가령 2011년 11조였던 제주도 GRDP가 2019년 20조로 두배 가까이 증가했지만, 고용지표를 살펴보면 비정규직 비율은 전국 최고 수준이다. 양정 팽창으로 경제활동 인구는 증가했지만 임금 노동자 평균 임금은 전국 꼴찌로 지역 격차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 동시에 사회복지 서비스도 전국 최하위 성적표를 받아 사회적 불균형 해소 여지도 불투명하다.

쓰레기 문제도 심각하다. 2019년 제주도 생활폐기물 배출량은 약 1240톤으로 2009년 622톤 대비 2배 정도 늘었다. 현재 도내 적체량은 8만톤. 이중 봉개매립장에만 6만5000톤이 쌓여 있다. 

교통량 증가로 교통체증이 일상화 된지도 오래다. 2010년 25만여대였던 등록 자동차 대수는 지난해 말 기준 61만여대로 2.6배 늘었다. 

뿐만 아니라 농가 부채는 2019년 기준 전국 평균 3572만 원 보다 약 2.1배(7513만 원)높다. 

고 씨는 물었다. 제주 지역 총생산 20조 시대, 우리는 행복한가. 경제는 성장했는데, 왜 도내 자살률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는가. 

그는 "경제중심의 GRDP 증가는 교통·쓰레기·주거·노동 등 제주의 어두운 그늘까지 담지 못한다."며 국제자유도시가 견인한 제주도는 현재 생산과 소비 외의 다른 욕구가 거세된 '상실 사회'라고 비판했다. 

(사진=박소희 기자)
 8일 자신을 '동네백수'라 소개한 고은영씨는 지속가능한 제주도를 꿈꾼다면 모든 개발 전략을 도민 행복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제안했다. (사진=박소희 기자)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가 내놓은 해답은 낯설면서도 달콤했다. 

그는 도민행복을 정책 목표로 설정하고 모든 개발 전략의 목적을 도민의 행복 증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를 위해 제주의 가치들을 새롭게 설정하고, 제주의 성공을 다른 방식으로 측정할 수 있는 '행복지표'를 개발해야 한다고 했다.

허무맹랑하게 들릴 수도 있는 고 씨의 제안은 이미 뉴질랜드를 비롯해 몇몇 국가들이 정책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30대 뉴질랜드 여성 총리 저신다 아던은 총예산의 3.4%에 해당하는 38억 뉴질랜드 달러(약 2조 9400억원) 규모의 행복 예산을 투입했다. 아던 총리는 "국민총생산(GDP) 성장만으론 삶의 질을 높일 수 없고, 위대한 나라도 만들 수 없다"며 행복 예산안을 제시한 배경을 설명했다. 높은 청소년 자살률과 정신질환, 노숙자 등 뉴질랜드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신 건강 증진을 뉴질랜드 첫 행복 예산의 역점 분야로 내세웠다. 

부탄은 아예 국민총행복을 헌법에 명시함으로서 국가 및 정부의 존재를 규정했다. 따라서 국가의 개발전략은 구성원들의 행복 증진에 맞춰야'만' 한다. 이를 위해 지속가능하고 공평한 사회경제 발전, 환경보전, 문화의 보전과 창달, 선치(good govenmence)라는 4가지 큰 틀에서 국민총행복 9대 영역과 33개 지표를 만들었다. 이를 실행할 국민총행복위원회의도 설치했다. 

고 씨는 국민 90% 이상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부탄이 제주도에서도 실현 가능하다고 했다. 제주도의 성공 정의를 사람, 공동체, 자연자원을 지키는 것으로 확대하고, 주요정책에 행복영향평가제 같은 것을 도입하면 도민 복리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정책들은 자연스럽게 폐기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지속가능한 사회지표인 행복지표를 개발해 제주가 직면한 장기적인 과제들을 하나씩 해결해 나가자고 했다. 이를 위해 그가 제시한 4가지 기조는 정체성 인정, 생태적 공존, 삶의 질 향상, 민주적 참여였다. 이같은 틀거리에서 행복지표를 개발하고 2050년 전환 사회 실현을 목표로 하는 타임테이블을 함께 상상해보자고 했다.

자본을 배불리는 대규모 SOC(사회 간접 자본: 도로, 공항 등) 사업이 아닌 삶의 기본 전제가 되는 보육, 복지, 공원시설 등 생활 SOC를 늘리는 데 행복예산을 쓰는 상상. 토건예산감축제, 탄소영향평가제 같은 정책들을 도입해 국제자유도시에서 탄소없는 섬으로 제주도를 재배치하는 상상. 그는 이런 상상들을 실현시키기 위한 도구로 제주형 행복지표를 우선 개발해야 한다고 했다.

도내 이런 논의가 아주 없었던 것도 아니다. 강호진 제주대안연구공동체 공공정책센터장은 10년 단위로 부분별로 환경총량을 관리하는 '환경자원총량제' 논의가 10여년 전에 나왔지만 아직까지 법적 근거가 없는 행정 참고서로 활용되고 있다고 안타까워 했다.

온라인으로 참여한 한 시민은 오름도 휴식년을 갖듯 '제주도 4년 개발휴식년' 같은 것을 제도화해 돌아보고, 정비하고, 회복하는 시간을 의무적으로 가졌으면 좋겠다고 상상했다. 

이날 토론에 참석한 박성인 제주투데이 대표는 "어떤 지표를 생산해 낼 것인가는 현재의 권력 구조를 어떻게 재편하는가와 맞물리는 중요한 요소처럼 보인다"며 "따라서 (마지막으로 제안한) 민주적 참여 보다는 각각의 영역을 민주적으로 재구축할 수 있는 지표들을 모색해 보는 건 어떨가"라고 제언했다.

박 대표에 따르면 한국의 민주적 성과는 정치 영역에 한해 매우 지엽적인 형태로 이뤄졌다. 기업이나 학교, 마을 등의 지배구조는 아직도 민주적 의결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따라서 기존질서에 참여하는 방식보다 노동조합 조직률은 얼마나 되는지, 비정규직과 정규직 비율이 도정에 얼마만큼 영향을 끼치는지, 학교 권력은 직선제로 뽑는지, 간선제로 뽑는지, 학부모와 학생은 학 내 의사 결정 구조에 참여하고 있는지 등 소수에 집중된 권력을 아래로 끌어내릴 수 있는 지표들을 만들 수 있어야 지금과는 전혀 다른 정의로운 전환을 현실화 할 수 있다는 것이 박 대표의 설명이다.  

이에 고 씨는 "제주도는 지금까지 납작한 GRDP만 보고 달려왔는데, 제안한 내용을 포함한 입체적인 행복지표를 시민 단위에서 만들어내고 입법화까지 가능하면 도민 행복을 훼손하는 사업이나 정책들을 구체적인 언어로 막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이 자리가 2050 희년의 해를 꿈꾸는 첫 타임테이블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희년의 해라는 말에 강 대표가 "2050년이면 여기계신 '노땅'들은 한 줌 흙으로 돌아갈 나이"라며 "10년 만 당겨달라"고 부탁해 뜨거웠던 토론은 웃음으로 마무리됐다.

세 번째 수요 정책 라이브러리는 오는 14일 더불어민주당 소속 홍명환 제주도의회 의원이 '다른 제주를 위한 새로운 정책 이야기'로 채워 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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