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 민원 해결 및 행정업무 경감을 위한 교육행정 재구조화 방안
지난 5월 22일, 제주 모 중학교에 재직 중이던 교사가 유명을 달리한 안타까운 사건이 일어났다. 늦었지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분들께도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학생생활지도 과정 중 학부모로부터 악성 민원에 시달렸다는 풍문이 들린다. 철저한 진상규명이 필요하고, 사실이라면 순직 인정 등 그에 걸맞는 예우가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이에 못지않게 재발 방지대책을 강구하는 것도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다.
모든 관공서에는 민원실이 있다. 관공서의 민원실은 말 그대로 국민이 청하여 바라는 민원 사무를 접수하고 처리하는 부서이다. 성격은 다르지만 학교도 일종의 관공서이다. 특히, 교육청과 교원지원청은 더욱 그렇다. 교육과정, 교수학습, 생활지도, 학생인권 및 교권보호 등 교육 관련 사무들은 교육 당국과 학교 구성원들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 내가 말하려는 민원 사무에 해당하지 않는다. 학부모회가 공식적으로 학내 회의나 여러 활동에 참여하여 관심 사안을 제안하고 건의하는 것도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 교육 당국이나 학교에서 민원이란 학부모들이 개별적이고 사적으로 제기하는 사무라고 봐야 한다. 이러한 민원을 해결하는 부서가 있어야 할 듯한데, 교육청에도 교육지원청에도 학교에도 공식적인 민원실은 없다.
학부모 민원실은 대한민국 어느 교육청, 어느 학교에도 있어 본 적이 없는 부서이다. 학교와 스승은 성역이고 성직이라 감히 학부모가 개별적으로 사적인 민원을 학교와 교사에게 제기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로 여겨져 온 문화가 배경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는 사라진 지 오래고, 학부모의 민원에 적잖이 학교와 교사들이 시달리고 있지만, 지금까지 근본적인 대책을 방기해왔다. 교육 당국은 학부모 민원 업무를 일선 학교에서 알아서 처리할 것을 요구해왔다. 학교에서는 교사 개개인이 처리해야 할 사안으로 맡겨져 온 측면이 강하다. 특히, 교사나 학교가 감당하기 어려운 악성 민원화되는 경우가 문제이다. 2023년 서울 서이초 교사 사건 이후 학교에 민원대응팀이 만들어졌다고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보듯 근본적인 대책이 되지 못함이 드러났다.
학교에서 교사들은 바쁘다. 교수학습과 생활지도 등 교육과정 운영에도 모자랄 시간을 행정업무로 세월을 보낸다. 여기에 학부모 민원 사항이라도 생겨 혹시 일이 틀어지기라도 하면 정신적 고통까지 감내해야 한다. 행정업무를 경감해 달라는 교사들의 목소리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교육 당국의 대책은 시늉만 하다가 도돌이표가 되곤 한다. 학부모 민원은 학생 지도 사무와 겹치는 경우가 많아 교사들도 스스로 감내하고 해결하려 했다. 학교나 교육 당국에 얘기해도 부질없음을 알고, 또한 그것이 교사로서의 숙명이라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행정과 민원 업무에 치일 경우, 교사는 자신의 고유업무를 다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교사로서의 자존까지 떨어뜨리게 만든다. 이제 근본 대책의 마련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 나는 교육청의 슬림화와 교육지원청의 현장 지원체제 강화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고 여긴다.
행정업무 경감과 관련해서, 7월부터 시행할 전라남도교육청의 방안을 본받을 필요가 있다. 전남교육청은 교육활동에 전념하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 교육청 구조를 슬림화하는 대신 교육지원청의 역할을 강화하여 현장 중심체계로 전환하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행정력 소모가 많았던 학교 현장 체험학습 지원, 학교 정보화 업무지원, 학교 CCTV 설치·운영관리, 어린이 놀이시설 안전 점검, 특별교실 정비, 교과서 배부 등의 업무를 교육지원청이 맡기로 했다. 기존의 ‘학교지원센터’를 ‘학교종합지원센터’로 확대 개편하고 인력배치도 현장 중심으로 재배치한다는 것이 골자이다. 이러한 전남교육청의 대책은 교사들의 요구를 적극 반영한 것으로, 전남교사노조도 “학교 구성원 간 갈등을 유발하고 과도한 행정력을 낭비하는 업무들이 교육지원청으로 이관된 점을 높이 평가한다.”며 환영했다. 제주교사들의 요구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제주교육청도 교사들의 요구를 조사하여 하루빨리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전남교육청은 기존의 3국 2담당관 16과 66팀에서 2개과와 2개팀이 축소된 3국 14과 64팀으로 본청을 슬림화하고, 남은 인력은 모두 교육지원청으로 재배치하여 현장 중심 지원업무를 맡도록 한다고 전한다. 현재 제주교육청은 기존의 전남교육청보다도 큰 1실 3국 2담당관 16과를 두고 있다. 여기에 다른 시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정무부교육감실까지 두고 있다. 그러니 인력의 배치도 교육청에 몰려있을 수밖에 없다. 교육전문직과 일반직만을 두고 배치 현황을 보면, 전체 1,627명의 직원 중 508명은 제주시교육지원청에, 305명은 서귀포시교육지원청에서 근무한다. 인력의 반에 해당하는 814명이 교육청에 포진해 있는 셈이다. 교육행정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 이로서도 알 수 있다. 제주시의 경우는 학교도 많고 학생 수도 많은데 상대적으로 인력 배치도가 낮다.
나는 일찍이 다른 이유로 제주교육청을 슬림화하고 교육지원청의 규모와 역할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오영훈 제주도정은 행정체제 개편을 예고했다. 다행히 그것도 제주시를 분할하여 3개의 자치체로 가자는 것이다. 나는 세부적인 사안에 반대하는 측면이 있지만 3개의 자치체를 두자는 안에 찬성하는 편이다. 찬성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교육과 행정이 함께 가는 자치구조를 만들면 좋겠다는 것이다. 특히, 나는 3권역으로 나누는 고교평준화체제를 만들자고 주장해온 바 있다. 3개 행정자치체에 걸맞게 교육지원청도 3개로 둘 수 있다. 3권역의 고교평준화체제를 통하여 제주교육의 가장 큰 걸림돌인 고입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리고 교육지원청의 수와 규모와 역할을 키워 현장 중심의 지원체제를 구축함으로써 행정업무 경감과 학부모 민원에 전문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전남교사노조는 전남교육청의 대책에서 아쉬운 점으로 학부모회 업무, 원어민 보조교사 관리, 교권보호위원회 운영 지원 등이 빠진 점을 지적하고 있다. 나는 이에 더하여 악성 민원을 처리하는 민원실이 추가되기를 바란다. 학부모 민원 문제 중에는 교권보호 관련 사안이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두 업무를 한데 묶어 독립된 부서를 만들 수 있다. 일상의 가벼운 민원 및 교권보호 업무는 학교 내에서 관련 소위원회를 두어 해결하고, 학교 소위원회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민원 및 교권보호 업무는 교육지원청의 민원실로 이관하여 전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도 교육청의 슬림화와 교육지원청의 현장 지원체제 강화 방안 마련은 필수적이다. 다시 한번 교사로서 사명을 다하다가 유명을 달리하신 선생님의 영면을 기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