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현장(사진=김재훈 기자)
이태원 참사 현장(사진=김재훈 기자)

글 시작에 앞서: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할까?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에 이어 또다시 우리는 이태원 참사에 따른 집단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 소식을 접하고는 슬픔과 분노 때문에 도무지 이 글을 이어 쓸 수가 없었다. 수많은 사람의 희생이 왜 또 일어난 것이며, 그 죽음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애초 학생인권조례 제정에 따라 추진하고 있는 인권제도화에 대한 제주도교육청의 위축되고 소극적인 인권행정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에서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했다. 하지만 도교육청의 소극적인 인권행정의 문제는 도교육청만의 문제도 아니며, 도교육청만이 잘해서 될 문제도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최근 ‘종북 주사파와는 협치가 불가능하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과 과거 군사독재정권의 전형적인 이념 공세처럼 정부 여당의 색깔론과 종북몰이는 날로 수위를 높여나가고 있다.

서울, 대구, 충남 등 보수 여당의 단체장들이 대거 당선된 지자체의 경우 인권조례 폐지 서명 추진, 인권보장 및 인권증진위원회 폐지, 인권담당부서 축소, 통·폐합 등 시민들의 인권이 위축되고 실효적으로 보장받을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암담한 현실에 직면해 있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이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이태원 참사 다음날 정부종합청사에서 열린 중앙대책안전위원회본부 긴급브리핑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태원 참사에 대해 “경찰이나 소방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하면서, “서울 시내 곳곳에서 여러 가지 소요와 시위가 있었”음을 이유로 그 책임을 외부 탓으로 떠넘기는 듯한 발언을 해 논란을 불러왔다.

3일만에 공개된 녹취록에 따르면 참사가 발생하기 약 4시간 전부터 압사 위험을 알리는 시민들의 112신고가 이어졌음에도 경찰은 “최초 신고 당시는 사고 날 정도로 위험도가 있지 않았다”며 그 상황을 방치했다. 그 결과 156명의 안타까움 목숨을 잃은 대형참사로 이어졌다. 

국가의 재난 및 안전관리 업무를 총괄하며 경찰을 관할하는 행정안전부는 물론 정부 역시 책임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위기상황에서 정부가 국민을 어떻게 보호하느냐에 그 정부의 존재 이유가 있는데, 이 정부는 그 존재 이유를 어떻게 증명할 것인지 궁금하다.

이태원 역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공간(사진=김재훈 기자)
이태원 역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공간(사진=김재훈 기자)

사회적 참사와 인권

연일 조문만 하던 대통령은 참사 6일만에 공식 석상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대통령으로서 너무나 비통하고 죄송한 마음”이라며 첫 사과 메시지를 냈다. 이로써 세월호 참사에 이어 이번 참사 역시 국가 책임임이 명백해졌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근거 없는 거짓 정보와 헛소문이 계속 유포되고 있는 가운데 특히 참사 희생자들을 향한 악의적이고 폭력적인 혐오표현이 온라인상에서 끊이지 않고 있어 또 한번 이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2차, 3차 가해행위를 하고 있다. ‘놀러갔다가 사고를 당한 것이니 애도할 이유가 없다’라는 식의 희생자와 그 가족을 비방하는 일부 누리꾼들의 일탈 행위는 참사의 원인을 피해자 개인의 탓으로 돌리며 책임을 전가하는 행위에 불과하다. 이러한 일탈행위는 희생자와 그 가족은 물론 생존자와 우리 모두에게도 깊은 상처를 남기는 명백한 인권침해에 해당한다.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하고 조기 게양과 합동분향소를 만들고 모든 활동(모든 문화·예술 행사들을 취소한 반면 그 어느 때보다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한미연합 공중훈련만은 계속되고 있다)을 중지하게 하는 등의 국가적 차원의 애도가 유가족이나 우리 모두가 겪고 있는 사회적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우리는 사회적 참사가 일어났을 때 유가족과 같이 눈물 흘리고, 아파하며 고통과 절망을 나누어 가지는 등 비극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진정한 애도란 조용히 슬퍼만 하는 침묵이 아니라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죽음에 대한 원인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통해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살아있는 자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적 참사에 대한 시민들의 책임이 이러할진대, 하물며 헌법상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하는 국가의 의무와 책임에 대해 다시 물어 무엇하겠는가. 1948년 12월 10일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세계인권선언에서도 “모든 사람은 생명과 신체의 자유와 안전에 대한 권리”는 물론, 이러한 개인의 인권을 존중, 보호, 실현하기 위한 국가의 인권책무를 부여하고 있다.  

교육의 영역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2021년 1월 8일 제주지역 학생 1002명의 청원으로 ‘제주학생인권조례’가 제정·시행된 이후 도교육청은 학생인권교육센터를 개설하고 학생인권실천 3개년 계획 수립, 학생인권실태조사, 학생인권모니터링 등 학생인권 존중 기반 마련과 학생생활규정 제·개정과 컨설팅, 학생인권 상담 및 구제, 학생인권심의위원회와 학생인권참여위원회 운영·지원 등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학생인권 증진 실현과 인권친화적 학교문화 조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도교육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제 학생들은 교육현장의 변화를 인지하거나 변화를 실감하지 못한다. 전과 다름없이 이들은 학창시절을 견디고 있을 뿐이다. 올해 초 제주여고 졸업생이 재학 중에 교사로부터 욕설과 비방, 성희롱 등 인권침해를 받았다는 첫 공식 진정사건에서 소극적인 늑장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 6월 10월 도교육청은 설문 및 상담과 면담 조사를 하고, 해당 기관의 장에게 재발 방지 및 인권친화적 학교문화 조성을 위한 권고를 발표했다. 그 이후 5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현재까지도 조사에 따른 구체적인 피해 사실과 판단 및 조치 등의 결과를 포함한 권고문을 ‘법적인 문제’를 들어 공개하지 않고 있다.

