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검석속립은 화산활동의 결과입니다. 하지만 화산은 바다의 성격을 결정하기 전에 땅의 성격을 먼저 결정했습니다. 화산이 만들어 낸 제주의 토양은 대부분 박토(薄土)입니다. 제주 경작지의 0.5%만이 논이고, 나머지는 밭입니다. 논농사는 물로 하고 밭농사는 거름으로 한다고 합니다.
밭에 의지하여 살아야 했던 제주백성에게 거름은 죽고 사는 문제였습니다. 필생의 거름을 생산해 낸 것은 소와 돼지의 똥이었습니다. 하지만 소와 돼지의 힘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바다에서 듬북을 건져 올려 모자란 거름을 충당해야 했습니다. 듬북과 함께 미역도 건졌습니다. 200년 동안 바닷길이 막힌 제주백성에게 미역은 거의 유일한 교환수단이었기 때문입니다.
화산은 박토를 낳았고, 용암은 검석속립을 낳았습니다. 용암은 바다 속으로 뻗어나가 경사가 완만한 동서 지역은 해안에서 2km까지, 경사가 급한 남북지역은 500m까지 이어졌습니다. 이렇게 드넓은 검석속립에 따뜻한 해류가 넘나들면서 풍요한 제주바다를 만들었습니다. 풍요한 제주바다에서 숙명처럼 태어난 제주해녀는 바다의 풍요를 건져 올려 박토의 모자람을 메웠습니다.
◼섬바르
성산리 해녀들의 주요 바다밭은 일출봉의 동쪽 끝, ‘새끼청산’과 ‘광대봉우지’ 근처에 있습니다. 그곳에 가려면 ‘오정개’나 ‘수매밑’에서 배를 띄워야 합니다. 성산리 해녀들은 이를 ‘뱃물질 나간다’고 합니다. 하지만 간혹 배가 뜨지 않는 날이 있습니다. 그런 날에도 광대봉우지까지 걸어가서 물질하는 해녀들이 있습니다.
걸어서 그곳에 가려면 거리도 문제지만, 길목마다 깎아지른 벼랑이 많아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가장 어려운 관문은 마지막에 있는 ‘섬바르’입니다. 의욕 넘치는 성산리 해녀들은 섬바르를 넘어 광대봉우지까지 가서 기어코 물질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고광민 선생은 이렇게 악착같은 성산리 해녀들을 이웃 마을에서는 ‘섬바르것들’이라 부른다고 합니다. 섬바르의 ‘바르’는 ‘바르다’에서 온 말입니다. 벌레처럼 벽에 찰싹 달라붙어 기어가는 것을 제줏말로 ‘바르다’라고 합니다.
◼꽝 깞이라도 나오쿠과
서귀포 ‘해녀의 집’에서 ‘쉐머리’까지는 약 2km의 거리입니다. 과거 ‘쉐머리’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았습니다. ‘해녀의 집’ 서쪽에 있는 약 80m의 절벽을 올라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절벽으로 난 좁은 길을 기어올라 ‘남성마을’을 거쳐 쉐머리까지 가는 데 한 시간이 넘게 걸렸습니다.
오리발이 없던 때라 썰물을 거슬러 쉐머리까지 가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멀고 험한 길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때로는 쉐머리까지 가지 않고 ‘항오지’ 아래 ‘존작지’에 불턱을 만들어 물질을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항오지의 절벽은 쉐머리보다 가파르고 높았습니다.
물에 젖은 미역을 등에 지고 80m의 절벽을 기어오르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미역을 따는 것보다 미역을 집으로 옮기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절벽을 오르내리며 물질을 해야 했던 서귀포 해녀들은 농담 삼아 서로에게 하소연 합니다. “성님, 꽝 깞이라도 나오쿠과?” 절벽을 오르내리며 뼈가 부서지도록 물질을 했는데 뼈 값이라도 나오겠냐는 말입니다.
◼불턱과 구제기 목걸이
불턱은 해녀들이 옷을 갈아입거나 휴식을 취하는 장소입니다. 지금은 해녀 탈의실이 마련되어 있지만 과거엔 돌담을 쌓아 불턱을 만들었습니다. 불턱은 해녀가 있는 곳엔 어디에나 있지만 산남지역엔 돌담으로 쌓은 불턱이 없는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산남 해녀들은 해안가에 인접한 절벽 틈새를 불턱으로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절벽 틈새는 바람을 막아주기 때문에 애써 돌을 쌓아 불턱을 만들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물질이 시작되기 전 해녀들은 불턱에 모입니다. 개중에는 애기구덕을 지고 오는 해녀도 있습니다. 애기를 돌볼 사람이 집에 없거나, 집이 불턱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애기를 보러 집을 오가기 어려운 경우, 갓난애기를 불턱으로 대려와 돌볼 수밖에 없습니다.
애기를 데리고 온 해녀가 맨 처음 하는 일은 바다에 풍덩 빠져 훍은 구제기를 재빨리 잡아 오는 일입니다. 잡아 온 구제기를 불에 구워 요물을 빼내고 실로 꿰어 목걸이를 만듭니다. 이렇게 만든 구제기 목걸이를 애기 목에 걸어두고서야 해녀는 비로소 물질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애기엄마가 물질 중간 휴식 시간에 불턱에 돌아와 보면 애기는 방긋 웃고 있습니다. 애기는 혼자서 구제기를 쪽쪽 다 빨아먹은 것입니다. 얼마나 힘차게 빨아 댔는지 딱딱하던 구제기는 스펀지처럼 놀싹해져 있습니다.
