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해가 지나간다.

'세월은 흐르는게 아니라 쌓이는 것'이라는 어느 소설가의  말처럼 내가 경험한 삶의 모습과 감정들이 어딘가에 켜켜이 쌓여있기를 소망한다.

전 세계에 불어 닫친 전염병과 급격한 기후 변화로 지구가 흔들리고 있다. 위기의 시간에도  음악은 지구촌 구석구석까지 울려 퍼지며 각각의 의미를 전했다.

올 한 해 인상 깊게 들었던 몇 장의 음반들을 이야기하며 2022년을 마무리 해본다.

<Here It Is : A Tribute to Leonard Cohen>

재즈의 명가 '블루노트'에서 기획한 레너드 코언 트리뷰트 앨범이다. 조니 미첼의 프로듀서를 맡았었던 레리 클라인이 진두 지휘를 했고 노라 존스, 피터 가브리엘, 제임스 테일러 등 다양한 장르와 스타일을 가진 12명의 보컬리스트가 참여했다.

빌 프리셀(G),임마누엘 윌킨스(Sax), 스캇 콜리(B) 네이트 스미스(D)로 구성된 하우스밴드에  페달스틸 기타의 그렉 레이즈, 래리골딩스(Org)가 연주를 더하였다. 빌 프리셀의 기타가 곡마다 다양한 색을 입혀 변주하며 대체로 차분한 연주를 들려준다. 사라 맥라클란이 부른 <Hallelujah>는 원곡의 분위기를 띄면서도 좀 더 선명한 감정이 느껴지고 <You Want It Darker>를 부른 펑크의 대부 이기 팝은  마치 코언의 목소리를 듣는 듯 근사한 저음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흥미진진한 트랙의 마지막을 빌 프리셀이 연주한 <Bird On The Wire>가 장식한다. 펜더 기타의 특유의 까칠 한 톤으로 노래하듯이 흘러나오는 선율에는 역시나  대가의 품격이 여실히 드러난다.

<ALVVAYS : Blue Rev>

아! 오랜만에 신선한 음악을 만났다. 캐나다 출신 인디 팝밴드 올웨이즈. 앨범 자켓은 언뜻 평범한 슈게이징 기타팝 분위기를 풍기지만 첫 곡 <Pharmacist>부터 내리 청량하면서도 진중한 사운드를  들려준다. 2-3분여의 짧은 곡들로  채워진 이 앨범을 들을때면 스무살 무렵의 어느 기분좋은 여름날로 돌아가곤 했다.

<May Erlewine : A Simple Phrase>

얼마 전 캐롤이 듣고 싶어 스트리밍 사이트를 헤매이다  찾아낸 보석 같은 음반이다. 이미 15개의 정규 음반을 발표한 이 베테랑 싱어송라이터는 어쿠스틱 기타와 피아노만을 이용한 미니멀한 연주에 맞추어 기교없이 담백한 보컬을 들려준다. 너무나도 익숙한 곡들이건만 마치 처음 듣는 것처럼 새로움을 느끼게 하는 묘한 매력의 음반이다.

<정훈희&송창식 : 안개>

올 해 가장 흥미 깊게 본 영화는 하마구치 류스케의 '우연과 상상'이었지만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영화는 박찬욱의 '헤어질 결심'이다. 첫 장면부터 훅하고 가슴을 치더니  정훈희 <안개>가 흘러 나오자 내러티브는 더욱 짙어졌다. 이 곡은 계속해서 영화 곳곳에 흐르며 모호함과 선명함의 경계를 흐트러뜨린다. 특히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면서 터져 나오는 정훈희&송창식 버전의 <안개>는 바로 다음 날 재관람을 해야 할 정도로 좋았다.

<Megadeth : The Sick, The Dying...And The Dead!>

스래쉬메탈 밴드 메가데스의 16집이다. 전 세계 락팬들을 열광시켰던 헤비메탈의 황금시절은 30여년 전이지만 그들의 음악은  여전히 뜨겁다. 4년전에 발표한 <Distopia>에서부터 진화의 조짐이 느껴지더니 이번 신보는 전성기의 음악인양 폭발적이다. 더욱 신경질적이고 독설 가득한 목소리를 들려주는 프론트맨 데이브를 필두로 새롭게 합류한 멤버들은 한치의 오차없이 견고한 리듬과 육중한 헤비 사운드를 들려준다.

<Bill Frisell : Dear Old Friend(for Alan Woodard)>

SNS에서 그의 신작소식을 듣고는 발매일을 잔뜩 기다렸다. 아무런 사전정보 없이 무작정 듣기 시작했는데 트랙이 다 끝날때까지도 베이스가 없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만큼의 여유를 두면서도 드럼의 킥과 탐,심벌소리가 리듬을 채웠고 빌 프리셀의 기타와 제랄드 클레이턴의 피아노 사운드는 충만했다.

첫곡 <Dear Old Friend(for Alan Woodard>에서부터 느껴지는 건 역시나 공간의 여백을 이용한 풍성한 팀사운드.  빌은 싱글노트 솔로를 강조하는 여타의 재즈 음악과는 다르게 코드보이싱을 적절히 이용한 멜로디를 진행시키며 연주자들의 선율을 이끌어 낸다.  그레고리 타디의 색소폰 역시 절제된 라인들로 모노톤의 사운드를 들려준다.

<Buddy Guy : The Blues Don't Lie>

1936년 생이니 여든 여덟의 나이이다. 오리지널 블루스의 산증인이며 그의  삶자체가 바로 시카고 블루스의 역사이다. 60년대 [체스 레코드]의 전속 기타리스트로 활동하며 머디 워터스,하울링 울프등의 음반에서 특유의 날선 기타를 들려줬다. 정제되지 않은 자유분방하고 거친 플레이는 지미 핸드릭스,에릭 크랩튼등에게 영향을 주었고 그래서 그를 '로큰롤 기타의 효시'라 일컫기도 한다.

올 가을에 발매된 이 앨범은 엘비스 코스텔로, 제이스 이스벨 등을 초빙해 조금은 다른 방향성을 보여준다. 그의 전작들과는 다르게 진취적이며 세련되고 정돈된 사운드다. 그럼에도 농염한 보컬과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은 그의 기타는 "이것이 진정한 블루스지!"라고 말하는 듯  폐부를 찌르며 울려댄다.

양진우
양진우

음악행위를 통해 삶의 이면을 탐구해나가는 모험가, 작곡가이자 기타리스트인 양진우 씨는 이렇게 자기 자신을 소개한다, The Moon Lab 음악원 대표이며 인디레이블 Label Noom의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다. 매달 마지막 주 음악칼럼으로 독자들을 만난다. <편집자주>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