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민호 군의 영결식(사진=제주도교육청 제공)
고 이민호 군의 영결식(사진=제주도교육청 제공)

2017년 11월 9일, 한 학생이 생수 공장에서 일을 하다 목숨을 잃었다. 서귀포산업과학고등학교 학생이었던 고 이민호 군. 산업재해였다. 이민호 군의 사망사고로 인해 고등학생 현장학습이 갖고 있는 다양한 문제가 불거졌다.

기업의 안전 불감증 및 산업재해를 유발한 업체에 대한 법적 조치 미흡 문제는 물론, 현장학습이라는 명분으로 청소년의 노동을 착취하고 있다는 노동권, 학생, 청소년 인권 문제도 부각됐다. 17세 학생이 세상을 떠난 뒤에야 이 같은 문제들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이민호 군의 죽음 이후, 제주 학생들이 처한 인권 문제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뤄지기 시작한 것이다. 제주 교육계는 이 사건이 주는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

2021년 1월 8일은 제주 지역 학생인권에 있어서 기념비적인 날이다. 이날 제주학생인권조례가 공포됐다. 학생들로 구성된 학생인권조례 TF팀이 직접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나서며 만들어낸 조례다. 전국 6번째다. 하지만 학생들의 인권 보장을 위한 내용들을 담은 조례인데도 상임위인 교육위원회에서 상정 보류, 심사 보류 등 진통을 앓았다. 교육위에서 주요 내용을 손질한 수정안이 통과됐다. 그마저도 반대에 표를 던진 도의원이 12명에 달했다. 이 과정에서 강충룡 도의원의 성소수자 혐오발언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처음 발의된 제주학생인권조례안은 타 지역에서 이미 시행되고 있는 조례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국가인권위원회 법에 따라 누구도 차별을 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담았다. 하지만 제주도의회 교육위원회은 학생들의 성적지향에 따른 차별 금지 조항을 삭제했다. 국가인권위원회법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차별받지 않을 평등권을 갖고 있다.

구체적으로 보면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제3호는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란 합리적인 이유 없이 성별, 종교, 장애, 나이, 사회적 신분, 출신 지역(출생지, 등록기준지, 성년이 되기 전의 주된 거주지 등을 말한다), 출신 국가, 출신 민족, 용모 등 신체 조건, 기혼ㆍ미혼ㆍ별거ㆍ이혼ㆍ사별ㆍ재혼ㆍ사실혼 등 혼인 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형태 또는 가족 상황, 인종, 피부색,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前科), 성적(性的) 지향, 학력, 병력(病歷) 등"을 이유로 고용, 교육, 주거 등 여타 생활을 함에 있어 차별을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제주학생인권조례는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도록 하는 내용이 빠진 상태다. 국가가 보장하는 평등권을 제주학생인권조례는 배제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제주여고 졸업생 김채은씨와 제주학생인권조례TF팀, 제주평화인권연구소 왓 등이 "도교육청은 학생인권침해실태에 관한 전수조사를 실시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사진=박지희 기자)
제주여고 졸업생과 제주학생인권조례TF팀, 제주평화인권연구소왓 등은 제주여고 학생인권 침해 문제와 관련해 "도교육청은 학생인권침해실태에 관한 전수조사를 실시하라"고 촉구했다.(사진=박지희 기자)

2022년 초에도 학생인권 침해 문제가 불거졌다. 제주여고 졸업생이 재학 중에 교사로부터 인권침해를 받았다고 폭로했다. 졸업생 ㄱ씨는 욕설과 비방, 성희롱 등의 인권침해 사례가 있었다고 밝혔다. 재학 중에는 차마 밝히지 못하다가 졸업 직후에야 이 같은 사실을 밝혔다. 학교 측의 미숙한 대응으로 인해 2차가해 논란이 야기되기도 했다.

제주도교육청은 해당 사건에 대한 인권침해 여부를 조사한 뒤 인권침해가 일부 있었다고 인정했다. 시민사회는 모든 학교를 대상으로 한 학생인권 실태 조사를 요구했고, 제주도교육청은 지난 29일 비로소 30개 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인권 실태조사에 나섰다.

그러는 사이, 제주도교육청의 수장이 바뀌었다. 김광수 제주도교육감. 김광수 교육감 체제에서 제주 학생인권은 어디로 갈까. 김 교육감의 인권 의식이 드러나는 한 장면이 있다. 지난달 8일 김 교육감은 제주 고등학교 회장·부회장 토크콘서트에서 제주학생인권조례에 대해 흠이 많이 보인다면서도, 걱정했던 정도까지는 아니라는 생각을 밝혔다.

그런가 하면 그는 학생과 교사 사이에 발생하는 인권문제가 소양부족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구조적 문제에 대해서는 거론하지 않았다. 이날 학생들과의 토크콘서트에서 오히려 “교사의 인권이 없다”거나, “학생이 교사에게 덤비는 횟수가 많아졌다”는 등 학생의 질문 취지에 어긋나는 말을 내뱉기도 했다. 학생인권과 교사인권을 대립적인 관계로 인식하고 있다. 어느 한쪽이 강화되면 다른 한쪽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는 듯한 태도다. 인권 문제를 편 가르기식으로 인식해서는 개선이 쉽지 않다.

이는 충분히 예상되었던 부분이다. 김광수 교육감은 지난 지방선거 후보 시절 학생 간 경쟁 및 학력 강화에 초점을 맞춘 공약들을 제시했다. 학생인권은 뒷전이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김광수 교육감 체제의 제주교육청이 학생인권 보장을 강화해 나갈지 의문이 따른다.

제주도가 다른 지자체를 따라가는 수준을 넘어 인권보장 교육 체제의 선진지가 될 수는 없을까. 제주투데이와 제주평화인권연구소왓은 이 같은 고민을 담은 기획을 공동으로 마련했다. 매주 금요일 제주 학생 인권 보장을 위한 제언을 6회에 걸쳐 게재한다.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