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가 버스노선을 개편하자 제주시버스터미널은 혼란으로 가득했다. 사람들은 어디를 어떻게 가야 할지 종잡지 못했다. 버스 운전기사마저 자기 노선 외에는 뭐라 답을 못하는 상황이었다. 운전기사마저 답답해 하며, 시민에게 120 콜센터로 전화해서 알아봐야 할 것 같다고 말하는 지경이었다. 8월 3일 오후 9시 30분경 제주시버스터미널에서 벌어진 풍경이다.

그나마 그 상황에 내가 가는 노선에 답답함에 발을 동동 구르던 시민이 가고자 하는 목적지가 있었기에 안내를 해드릴 수 있었다. 120콜센터에 전화를 할지 말지를 두고 갈등하던 그 시민의 불안한 눈빛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이렇게 일대 혼란상황에 어제까지 이어진 노선 개편에 따른 민원은 집계된 내용만 110건이다. 120콜센터의 문의 전화가 쏟아진 것은 아마 집계조차 안 되었을 것이다.

지난 6월 28일 필자가 기고한 [녹색발광] ‘그래서 나는 남원으로 갔다’ 세 번째 이야기의 서두는 버스 감차와 노선 개편에 대한 우려였다. 읍면지역에 살면서 버스를 이용하는 시민들이라면 누구나 그러했으리라 생각한다. 혹시 내 노선이 축소되거나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 말이다. 세 번째 이야기에서 버스 감차와 노선 개편으로 교통오지가 늘어나고 도민의 이동권이 더욱 제약받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를 짧게 남겼는데 아니나 다를까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도대체 버스 감차에 따른 노선 개편을 어떻게 준비하면 이런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인지 이번 사태를 보면서 정말 진심으로 의아스러웠다. 반면 감차에 대한 홍보는 정말 치열하게 했다. 필자가 출근을 위해 타는 131번, 132번 급행버스에 앞에 현수막으로 감차 때문에 연간 100억 원 이상을 아끼게 되었다는 홍보를 대문짝만하게 해놨다. 연일 보도자료며 도정 담당자의 홍보 인터뷰며 아주 대단한 성과를 냈다는 듯이 홍보했다. 그런데 정작 그 감차로 파생된 노선의 ‘개편은 개판’이라는 비아냥이 나올 만큼 홍보가 엉망이었다.

버스정보시스템에 노선 개편 공지 첫 게시물이 게시된 날짜는 7월 31일이다.(사진=김정도 제공)
버스정보시스템에 노선 개편 공지 첫 게시물이 게시된 날짜는 7월 31일이다.(사진=김정도 제공)

노선을 개편하면서 이 사실을 열흘 전에 언론 보도를 통해 공지한 것이 시작이다. 물론 세세한 노선 개편 사항을 제대로 알리지 않은 것은 덤이다. 한두 개 노선이 바뀌는 게 아니라 많은 노선에서 변화가 생기고 심지어 노선이 사라지고 새로 생겨나는 곳도 있는데도 불과 열흘 전에 관련 소식을 전했다. 그렇다면 보다 자세한 정보는 언제 도민들에게 고지되었을까? 7월 31일부터 시작되었다. 제주도가 운영하는 버스정보시스템에는 7월 31일부터 버스노선 개편 정보가 고지되었다. 8월 1일이 본격적인 노선 개편 시작일인데 불과 전날에 관련된 공지가 올라왔다. 심지어 개편 당일에 올라온 공지도 있다.

버스정류장에 부착된 개편 내용 및 노선도(사진=김정도 제공)
수기로 작성한 버스시간표 기존 시간표를 흰종이로 부랴부랴 가려놨다(사진=김정도 제공)
수기로 작성한 버스시간표 기존 시간표를 흰종이로 부랴부랴 가려놨다(사진=김정도 제공)

그렇다면 버스정류장이나, 제주시버스터미널 등 버스 이용자들이 대기하는 장소들에 관련 소식을 잘 게시했을까? 역시 아니다. 7월 31일을 전후해서 부랴부랴 관련 내용을 공지했다. 그것도 급하게 복사한게 역력한 A4용지가 붙여졌다. 관심을 가지고 보지 않는 이상 눈에 띌 리가 만무했다. 심지어 버스터미널에는 수기로 작성된 시간표가 부착되었다. 물론 노선도는 따로 공지되지도 않았다. 2024년 AI가 판치는 세상에 수기로 작성한 시간표를 읽는 버스 이용객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씁쓸함을 넘어 한심함과 더불어 분노가 치밀었다.

