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하고 정리한 생물정보가 모여 대규모 개발사업을 막아내고, 생태계를 보전하고 나아가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밑바탕이 된다. 오늘도 어딘가에서 환경과 생태계를 지키기위해 헌신하는 활동가와 연구자, 전문가들 그리고 시민과학을 실현하기 위해 함께하는 시민들이 있다.
올해 여름은 불볕더위라는 말은 너무나 어울리는 여름이 아닌가 싶다. 연일 푹푹찌는 찜통 더위지만 생물관찰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여름이란 계절은 참으로 반가운 계절이다. 많은 생명들을 직접 관찰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생명이 가장 왕성한 시기니 만큼 관찰할 수 있는 대상종도 무궁무진하다. 바다부터 육상까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생물종들의 향연이 이 여름에 열린다.
마찬가지로 생태계 보전과 생물종다양성을 위해 활동하는 환경운동 활동가에게 여름은 조사 과정의 고통을 상쇄할 만큼 많은 생물들을 관찰할 수 있는 기회의 시간이다. 게다가 제주도는 생물종다양성의 보고와 같은 곳이니 여름철 생물조사는 매우 중요한 활동일 수밖에 없다.
자연 생물과 의도하지 않은 거리두기(?)를 하면 활동해온 필자에게 이번 여름은 생물을 찾는다는 즐거움을 깨닫게 만드는 시간이다. 사실 생물하고의 거리두기는 나의의 주력 활동분야가 생활환경과 자원순환, 에너지전환, 기후위기(이 또한 생활환경에 가까운)다 보니 사실 생물과 친해질 시간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물론 개발사업과 관련한 현안을 다루자면 멸종위기종이나 희귀종을 찾는 일이 매우 중요하기에 때론 조사과정에 참여하기는 했지만 그럴 기회가 많지도 않았을뿐더러 생태보전을 주력으로 담당하는 활동가가 있어 이 분야에 대해서는 스스로도 잘 몰라도 된다는 안일한 판단을 하며 활동해 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올해는 해양보호구역을 위한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생물들을 만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게다가 오등봉공원 지키기 공익소송도 본격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터라 제주시와 호반건설 컨소시엄의 부족한 환경영향평가 조사를 확인하고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서는 생물들이 살아가는 현장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환경운동 활동을 하면서 정작 생물에 대해서 큰 관심을 가져보지 못했던 나로서 생물을 찾고 조사하는 것은 다소의 부담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조사를 거듭할수록 생물을 만난다는 것은 상당히 짜릿하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처음 보는 생물에 대해 느껴지는 감정도 다양했다. 귀엽기도, 예쁘기도, 멋지기도 그리고 무섭기도 했다.
멸종위기종을 만났을 때는 표현하기 어려운 경이로움도 경험할 수 있었다. 특히 미세한 차이로 생물을 구분하는 것을 알게 되고 확인하게 되었을 때는 정말 묘한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청소년 시기에 강하게 느꼈던 호기심이 다시금 자극되는 경험이었다.
나는 그 흔한 무당개구리를 일생에 처음 실물로 보고 신기해 했고, 멸종위기종인 갯게를 눈앞에 두고도 무덤덤하게 "큰게가 있네"라고 말했다. 그 게가 멸종위기종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의 놀라움은 생물에 대한 나의 무지와 무관심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생물을 관찰하고 찾아내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단 신호이기 할 것이다.
도대체 왜 이렇게 생물조사에 애를 쓰는 것이냐고 물을 수도 있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중요한 생물의 서식 여부는 불필요한 개발사업을 막아내고, 나아가 그 생물이 포함된 생태계 전체를 보호하는 중요한 기회가 된다. 더욱이 생물종다양성이 중요한 시대에 다양한 생물이 살아가는 공간의 중요성은 구태여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할 것이다.
특히 기후위기 시대에 건강한 생태계는 탄소흡수에 큰 도움이 된다. 당연하게도 이 극한 무더위도 기후위기 탓일텐데 이런 기후위기가 더욱 극심해지는 것을 막으려면 꼭 필요한 것이 바로 생물종다양성인 것이다.
이를 위해서 환경운동을 하는 활동가들이 또한 생물종다양성 보전을 위해 애쓰는 연구자와 전문가들이 그리고 시민과학에 참여한 시민들이 각종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생물조사에 매진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생물을 만난다는 즐거움이 있기에 이런 어려움을 초월하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이렇듯 생물조사의 중요성이 매우 크지만 정작 이에 대한 대중적 관심은 적은 것이 사실이다. 몇몇 멸종위기종에만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데다 생물을 전공하거나 오랫동안 경험을 쌓은 활동가, 연구자, 전문가들이 적은 것도 현실이다. 생물종다양성이 중요한 이 시대에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그만큼 생물 조사 연구에 대한 정책적인 관심이 절실하다. 특히 제주도는 생물종다양성이 국내에서 가장 뛰어난 곳으로 손꼽힌다. 그래서 제주의 생물들을 제대로 관찰하고 연구하는 연구기관을 정부와 도정이 합심해서 만들 필요가 있다는 요구가 많았지만 아직까지도 반영되지 않고 있다. 새롭게 출범한 오영훈 도정은 환경친화적 정책을 강조하고 탄소중립을 중요한 의제로 거론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참에 앞선 요구가 실현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어쨌거나 이렇게 조사하고 정리한 생물정보가 모여 대규모 개발사업을 막아내고, 생태계를 보전하고 나아가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밑바탕이 된다. 오늘도 어딘가에서 환경과 생태계를 지키기위해 헌신하는 활동가와 연구자, 전문가들 그리고 시민과학을 실현하기 위해 함께하는 시민들이 있다.
누가 알아주지도 않아도 그들은 오늘도 그 고된 활동속에서 또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고 있을 것이다. 인간이 인간을 위해서만 움직이는 이기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이들의 활동에 감사와 존경을 보낸다.
- 김포공항 이전 논란은 신공항이 왜 불필요한지 보여줬다
- 헛소리로 점철된 양수발전 토론회
- 나무 잘린 식목일 그리고 제주시의 도시숲
- [녹색발광]구만섭 부지사, '제주도 강소권 발전전략' 회수해야
- [녹색발광]도민 삶 외면한 대선후보들의 비호감 공(空)약
- [녹색발광]'카본 프리' 외치는 제주도가 빼먹은 것
- [녹색발광]오로지 국토부만을 위한 제2공항사업 이제 폐기해야
- [녹색발광]제주도는 정말 탄소없는 섬을 바라는 것일까?
- [녹색발광]제주도에 탈석탄 금고가 필요한 이유
- [녹색발광]제주도의회는 갈등의 중재자인가? 갈등유발자인가?
- [녹색발광]스타벅스 일회용컵 없애기 도전 성공 위해선 제도개선 뒤따라야
- 달랑게를 보호해'달랑게'
- 제주의 재생에너지 사업, 정의로울 수는 없나
- 만장굴 미디어아트..문제없다는 거짓말
- 여전한 제주도의 불법적 정보 비공개 관행
- 도민의 거리를 되찾자
- 에너지 다소비 건물, 이대로는 안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