학생인권교육센터의 소극적 행보가 학생인권에 대한 교육감의 부정적 인식의 반영은 아니길 간절히 희망해본다. 이 사안의 진정인은 인권침해에 대한 재발방지와 근본적인 학교의 변화를 요청했다. 도교육청은 진정인의 문제제기를 조사를 통해 문제가 있었다고 판단해서 권고 결정을 내렸다면, 피해자의 권리구제 및 가해자의 책임에 대한 적절한 조치들을 지체없이 즉시 공표하여, 그 자체를 명확히 가시화해야 했다. 이는 인권침해 피해자 및 가해자는 물론이고 다른 학생과 학교에도 도교육청의 학생인권 증진을 위한 법적 의무와 책임을 다하고 있다는 긍정적 신호가 되기 때문이다. 

인권문제를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김광수 교육감

공교롭게도 이 사건이 진행되는 사이 교육감이 바뀌었다. 보수교육감으로서 후보 시절부터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김광수 교육감은 지난 8월 도내 26개 고등학교 학생자치회장 및 부회장 등 고교생 60여명이 참석한 열린 토크콘서트에서도 학생과 교사 간 발생하는 인권 문제에 대해 ‘소양 부족’ 때문이라는 답변을 통해 학교현장에서의 인권 문제를 개인의 탓으로 돌리며 그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학교 내 인권침해가 소양이 부족한 일부 교사나 학생 개인의 일탈행위만이 아닌 학교의 문화와 구조의 문제라는 점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그 해결을 위한 책임을 다해야만 혐오와 차별 그리고 인권침해가 없는 학교를 위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 텐데 말이다. 

학교내 혐오와 차별은 사회적 문제의 반영

최근 2022 제주인권포럼의 아동·청소년 세션에서는 “혐오와 차별 없는 학교 만들기”라는 주제로 ‘교문을 넘어 들어온 학교 안 혐오와 차별은 무엇이며, 왜 문제가 되고 있고,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에 대해 아동·청소년 당사자와 인권전문가, 교육전문가 등 다양한 주체들이 모여 그 해결방안을 찾고자 고민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이 자리에서도 학교 안에서 심화·확산되고 있는 혐오표현의 문제는 일부 학생의 일탈행위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만연하고 있는 혐오와 차별 문제가 반영된 것이며,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학생 개인이나 학교 차원의 인권교육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방안이 될 수 없고, 사회의 구조와 제도, 체계의 변화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참여자 모두 이구동성으로 강조했다. 

그 시작은 ‘평등법-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을 비롯한 반차별운동을 통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차별의 역사적·구조적 문제를 공론화하고 반차별에 대한 필요성과 중요성을 확대하는 한편 그 해결을 위한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책무를 다하는 것이다. 그래서 “더 이상 구조적인 성차별은 없다. 차별은 개인적인 문제다.”고 한 윤석열 대통령의 말은 혐오와 차별을 만들어내는 우리 사회구조의 문제를 외면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를 구조적으로 정당화하거나 차별을 강화·선동하는 악의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입시경쟁의 굴레...통제와 감시의 사슬

교육공동체 구성원 모두를 입시라는 경쟁체제의 굴레 속에 가둬두고 교육감은 학교장을, 학교장은 교사를, 교사는 학생을, 심지어는 학생들끼리도 끊임없이 통제하고 감시하고 있는 엄혹한 현실이다. 이러한 사회·구조적 문제 모두를 도교육청과 교육감이 해결할 수는 없다. 분명 그 권한과 책임을 넘어서는 부분이 있다. 다만 이를 인정하고 책임지려고 할 때야 비로소 그 해결의 실마리가 보일 것이다. 

그렇다고 교육감은 학생인권의 문제를 개인의 탓으로, 권한 밖의 일이라고 하여, 제주지역 학교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학생인권 침해 문제와 차별에 대해 손 놓고 방관만 하고 있을 것인가. 도교육청은 학생인권 증진을 위한 의지와 업무 추진에 지금보다 훨씬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특히 교육감이 학교 내 인권침해가 소양이 부족한 일부 교사나 학생 개인의 일탈행위만이 아닌 학교의 문화와 구조의 문제라는 점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그 해결을 위한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솔선수범해서 학생인권교육에 참여하는 등 혐오와 차별 그리고 인권침해가 없는 학교를 위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김광수 제주도교육감(사진=제주투데이 DB)
김광수 제주도교육감(사진=제주투데이 DB)

김광수 교육감, '학교 내 인권침해' 구조 문제 올바르게 인식해야

학생인권 제도화의 한계는 명백하므로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그대로 투영된 학교의 문화와 구조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에도 교육공동체 구성원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

실습현장에서 목숨을 잃은 고 이민호, 재학 중 교사로부터 욕설과 비방, 성희롱 등 인권침해를 받은 제주여고 학생, 수업을 통해 교실 내 혐오표현 문제를 풀어보고자 한 교사 등 이들의 인권 존중과 보호, 실현을 위해 교육감으로서, 학교장으로서, 교사로서 응답(response)할 수 있는 능력(ability)을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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