문제는 계속됐다. 개편에서 살아남은 버스노선의 시간표가 새로 개편된 노선의 시간표를 붙이면서 사라지기도 했다. 필자는 제주시에 가기 위해 남원읍환승정류장을 찾았다가 기부착된 131번과 132번의 버스시간표가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화들짝 놀라야 했다. 분명히 노선 개편에서 살아남았다는데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혹시 버스가 오지 않으면 어쩌나 이 버스를 타지 않으면 늦을 텐데 전전긍긍하다 건너편 버스정류장에 넘어가서 노선을 확인했다. 역시 해당 노선 안내 시간표는 없었다. 그런데 모니터에 132번 버스가 오고 있다는 표시가 나왔다. 한숨을 내쉬며 기다리다가 버스를 탔다. 깊은 분노가 몰아치는 며칠을 보내고 나니 이렇게 한심한 노선 개편이 어떻게 이뤄졌을까 내심 궁금해졌다.

그래서 전후 사정을 확인해 봤다. 일단 버스 감차에 대한 협상을 버스회사들과 마무리한 시점이 6월 말로 보인다. 7월 3일에 최종 버스 감차 대수인 64대라는 내용이 언론을 통해 공개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날 8월 1일 노선 개편이 시작된다고 알렸다. 그리고 개편된 노선을 언론을 통해 알린 시점이 7월 22일이다.

최종 감차 협상과 그에 따른 노선 개편까지 20여 일 안에 마무리했어야 하니 사실 도민들에게 제대로 알릴 여유가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제주도는 자신들이 원하는 목표를 맞추기 위해 감차 협상을 마지막까지 진행했다. 목표했던 감차는 곧 예산 절감으로 이어지니 도민들에게 박수를 받을 것으로 생각했으리라. 하지만 도민의 편익과 대중교통의 공공성을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효율과 시장성으로만 접근한 노선 개편은 당연히 도민의 지지를 받을 리 만무했다.

그 결과 비수익 노선 중심으로 감차와 노선 개편이 이뤄졌다. 주로 피해를 보는 곳은 역시나 읍면지역과 도시 외곽 지역 등이었다. 그리고 출퇴근과 등하교, 도심 내 대형병원을 이용하려는 시민들에게 피해가 집중되었다. 비수익 노선이란 이유로 감차와 노선 개편을 하면 그곳은 당연히 교통오지가 된다. 택시나 자가용을 이용하지 않으면 이동에 상당한 불편을 감내해야 하는 곳이 된다는 말이다. 대중교통이 도민의 이동 편의와 헌법이 보장하는 이동권의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는 점을 과연 제주도가 이해하고 이번 노선 개편을 한 것인지 의문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360번 버스에 내부에  뒤늦게 부착된 노선 개편 안내 표지. 개편 당일에는 붙여지지도 않았고, 쉽게 알아보기 어려운 곳에 부착되어 있다(사진=김정도)
360번 버스에 내부에  뒤늦게 부착된 노선 개편 안내 표지. 개편 당일에는 붙여지지도 않았고, 쉽게 알아보기 어려운 곳에 부착되어 있다(사진=김정도)

더욱이 기후위기 시대다. 대중교통이 기후위기 대응에 가장 중요한 첨병이라는 사실은 전 세계가 인정하고 있다. 기후위기 대응에 앞장선 선진국들은 대중교통 정책 강화가 모든 정책에 있어 우선순위를 다투는 정책이 되었다. 더 많은 시민들이 버스를 이용하게 하고, 자가용을 이용하지 않게 하는 정책이 화두인 셈이다. 그래서 완전공영제, 무료버스는 물론 버스에 각종 신기술을 적용하고, 노선의 편의성을 확대하기 위한 도시계획과 교통정책의 수정과 개선 등이 적극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그런데 제주도는 도민의 이동권과 기후위기 대응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오로지 시장논리로만 접근해 이상한 정책을 내놓았다.

버스 준공영제의 문제는 준공영제가 가진 한계에 있다. 시스템 자체가 문제라는 말이다. 버스회사가 그 어떤 노력을 하지 않더라도 망하지 않고 주주들과 사주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는 이 이상한 시스템을 고수하면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다. 제주도가 그렇게 선호하는 효율적인 시장 시스템과도 맞지 않을뿐더러 도덕적해이마저 불러오는 현행 준공영제는 폐지가 답일 수밖에 없다. 결국 공공이 책임지고 대중교통의 키를 잡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결국 완전공영제의 시행일 수밖에 없다. 이것이 시작되어야 대중교통의 혁신이 비로소 출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공성 확보, 도민 편익의 증대, 헌법적 권리의 증진, 기후위기 대응 등에 들어가는 예산을 일부 행정가들은 비용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이런 예산은 비용이 아니라 엄연한 투자다. 도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쾌적한 생활환경을 조성하며, 나아가 절망적 미래를 다시금 희망으로 바꾸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예산은 줄이는 것이 아니라 더욱 늘려서 더 많은 도민들이 변화를 체감하고 만족감을 느끼게 해야 한다.

이번 버스 감차와 노선 개편은 낙제점이다. 제주도에서 불만을 줄이기 위해 총력을 다한다고 한다. 정말 진심으로 총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그만큼 도민을 생각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정책이니 말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제주도가 정책 결정에 앞서 도민에게 의견을 묻고 답을 구하는 과정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답은 이미 도민들이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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