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1일 정부가 내놓은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라 600㎿나 되는 신규 가스발전이 제주도에 신설되는 문제를 다루기 위해 긴급하게 토론회가 개최되었다. 토론회 제목은 ‘탄소중립 시대, 제주 가스발전이 나아갈 길’이었다. 제주도에 새롭게 화석연료 기반의 가스발전시설을 갖춰지면 그 자체로 탄소중립을 달성할 수 없다는 점을 알리기 위한 토론회였다.
토론회에는 정부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제주 전력거래소와 한전이 참여했다. 급격한 기후위기 시대에 IPCC가 6차 종합보고서를 통해 급진적인 변화 없이 인류의 미래도 없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음에도 토론회에 참여한 전력거래소와 한전 관계자는 답답한 소리만 늘어놨다. 가스발전도 더이상 늘리면 안 되고 지금 있는 가스발전도 최대한 빨리 퇴출해야 한다는 주장에 전력거래소와 한전 관계자들은 석탄을 퇴출하려면 그 자리에 가스가 들어서야 하고,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을 극복하려고 해도 가스가 필요하다는 논리를 폈다.
그리고 그 논리가 끝에 다다르면 전기를 갑자기 많이 쓸 때를 대비한 비상 전원으로서의 가치로 변질 되는 모습까지 보인다. 그리고 더 끝으로 가면 수소 전소(全燒)를 도입해 무탄소 전원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는 기대인지 소원인지 모를 기술만능주의 설파하기까지 한다.
그런데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석탄을 대신하기 위해서도 가스가 필요하고, 재생에너지 변동성과 전력수요가 정점에 이르는 한여름, 한겨울 다 합쳐서 한 달도 안되는 전력 피크 시기에 대비하기 위해서 가스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가스발전의 이용률이 지금도 45%에 머물고 있는데 석탄화력이 없는 자리에 기존 가스발전시설을 더 활용해도 무방한 것이 아닐까?
심지어 정부의 예측대로라면 2036년 가스발전 이용률은 16%까지 떨어진다. 게다가 앞으로 10년 뒤 가스발전을 굳이 늘리지 않더라도 재생에너지 기반으로 전력을 생산하고 변동성도 줄일 수 있는 기술과 대안은 충분히 마련될 수 있다. 전 세계가 이 분야에 천문학적 비용을 들여 연구를 하고 있는데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기술만능주의와 기술발전을 찬양하는 전력거래소와 한전 관계자들의 말은 모두 모순이고, 신뢰할 수 없는 것이다.
더욱 답답한 것은 토론회가 열린 그날이 공교롭게도 강릉에 큰 산불로 건물 100여 채가 전소되고 170만㎡ 이상의 숲이 사라지는 그 순간에 열린 토론회에서 이런 발언들이 나왔단 점이다. 이번 산불을 키운 것이 강한 바람과 매우 건조한 대기 상황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기후위기가 키운 산불이라는 점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이번 토론회에 참여하려 육지에서 내려온 한전의 관계자들은 비행기가 급변풍에 흔들리고 내리는데 한참 걸렸다는 말을 쏟아냈다. 오늘 토론회마저 기후위기로 불발될 수 있었단 말이다. 그래서 그들의 주장이 불편하고 또 짜증났다. 더욱이 이렇게 심각한 기후위기에 그럼 어떻게 대응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의 한전 관계자의 답은 ‘더 노력해야죠’였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기후위기로 매년 산불이 걱정이고 강원도는 산불이 마을과 도시까지 덮치고 있다. 기후위기의 최전선인 제주는 심각한 생물다양성 감소의 위기, 1차 산업 붕괴의 위기, 대규모 재해 증가의 위기에 놓여있는다. 심지어 토론회 당일 제주도의 온도가 24도에 육박하며 이례적인 더위가 발생했는데도 전력거래소와 한전 관계자는 참 한가로운 말만 해댔다.
심지어 이번 산불이 태풍급 바람에 쓰러진 나무가 전신주를 건드리면서 발생한 불티 때문이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어, 사실상 전기 시설로 인해 발생된 산불로 볼 수 있는데도 국가적 재난상황에 현상황을 가장 무겁게 받아드려야 할 전력거래소와 한전 관계자들의 발언은 너무나 가볍기만 했다.
결국 준비해온 토론문의 내용은 한 줄도 얘기하지 못하고 다른 말들만 쏟아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전력거래소와 한전 관계자들은 기후변화협약이 가장 급진적인 협약이고, IPCC는 가장 급진적인 과학자집단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쏘아붙였다. 그리고 급진적인 변화에 급진적인 대응이 당연한 것인데 도대체 왜 이런 내용에 대해서 좀 더 고민하지 않는것인지 왜 더 나은 방향과 대안이 있음에도 화력발전의 끈을 놓지 못하는 것인지 묻고 또 물었다.
그리고 말미에 "우리 아이가 18개월입니다. 나는 이 아이가 70살 80살까지 잘 살길 바랍니다. 당장은 이 아이가 20살 때 행복하길 바랍니다. 대학 생활도 즐기고, MT도 가고, 청춘 그 자체의 행복을 꽃피우길 바랍니다. 그런데 지금 정부가 그리고 이를 대변하러 온 분들이 그런 미래를 가능하게 만들어 가는지 모르겠습니다. 도민의 동의도 공론화도 하지 않는 LNG발전소 건설을 나는 끝까지 반대할 것입니다. 어떤 방법과 어떤 수단을 쓰든 나는 결단코 반대할 것입니다.”
이 말의 끝에 그들의 얼굴에 살짝 미안함 같은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뿐 이었다. 이에 대한 답은 들을 수 없었다. 최소한 강릉 산불 상황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는 의례적인 말도 들을 수 없었다. 물론 우리 아이 아니 우리 미래 세대에 대한 미안함이나 책임감도 한마디 들을 수 없었다. 이렇듯 기후변화협약의 당사국으로 엄청난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대한민국이 기후변화협약을 급진적이라 매도하고, IPCC를 급진세력으로 몰아가는 이 엄청난 모순에 우리는 살고 있다.
오로지 더 많은 성장 그리고 더 많은 돈을 외치며 그것에 몰입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살고 있다. 더 많은 성장이 그리고 그 돈이 결국에는 재벌대기업과 권력, 기득권의 주머니로 수렴되는 걸 뻔히 바라보면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미래를 팔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과연 정말 이대로 괜찮은 것일까? 우리 아이의 눈을 바라보면서 늘 얻는 답은 “절대 아니다!”다.
제발 이 괜찮지 않음을 정부와 지방정부가 국회와 지방의회가 절절하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다시는 토론회에서 기후위기에 대한 일말의 걱정도 없는 자들의 기술만능주의 타령을 보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라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