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제주의 다양한 이슈에 대해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대안적인 사회를 만들어 나가고 싶은 마음에 언젠가는 어떠한 방법으로라도 그런 기회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 그러한 기회가 찾아왔다. 아니, 기회를 만들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스스로 글을 통해 소통해보겠다고 제안했으니...(이럴 때 나는 참 행동파이다!!)
오랫동안 변방에서 살아온 제주도민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에게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지와 같은 자신의 언어를 만들어가는 기회를 갖지 못했다. 나도 모르게 외부의 시선이 내면화되었다. 때문에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더 많이 떠들고 나누고 우리의 삶의 언어를 만들어 가야 한다. 이 글도 그 일환이다. 그리고 글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마음 다짐이기도 하다.
얼마 전 <우리들의 블루스(이하 우블)>라는 한국 드라마를 정주행하며 보게 되었다. 평소 소설이나 드라마 보기에 흥미가 없기도 했지만, 실제 ‘우블’이 방영될 때는 드라마의 배경이 제주도이고 제주도민들의 삶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더욱 ‘땡기지’ 않았다. 참고로 나는 제주도 출신의 부모님 밑에서 자란 제주도 토박이이다.
물론,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그냥 즐기면 될 일인데, 무슨 생각이 그리 많냐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제주도민이라고 하면 숱하게 타자화된 경험을 겪으면서 생겨난 방어기제 같은 것이 발동했다.
최근 이 불편함에 대해 얘기할 기회가 있었다. 상대는 드라마 ‘우블’을 보면서 제주를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는 국제 이주민(지금은 제주도민이 된)이었다. 내 이야기를 들은 지인은 자신도 공감한다며 그 역시 이주민을 다루는 드라마나 영화는 잘 보지 않는다고 하였다. 나와 같은 맥락에서 자신에 대해 타자화하여 그려지는 것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다.
아무튼 늦게나마 드라마를 보게 되었고, 앞선 나의 우려가 괜한 선입견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는 제주사람들, 정확히는 해안마을에 사는 제주사람들의 다양한 삶을 재미있고 감동적으로 잘 그리고 있었다. 제작자들이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신경 쓴 노력도 돋보였다.
얼마나 사실을 잘 그리고 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전달하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더 나아가 제주도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은 제주도민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그리고 과연 제주도민은 누구인가? 칼럼 연재를 통해 던질 질문들이기도 하다.
지식 생산 과정에서 주변인의 시각이 더욱 우월하다는 인식론이 있다. 중심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만 알면 되지만, 주변인의 위치에 있는 사람은 중심과 주변을 모두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바로 페미니즘(여성주의) 인식론이다.
주변인으로서 여성과 지방의 위치는 유사한 지점이 있다. 여성들은 남성주류 문화도 알아야 하지만 여성의 삶도 알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지방 사람들은 중앙의 문화도 알아야 하지만 지방의 삶도 알아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여성이나 지방 사람들이 자신과 관련하여 우월한 지식 또는 관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제주도민의 삶에 관한 지식 생산 과정에서 경험뿐만 아니라 성찰적 태도가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성찰(省察)의 사전적 의미는 ‘자기의 마음을 반성하고 살피는 것’이다. 즉, 자신의 말과 행동, 삶을 들여다보고 돌이켜보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자신이 바로 서야 한다. 자신을 알아야 성찰할 주체도 생긴다. 때문에 제주도민이 자신과 제주 공동체에 대해 아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물론 외부 또는 중앙에서 주어진 지식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지식이 필요하다. 내부의 시선이 아닌 외부의 시선을 내면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할 필요가 있겠다.
2023년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로 가고 있을까? 시간을 뒤로 돌려 14년 전으로 가 보자. 2009년, 제주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었을까? 당시 제주에서는 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싸고 주민소환운동이 한창이었다. 주민소환운동의 결과는 비록 도민 11%만이 찬성하여 미완으로 끝났지만, 한편으로는 시민운동의 방향과 발전 담론에 대한 성찰의 기회가 되기도 하였다고 생각한다. 10여 년이 흐른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성찰은 괴롭고 어렵다. 더군다나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에서의 성찰은 가성비가 떨어진다. 전지구적 자본주의 시대인 지금 성찰의 가치는 평가절하되었다. 특히, 제주의 강한 공동체성은 ‘내로남불’이 용인되도록 작용하기도 한다. 개인적 성찰을 넘어 집단적 성찰이 필요한 이유다.
무엇보다 제주도민이 주체로 서기 위해 자신을 들여다보기를 주저하지 말아야 하겠다. 10여 년 전 이명박 정권에서 ‘내안의 이명박’이라는 자조 섞인 그리고 성찰을 요하는 말이 한동안 회자된 적이 있다.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내면화된 개발주의에 대해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우리에게도 ‘내안의 〇〇〇’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여성이라고 하여 모두 페미니스트가 아니듯, 제주도민이라고 하여 모두 제주를 사랑하는 것은 아닐 수 있다. 그렇다면 그렇게 제주의 이것저것을 팔아넘기지는 않을 테니까.
나를 거울삼아 반추해 보는 삶, 나의 욕망을 들여다보고 욕망의 근원과 기착지를 조용히 살펴보는 삶. 다양성이 공존하는 지속가능한 삶과 제주 사회를 위해 우리에겐 성찰적인 공동체가 절실히 필요하다.
강경숙.
대학 졸업 후 찾아간 여성단체 활동이 삶의 방향이 되었다. 여성운동을 더 잘하고 싶어서 여성학을 공부했고 이후 제주에서 여성주의 교육과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지역문제에는 젠더(여성)가 없고 젠더(여성)문제에는 지역이 없는 현실’에 대해 주목하고, 주변화된 위치에서 제주 사회의 성찰을 시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