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한림읍 금릉리에 ‘수릉콪’이라는 해안지대가 있습니다. ‘콪’의 면적은 대략 5000평으로 작고 아담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작은 ‘콪’에서 제주 돌담의 다양한 면모를 만날 수 있습니다.

‘수릉콪’의 풍경을 한 번 살펴볼까요? 먼저 ‘집담’이 마을의 집들을 연결하고 있습니다. ‘집담’ 사이로 길을 튼 ‘올래담’이 크고 작은 ‘밭담’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밭담’과 ‘밭담’ 사이에 ‘산담’이 여럿 자리하고 있네요. ‘밭담’의 끝에는 크고 건장한 ‘잣담’이 서 있습니다. ‘잣담’은 해변가의 곡식들을 지켜내기 위해 땅의 끝자락에서 바다의 거친 파도를 막아내고 있습니다.

‘수릉콪’ 돌담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바다의 ‘원담’으로까지 이어져, 마을 사람들의 어로생활을 돕고 있습니다. 그런데 ‘잣담’과 ‘원담’ 사이, 조간대 끝자락에 서 있는 ‘상동동산’ 주변에 올망졸망한 돌담이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 조그만한 돌담이 한 평짜리 밭을 지켜내기 위해 모진 바람을 견디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림=고승욱)
(그림=고승욱)

땅이 없거나 땅이 모자란 농부는 어디에나 있는 법입니다. 이 한 평짜리 밭은 ‘새왓’을 갖지 못한 가난한 농부의 땅입니다. 농부는 ‘보리밭’과 ‘조팟’을 일구어 처자식의 배를 채웠고, ‘촐왓’을 가꾸어 소의 주린 배도 채웠습니다. 하지만 비가 새는 지붕을 잇기 위한 ‘새’를 마련할 ‘새왓’은 없었지요. 아무리 집에 비가 샌다 한들 보리를 벨 수도 없고, 소 먹이를 벨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상동동산’ 주변 바위틈에 마련한 한 평짜리 ‘새왓’은 농부의 궁여지책입니다. 물론 한 평짜리 밭에서 키운 ‘새’로 초가집의 지붕을 다 이을 순 없습니다. 하지만 한 평만큼의 ‘새’를 덜 꿔도 되고, 한 평만큼의 ‘새’를 덜 훔쳐도 됩니다. 산을 돌아다니며, 나무와 바위 틈, 구멍에 자란 ‘고망새’를 부지런히 베어 오면 한 평의 ‘새’와 합쳐 어렵사리 지붕을 이을 수 있었습니다. 장마철 비를 막아 가족들의 편안한 저녁을 만들어준 한 평 ‘새왓’, 고마운 밭이었기에 가난한 농부는 예쁜 돌담을 둘렀을 것입니다.

1967년에 촬영된 ‘수릉콪’ 일대의 항공사진입니다. ‘상동동산’ 주변 빨간색 원 안에 한 평에서 세 평에 이르는 다양한 ‘새왓’이 보입니다. ‘새왓’을 둘러싼 돌담의 형태가 제법 뚜렷합니다. 새마을운동 이후 초가집이 헐리면서 제주 ‘새왓’의 효용은 서서히 상실됩니다. 과거의 ‘새왓’은 일반 밭으로 전환되거나, 자연림으로 바뀌게 됩니다. ‘새왓’ 동산이었던 ‘상동동산’은 현재 소나무 동산이 되었습니다.(사진=제주공간정보포털)
1967년에 촬영된 ‘수릉콪’ 일대의 항공사진입니다. ‘상동동산’ 주변 빨간색 원 안에 한 평에서 세 평에 이르는 다양한 ‘새왓’이 보입니다. ‘새왓’을 둘러싼 돌담의 형태가 제법 뚜렷합니다. 새마을운동 이후 초가집이 헐리면서 제주 ‘새왓’의 효용은 서서히 상실됩니다. 과거의 ‘새왓’은 일반 밭으로 전환되거나, 자연림으로 바뀌게 됩니다. ‘새왓’ 동산이었던 ‘상동동산’은 현재 소나무 동산이 되었습니다.(사진=제주공간정보포털)

어떤가요? ‘집담’에서 한 평 ‘밭담’까지... 이 정도면 ‘수릉콪’을 제주돌담의 종합선물세트라 부를 만하지 않을까요? ‘수릉콪’ 돌담 이야기가 오래 전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겨우 40년 전 이야기입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제주 해안은 이와 같은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해안도로와 콘크리트 건물들이 돌담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이 모두가 개발논리 때문입니다.

개발이 가져다 줄 장밋빛 미래가 모든 이의 꿈이지만, 우리의 현실은 오늘도 공사중입니다. 환경보존과 개발반대의 목소리가 나날이 높아지고 있지만 개발의 꿈 또한 나날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이는 아마도 개발을 대체할 대안의 부재 때문일 것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개발의 언저리에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제주도민의 수는 늘어나고 있고, 개발의 꿈은 이들을 개발의 주체로 떠밀고 있습니다.

소나무 동산이 된 ‘상동동산’의 현재 모습입니다.(사진: 네이버지도 거리뷰)
소나무 동산이 된 ‘상동동산’의 현재 모습입니다.(사진: 네이버지도 거리뷰)
 ‘상동동산’ 안에 남아있는 돌담의 흔적입니다.(사진: 고승욱)
‘상동동산’ 안에 남아있는 돌담의 흔적입니다.(사진: 고승욱)

개발과 보존의 치열한 전쟁터에서 ‘수릉콪’ 돌담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요? 바다의 거친 파도와 싸우며 ‘한 평 새왓’을 지켜낸 돌담이 개발의 광풍을 막아낼 수 있을까요? 사라져 가는 제주풍경을 안타까워 하는 많은 제주인은 마음의 빚을 지고 있습니다. 제주풍경을 지켜내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겠지요. 개발에 찬성하는 이들이라 하여 다를까요?

그들 또한 사라져가는 제주풍경 보면서 마음 한구석에 미안함을 감추고 있을지 모릅니다. 이러한 마음들을 모아 ‘수릉콪’을 지켜내고, ‘한 평 새왓’의 돌담을 지켜낼 수는 없을까요? 작은 마음들을 모아 돌담처럼 쌓아간다면, 우리 안에 쌓인 마음의 빚을 조금씩 내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가 안타까워 하는 것은 사라져 가는 제주풍경만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붙잡고 싶은 것은 자연과 더불어 살며 자연 속에 수 놓았던 제주인의 마음일 것입니다. 제주의 풍경을 지켜내는 일, 결국 제주의 마음을 지켜내는 일 아닐까요?

고승욱.

서귀포에서 태어났다. 제주에서 고교를 마치고 상경하여 미술을 전공했다. 뜻한 바는 없었으나 솔잎을 먹다 보니 어느덧 미술에 업혀 살고 있다. 10년 전 고향 제주에 내려왔다. 제주는 너무나 뜻이 많은 곳이었다. 뜻의 미로를 헤매다가 제주민속을 만나게 되었다. 미술과 제주민속의 연결 고리를 찾느라 고민하고 있는 나는 벌써 중년이다. 뒤늦은 이 고민이 뒤늦은 도둑질이 되기를.. 업둥이는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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