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 받지 못한 상처는 과거가 아닌 현재가 된다. 4·3 생존자들은 4·3과 유사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4·3의 트라우마가 되살아나고, 이것이 다시 자아를 상처 입히는 방식으로 재현, 반복된다.
한 4·3 생존자는 지금도 차 소리와 호루라기 소리가 나면, 4·3 당시 군인들이 호루라기를 불며 사람들을 운동장에 집합시키고 차에 올라타서 호송되었던 기억(학살로 이어지는)이 떠올라 갑자기 구토증세가 나타나고 몸이 바들바들 떨린다고 호소하였다.
이러한 트라우마의 기억은 집단적 기억에도 영향을 미친다. 몇 해 전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과정에서 자행되었던 강압적인 국가 폭력은 마을 주민들에게 4·3의 기억을 떠올리게 함으로써 4·3과 동일한 사건으로 경험되었다.
이는 치유 받지 못한 채 장기간 지속된 트라우마의 상처를 달래기 위해서 증언을 통한 진상규명의 방식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여전히 말하기를 거부당하는 제주 여성
‘이제는 말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여전히 여러 가지 이유로 ‘침묵’하는 4·3 희생자와 유족들이 있다. 특히, 4·3의 진상규명을 위한 자료로 생존자의 증언이 지배적인 상황에서 여성들은 더 말하기 쉽지 않다.
남성의 경우 정치적, 사회적 사실 위주로 기억하고 말하는 경향이 있기에 남성의 증언은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여성의 증언은 개인적이고 부분적인 것으로 인식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성차별적이고 가부장적인 체제하에서 여성들의 성적 피해에 관한 침묵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러한 상황에서 4·3 피해 여성들의 성적 피해를 증언하는 것은 주변 사람이거나 남성들이었다.
여성들은 공개 석상에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할 기회를 차단당하고, 설사 그러한 기회가 주어질 때조차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기보다는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말을 하기 쉽다. 이처럼 제주 여성들은 자의적으로 4·3의 경험과 기억에 대하여 말하기를 거부당함으로써 평생 한으로 남거나 화병과 같은 고통에 시달려왔다.
이처럼 그동안 4·3 피해자의 이야기는 명예 회복과 피해보상의 틀 속에서 재구성되고 기록되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여성들은 피해자의 이미지를 강화해야 했던 반면, 가족과 마을 재건과정에서의 활동과 기여는 주목받지 못했다. 따라서 현재의 4·3 진상규명 및 명예 회복 담론에서 역사화되지 못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드러낼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4·3에 대해 묻고 경청을 시작해 보자
말하기와 듣기는 서로 떼어 놓고 얘기될 수 없다. 듣는 이가 없으면 말하기도 소용이 없다. 침묵은 이런 맥락에서 이루어진다. 지금도 평생 4·3에 대해 한마디도 꺼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희생자와 유족들이 많다.
과거에 비해 풍요롭고 평화로운 ‘좋은’ 세상이 왔다고 하는데, 아직도 상처를 꺼내 보이지도 못한다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러한 문제에 공감한다면 4·3 생존자와 유족들이 용기 내어 말할 수 있도록 우리가 좋은 청자가 되어보자. 4·3 75주년을 맞이하는 올해, 4·3 추념일을 즈음하여 집안 및 주변의 어른들에게 4·3에 대해 묻고 공감 어린 경청을 시작해 보자.
공식 기록이나 지배 담론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았던 4·3의 기억과 이에 대한 공유는 4·3이 희생자와 유족들에게 그리고 지금 제주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다각적으로 보여줄 뿐만 아니라 4·3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는 지금 제주 사회에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공동체의 윤리이자 과제 중 하나이다.
증언에서 치유로…‘말하기’의 진전
지난 3월 8일 제주에서는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4·3 여성 유족 100여 명과 함께 4·3에 대한 경험을 나누고 앞으로의 과제를 모색하는 뜻 깊은 자리가 있었다. 필자는 영광스럽게도 지난 한 해 동안 추진한 제주여성사 및 4·3 연구의 발표자로 참여할 수 있었다.
4·3에 대한 연구를 추진하면서도 여성들이 주체가 되는 방식에 대해 항상 고민하였던 터라, 행사의 방식도 여느 토론회처럼 전문가가 이야기하는 방식이 아닌 여성 유족들의 이야기로 채울 수 있도록 하였다.
당시 100여 명의 여성 유족들의 이야기가 봇물 터질 듯이 흘러나오고 시간이 모자라 아쉬움으로 가득했던 현장의 열기가 지금도 느껴지는 듯하다. 증언을 위한 말하기를 넘어 치유를 위한 말하기가 시작된 것이다.
강경숙.
대학 졸업 후 찾아간 여성단체 활동이 삶의 방향이 되었다. 여성운동을 더 잘하고 싶어서 여성학을 공부했고 이후 제주에서 여성주의 교육과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지역문제에는 젠더(여성)가 없고 젠더(여성)문제에는 지역이 없는 현실’에 대해 주목하고, 주변화된 위치에서 제주 사회의 성찰을 시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