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제주4·3특별법 전부개정에 따라 최근 정부가 내놓은 희생자 배보상안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가 열렸다.
5일 오후 제주.4·3평화교육센터에서 법안 설명 및 의견수렴을 위한 ‘4·3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 공청회가 개최됐다.
이날 첫 순서로 최환용 한국법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이 배보상 방안 등을 담은 제주4·3특별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을 설명했다.
이어 법안을 두고 각계 전문가들이 진전된 사항과 개선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 의견을 제시했다.
문성윤 4·3희생자유족회 고문변호사는 우선 개정안 보상금(제16조) 조항의 일부 내용이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문 변호사는 “9000만원이라는 보상금액은 최소한의 금액일 뿐인데도 불구하고 이 조항이 마치 국가가 희생자에 대해 충분한 보상을 해준 것처럼 오해될 소지가 있다”며 “일실이익의 경우 이자까지 고려하면 금액이 엄청날 수밖에 없고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 역시 매우 크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따졌다.
이어 보상금 액수에 대해서도 “최근 생존수형인들이 제기한 민사 재판에서 희생자 본인의 위자료를 1억원으로 결정한 것을 감안하면 그 액수가 아쉽다”고 말했다.
또 보상금 신청 결정서 송달과 관련해선 “국외에 거주하거나 주소가 불분명한 경우 ‘공시송달’ 방식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보상금 지급 절차가 희생자 또는 유족이 보상금 신청을 한 다음 위원회의 결정서를 송달받고 나서 다시 동의서를 첨부해 위원회에 보상금 지급을 청구하도록 돼 있는 부분이 ‘이중 절차’라며 개선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아울러 보상금 등에 관한 소송을 제기할 경우 관할 법원을 서울행정법원이 아닌 제주지방법원으로 하는 조항을 신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허상수 전 성공회대 교수·한국사회과학연구회 이사장은 어떤 희생자도 소외·차별·배제해선 안 된다며 이를 위해 제주4·3진상규명및명예회복위원회(이하 위원회)의 역할을 강조했다.
허 교수는 “위원회가 추가 진상조사뿐만 아니라 수형인 4092명에 대한 특별재심을 진행할 수 있도록 직권재심 청구의 권고를 하는데 더 이상 누락자가 있어선 안 된다”며 “위원회가 결정한 행방불명인 3631명에 대한 사망신고 여부 사실 확인과 실종신고조차 되어 있지 않은 이들에 대한 명예회복과 피해회복의 기회도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가족관계부등록부의 작성과 정정이 신속하고 정확하게 이뤄져야 하며 혼인외 출생자 조사 등을 통해 인지청구 특례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상희 법무법인 지향 변호사는 “사망 또는 행방불명된 피해자, 후유장애 희생자, 수형인 희생자의 피해에 대해서만 보상을 인정하고 방화 또는 소개로 인한 재산상의 피해는 보상 대상에 포함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9000만원이라는) 보상 액수가 충분히 완전한 배상으로서의 의미를 갖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있다”며 “산정 기준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공동체 회복이나 기념사업 등을 통해 피해자가 소외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며 피해자들이 넓은 의미의 피해 구제에 적극 참여하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4·3당시 호적 관계가 제대로 된 분들이 많지 않다”며 “가족관계 정정을 간소화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보상금 청구 시기를 3년으로 제한한 데 대해 “가족관계 정정의 어려움과 절차의 복잡성 등을 고려해 청구기간을 10년으로 규정하고 이를 시행령이 아닌 법률에서 규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마지막으로 “위원회가 무거운 분들로 구성됐다”며 “4·3의 경우 위원회 업무가 진상규명 보다는 피해자 배보상으로 축이 이동하고 있는 점을 감안해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위원회를 구성하는 것도 다시 한번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창범 제주4·3희생자유족회 상임부회장은 보상금의 개념을 정의한 부분에 대해 “‘손해전보’라는 표현을 하고 있는데 손해를 준 게 아니다. 피해를 줬다. 그리고 보상 정의에 왜 가해자인 국가가 안 들어가 있느냐. 국가가 돈을 주는데 그 이유를 밝혀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질타했다.
이어 보상금 산출 방식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당시 희생자 중 20대가 41%, 30대가 17%인데 어떤 기준을 고려해서 산출했는지 궁금하다”며 “또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가 근거한 법이 지난 2000년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유족들이 피해를 입은 사회적 차별이나 연좌제, 경제적 궁핍 등 이런 것도 고려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후유장애인 역시 사망 또는 행방불명 희생자와 똑같이 보상금을 똑같이 균등지급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강조했다.
지정토론이 끝나고 이뤄진 객석 토론에선 보상금 액수와 관련해 반발하는 의견들이 다수 쏟아져 나왔다.
한 유족은 “불타버린 중산간 마을이 70% 아니냐. 거기에 대한 보상은 왜 없느냐”며 “인적 피해에 대한 보상만 있고 물적 피해에 대한 보상은 없다”고 질타했다.
또다른 유족은 “이번에 보상금이 산정되는 과정을 보면서 사람 목숨값을 난도질한다고 느꼈다”며 “국가가 70년 전에 저지른 만행을 또 저지르고 있다. 이제 와서 그 피해자에 대한 보상도 깎고, 깎고… 이게 만행이 아니면 뭐냐”고 울분을 토했다.
양윤경 전 유족회장은 “처음에 제시됐던 1억3000만원이 관철돼야 이번 (보완입법) 법안이 의미가 있지 않느냐”며 “희생자의 피해에 보상함에 있어서 가해자인 국가의 입장이 아니라 피해자인 유족회의 입장이 가장 중요하지 않느냐”고 따졌다.
또 종교계 피해자 등 상속자가 없는 희생자에 대한 보상 방안도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에 최환용 한국법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1억3000만원이라는 금액은 ‘8484원칙(희생자 본인 8000만원, 배우자 4000만원, 자녀 800만원, 형제자매 400만원)’에서 나온 금액인데 이는 희생자 본인과 그 유족을 다 합한 금액”이라며 “희생자 한 명당 9000만원 금액 산정과는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오영훈 의원은 “이번 개정안은 제가 대표발의하긴 했지만 정부입법의 성격을 띠고 있다”며 “그러다 보니 제가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없다. 액수 같은 경우도 제가 제안할 수 없고 기획재정부와 예산당국이 결정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예산을 상향할 수는 있겠지만 그 과정이 쉬울 것 같지는 않다”며 “또 1억3000만원이라는 금액은 정부에서 보상금 기준을 제시해달라고 요구해서 개별 보상 판결 평균값으로 그 금액을 제시한 것이고 이로 인해 보상금 지급 논의의 물꼬가 트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9000만원은 희생자 본인에 대한 보상금이니 향후 유족(이 받을 수 있는 보상)에 대해선 길이 열려있다”며 “향후 유족회나 단체들과 함께 이를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논의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공청회는 오영훈 국회의원이 주최하고 제주4·3희생자유족회, 제주4·3평화재단, 제주4·3범국민위원회,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 제주지방변호사회 등이 공동 주관했다. 또 행정안전부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도의회, 제주도교육청 등이 후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