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감수성이 높다는 착각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에서 2022년 2월 “2021 제1차 제주학생인권실태조사‘를 발표하였다. 학교 구성원(학생, 교직원, 보호자)의 인권 의식, 인권 실태, 학생 인권보장제도, 학생 인권교육, 학생 인권 침해 시 대응에 대한 설문 결과를 분석해서 200쪽이 넘는 분량으로 정리했다.

결과를 보면 학생, 교직원, 보호자 모두 자신들이 인권 감수성이 높은 편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교직원은 97.7%가 자신의 인권 감수성이 높다고 인식했다. 이어 학생 78.2%, 보호자 77.4%로 나타났다.(전체 80.4%)

그러나 실질적인 현장 상황에 들어가면 어른들은 스스로 인권감수성이 높다고 해도 학생의 자기결정권(휴대폰 소지 및 사용, 소지품 검사, 체벌, 두발 및 화장 등)에 대해 통제하고자 한다.

설문 결과를 들여다보면 '학교 내 학생의 두발과 복장 규제에 대해 규제해서는 안된다'는 응답은 학생 42.9%, 교직원 21.4%, 보호자 16.3%로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학생 소지품 검사에 대해서도 소지품을 검사하지 말아야 한다는 응답은 학생 32.8%, 교직원 12.1%, 보호자 6.4%로 나타난다.

교사로서 나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특히 신규 교사 시절에는 학생들과 나이 차이도 적고 그만큼 학생들을 잘 이해한다고 생각했다. 이야기도 잘 들어주고 소통하는 교사라고 여겨서 그때 당시 나는 나의 인권 감수성에 최고점을 줬을지도 모르겠다.

교사의 권위는 편리하다, 너무나 편리하다

그러나 실재 학교에서의 모습은 첫 만남부터 학생들에게 당연한 듯 반말을 사용했고 며칠이 지나자 큰 소리를 치고 윽박지르는 모습도 교사로서 당연히 할 수 있는 것이라 여기고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 학생들이 30명이 넘는 학급에서 이런저런 일들이 매일 터졌다. 우리 반을 잘 통제하는 것이 교사의 역할이라 믿었기에 말 안듣는 학생에게 벌을 주고 반성문을 쓰게 하고 교실 밖에 세우는 일이 늘어갔다.

처음에는 학생들의 결정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줬다. 하지만 그 결정이 내가 생각한 것과 다를수록, 그 차이가 클수록 받아들이지 못하고 교사의 권위를 내세워 학생들의 결정을 바꿔버리기도 했다. '학생들을 존중해야지' 하고 머리로는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조용하고 선생님 말 잘 듣는 학생을 만들기 위해 늘 통제하려고 했다.

그리고 교사인 나 역시 늘 누군가에게 통제받았다. 신규 교사이기에 모르는 것이 많았고 수업도, 학급 운영도 매끄럽지 못했다. 주변 동료 교사에게 도움받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했다. 경력이 많은 교사나 교장, 교감, 부장 등 직함을 갖고 있는 교사들에게 많은 명령을 받았고 열심히 따랐다. '이건 이렇게 해라', '이건 언제까지 꼭 끝내야 한다', '수업 과정안은 이렇게 짜는 것이다', '고쳐라', '고쳐라'... 그런 문화 속에서 나는 학생들과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싶어도 다른 교사의 눈치를 보거나 허락을 받아야 했다. 교장이 권위로 나의 의견을 묵살해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학교라는 공간에서는 늘 누군가가 누군가를 통제하려고 한다.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통제하려는 문화가 존재하는 곳이 바로 학교일지도 모르겠다. 학교장은 교사를, 교사는 학생을, 학생들끼리에도 반장이 다른 학생을 끊이없이 통제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학교를 좀더 인권 친화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이런 통제문화를 존중의 문화로 바꿔가야 한다. 가장 먼저 구성원이 서로를 존중하는 말로 시작해보면 어떨까?

존댓말은 학교 내 존중의 문화를 이끄는 시작점이다

나 역시 인권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교실에서 가장 먼저 바꾼 것이 말이었다. 특히 학생들과 처음 만나는 날부터 반말을 했던 것을 존댓말로 바꾸었다. 몇몇 학생들은 선생님 말투가 이상하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지만 싫어하는 학생은 단 한명도 없었다. 자신이 존중받는 느낌이어서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동료 교사에게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경력이 20년 가까이 되다보니 나보다 나이가 적은 교사가 적지 않다. 그들과 1년을 같은 학년 교사로 지내면서 늘 존댓말을 사용했다. 젊은 교사들 역시 그들의 경력과 상관없이 동등한 교사일 뿐이라는 생각이 존댓말을 사용할 때마다 떠올랐다.

명령조의 말을 질문으로 바꾸기도 했다. '~해', '~하세요' 대신 '~해볼까요?' '~을 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등등. 더 나아가 이런 습관으로 인해 학생들에게 '무엇을 해볼까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등 직접 의견을 물어보는 물어보는 일이 늘어났다.

사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직접 명령하지 않아도 교사의 권한은 이미 학생들의 권한보다 크다. 마찬가지로 교장의 권한은 일반 교사의 권한보다 크다. 권력이 있는 사람이 명령문을 질문으로 바꿀 때 학교 문화는 서로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으로 바뀌게 된다.

통제하는 학교에서, 존중하는 학교로

위계를 만드는 호칭을 바꿔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예전에 어느 학교에서는 전체 교직원의 호칭을 선생님으로 통일한 경우가 있었다. 교장, 교감, 부장, 행정실장 등 역할을 넘어 위계를 만들어 왔던 호칭을 서로가 동등한 호칭으로 사용하는 것. 위계는 통제를 더 강하게 한다. 이러한 위계를 없애는 것 역시 학교의 통제 문화를 존중의 문화로 만드는 과정이 될 수 있다.

인권 친화적인 문화는 자신의 인권을 존중받는 곳에서 출발한다. 학생들이 학교에 있는 어른들에게 충분히 존중받은 경험은 다른 사람의 인권을 존중하게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다른 교사로부터 존중받는 것은 교사가 학생을 교육하는 데도 큰 힘이 된다.

학교 구성원이 인권 문화를 만들어가기 위한 작은 실천부터 시작했으면 한다. 늘 내가 사용하고 말이 혹여나 다른 사람의 인권을 무시하고 통제하고 있지는 않은지 고민해보는 것, 그리고 그렇게 사용했던 말을 존중하는 말로 바꾸어 가는 것. 이런 시작으로 서로를 통제하는 곳에서 서로를 존중하는 곳으로 학교가 바뀔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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