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제주도의 주요 사안 중 하나는 ‘행정체제 개편’이다. 행정체제 개편 관련 연구 용역에 따르면, 특별자치도 이전과 같은 기초자치단체의 부활로 가닥을 잡아가는 듯하다.
현 제주도지사의 공약과 인터뷰를 보면, 제주도 행정체제 개편을 통한 기초자치단체의 도입은 풀뿌리 민주주의를 살리고 정치인의 역량을 강화할 것이라고 보는 도지사의 인식을 엿볼 수 있다. 한 예로, 도지사는 한 청년 도의원의 비리를 두고 그 원인이 정치인 성장 시스템의 부재에 있으며 곧 기초자치단체의 부재 때문이라고 얼마 전 언론을 통해 밝힌 바 있다.
여기서 정치인의 성장 시스템은 기초의회를 의미한다. 기초자치단체가 부활하면 기초의회도 생기니 이를 통해 정치 신예들의 입문이 좀 더 쉬워진다는 것이다. 이쯤되면 무엇을 말해도 ‘기-승-전-기초자치단체’다.
만약 기초의회가 정치 신예들의 정치 진출 관문이 된다면 이는 그동안 정책 결정에서 소외되었던 여성들에게도 적용될까? 이 글에서는 우리 사회의 전반적 의사결정 구조의 남성 중심성에 대한 문제 제기 없이 여성의 정치 대표성 강화는 요원한 일이며, 기초자치단체 도입 또한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제주특별자치도 출범 전후, 여성의 정치 참여는 어떠했나?
2022년 전국 지방선거의 여성 당선자 현황을 살펴보면, 여성 광역의원은 14.8%(비례 포함 19.8%)이고 여성 기초의원은 25%(비례 포함 33.4%)로 여성의 광역의회 진출이 기초의회 진출보다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이는 기초의원-광역의원-국회의원-도지사 등 최고 의사결정 구조로 갈수록 여성 비율이 낮아지는 현상과 일맥상통한다. 기초자치단체 도입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기초의회가 있었다면 더 많은 여성들이 이를 발판삼아 광역의회와 국회의원 등으로의 진출을 앞당겼을 것이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제주지역은 2014년에서야 지역구 여성 도의원을 배출하기 시작한 지역으로, 기초의회가 있을 당시에도 여성 기초의원은 전무했다.
문제는 여성 리더 비율이 사회 전 영역에서 낮은 사회구조이다.
제주 지역은 최고 의사결정 구조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여성들의 의사 결정 참여가 지나치게 낮다는 특징이 있다. 지방의회의 기반이 되는 마을과 지역단위 의사결정 구조에서도 여성들의 참여는 쉽지 않다. 2021년 기준, 제주의 여성 이장은 2.9%(172명 중 5명), 여성 어촌계장은 21.5%(102명 중 22명)이다. 어촌계 구성원은 여성들이 대다수임에도 대표는 남성이 맡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처럼 제주 여성들의 의사결정 과정에 여성들이 적게 대표되는 현상은 여성들이 진출할 자리가 없거나 여성 개인의 역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제주 여성의 정치 참여를 저해하는 요소와 촉진 방안 등에 대한 다각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누구의 부인’이 아닌 ‘정치인’으로서 여성 정치인에 대한 인식과 성평등 문화 확산이 필요하다
제주 지역의 여성 정치인들은 선거에 참여하면서부터 ‘누구의 부인’으로 인식되며, 가족의 성 역할 기대로 인해 가족의 반대에 부닥치기도 한다. 마을에서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대표임에도 마을 포제와 같은 공식 의례에서 배제되는 등 리더에 대한 ‘예우’를 해주지 않는 지역사회 분위기를 경험하게 된다.
이처럼 지역사회와 정당조직 내에서 여성 정치인에 대한 사회적 인정과 지지가 결여된 분위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성평등한 환경 조성을 위한 인식 개선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청년회’와 ‘부녀회’ 등 지역 의사결정구조의 성평등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
아울러 청년회, 부녀회, 마을리, 공공기관, 협동조합, 시민사회 등 지역사회의 중요한 의사결정구조의 성평등 환경 조성 및 여성 대표성을 위한 구조 개선이 필요하다. 제주 지역 정치 신예들의 관문은 지방의회가 아니다. 특히, 제주에서 청년회는 정치계에 입문하는 주요 경로 중 하나로, 청년회 출신이 제주도당 내 청년위원장으로, 그리고 정치인 출마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실제 여성들은 ‘부녀회’, 남성들은 ‘청년회’가 불문율인 것처럼 여겨지며, 여성들은 정치계로 이어지는 지역 인적 연결망에서 소외되고 배제되고 있다. 따라서 청년 여성들의 의사결정조직 참여 증진을 위해 청년회의 여성 참여 강화와 부녀회의 여성 리더 양성 역할 강화가 필요하다.
지역구 30% 여성공천의무제는 관철되어야 한다
제주 여성의 정치 대표성에 가장 영향을 미친 것은 여성 공천의무제와 비례대표제와 같은 적극적 조치였다. 이러한 적극적 조치 없이는 여성 정치인의 확대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지역구 30% 여성공천의무제를 의무 규정으로 실행할 필요가 있다. 이를 법제화하고 정당별 공약사항 등으로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
여성 정치 플랫폼과 정치교육 시스템 마련이 필요하다
여성 정치인의 발굴 및 양성 등 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과 훈련을 위한 시스템 마련이 필요하다. 정당과 공공기관, 시민단체 등이 참여하여 여성 정치 및 성평등 정치에 대한 토론하고 활성화할 수 있는 플랫폼을 구성하고, 여성의 정치 역량 강화를 위한 체계적인 교육 훈련 기회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제주특별자치도의 권리는 다양한 도민들과 나누어야 한다
특별자치도 체제 하에서 ‘제왕적 도지사’의 막강한 권한이 문제라면, 도지사는 이를 기초자치단체와 나눌 것이 아니라 제주 도민과 어떻게 나눌 것인지를 더 고민해야 할 것이다. 여성, 청년, 장애인, 노동자, 농어민 등 그동안 소외되었던 주체들의 다양한 참여와 절차를 강화는 것이 풀뿌리 민주주의를 앞당기는 길이기 때문이다.
* 참고자료 : 이해응·정은숙·강경숙(2021), 「제주지역 여성의 정치대표성 확대 방안」, 제주여성가족연구원.
강경숙.
대학 졸업 후 찾아간 여성단체 활동이 삶의 방향이 되었다. 여성운동을 더 잘하고 싶어서 여성학을 공부했고 이후 제주에서 여성주의 교육과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지역문제에는 젠더(여성)가 없고 젠더(여성)문제에는 지역이 없는 현실’에 대해 주목하고, 주변화된 위치에서 제주 사회의 성찰을 시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