“좀녀 애기는 일뤠만에 것 먹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물질하랴 밭일하랴, 갓난애기에게 젖을 먹일 겨를이 없어 밥을 먹여야 하는 해녀의 바쁜 처지를 말하는 것인데 진짜 그런가 봅니다. 팔십이 넘은 해녀 할머니는 자식 다섯을 구제기 목걸이로 키웠노라고 말합니다.
4. 제주해녀들은 검석속립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였습니다. 칠성판을 등에 지고 들어가야 하는 위험한 바다이기에 풍향, 조류, 지형지물, 수산물 종류 등 복잡한 바다 상황을 그 이름 속에 정확히 새겨넣었습니다.
◼섬여
코지는 물살이 세고 개는 비교적 잔잔합니다. 코지 앞에서도 물살이 가장 센 여를 일반적으로 ‘섬여’라고 부릅니다. 섬여는 여러 마을에서 확인되는 공통의 이름입니다. 사진을 통해 ‘조천리 새배코지 앞 섬여’, ‘신흥리 오다리 코지 앞 섬여’, ‘신천리 코지부리 앞 섬여’를 살펴보겠습니다.
섬여 주변엔 머흘이 많습니다. 섬여를 때리는 강한 조류가 큰 바위들을 쓸어 모으기 때문입니다. 고광민 선생이 1993년 제주신문에 연재했던 “제주의 바다밭” 중 조천 세배코지의 섬여를 묘사한 글을 옮겨 봅니다.
“썰물은 동으로, 밀물은 서로 흐르는 것이 제주 조류의 공식이다. 흐르는 물은 그 방향이 어디건 섬여에 이르러 세차게 부딪힌다. 섬여 양쪽에 몰아치는 세찬 물줄기 때문에 섬여 주변엔 돌덩이만 남게 된다.
이와 같은 돌덩이를 제주 사람들은 머흘이라 한다. 섬여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궤벳머흘여, ’섬여통머흘‘, ’쏠물건지머흘‘, ’귀벳머흘‘, ’한장틔운머흘‘은 섬여와 파도가 수천년동안 부딪히면서 만들어낸 자연의 향연이다.”
‘가소애코지’는 동김녕에서 물살이 가장 센 곳입니다. 가소애코지 주변에서 특히 위험한 곳은 ‘두럭산’입니다. 이름은 섬여와 다르지만, 코지 앞에 있으며 물살이 세다는 섬여의 특징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두럭산은 한라산에 장군이 날 때 장군이 탈 용마(龍馬)가 돌을 깨고 나온다는 전설이 전해집니다.
김녕 사람들은 두럭산을 한라산, 성산, 영주산, 산방산과 더불어 제주의 5대 산이라 부르며 신성시합니다. 이렇게 특정한 대상을 신성시하는 것은 그곳이 그만큼 위험하다는 뜻이기도 하거니와 불시에 닥칠지 모를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묵언의 약속일 것입니다. 해녀들은 섬여 주변에서 동료를 부른다거나 큰 소리로 말하는 것을 삼갑니다. 이 또한 위험한 바다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따르는 금기일 것입니다.
◼조진여
여가 앞을 가로막고 있을 경우 그 뒤쪽은 물살이 잔잔해집니다. 물살을 가로막는 여를 ‘조진여’라 부릅니다. 조진여의 '조진'은 물이 잦아든다 할 때, '잦다'의 뜻입니다. (‘조진여’를 재대로 표기하자면 ‘아래 아’를 써서 ‘ᄌᆞ진여’라 쓰는게 맞습니다) 조진여 배후가 개로 막혀있을 경우 빠른 물살과 함께 들어온 멜(멸치)이 조진여 배후에 머물게 됩니다. 그래서 조진여 뒤에는 ‘멜통’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살이 센 섬여가 상군해녀의 바다라면 물살이 약한 조진여는 하군해녀의 바다입니다.
표선리 서하동 갯가에 ‘갯늪’은 우미로 유명합니다. ‘갯늪’ 바다쪽 아래에는 ‘멜트레갯늪’이 있습니다. 멜이 자주 드는 곳이어서 멜트레갯늪이라고 부릅니다. 멜트레갯늪 앞에 ‘여’가 여럿이 있어 물살을 막아줍니다. 앞에 있는 여를 부르는 이름은 없지만 조진여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멜트레갯늪은 수심이 낮고 안전한 바다이기에 늙은 해녀들이 물질하는 곳입니다. 일반해녀들은 물질을 삼가하는 ‘할망바다’입니다.
서귀포시 예래동 앞바다에 ‘조진여’가 있습니다. 예래동의 ‘조진여’는 매우 넓은 빌레로 이루어졌습니다. 바다로 흘러내린 용암이 주름진 빌레를 만들었는데, 주름이 겹치면서 ‘마루’와 ‘골’을 반복적으로 만들었습니다. 높은 ‘마루’에 부딪힌 강한 파도가 ‘마루’의 뒤로 이어진 ‘골’에서는 물살이 잦아듭니다. 이렇게 ‘조진여’의 주름진 빌레가 여러 겹의 방파제가 역할을 하기에 아무리 거친 물살도 ‘조진여’에서는 어진 물이 됩니다.
◼방애여
‘방애여’는 방애(방아)처럼 둥근여를 말합니다. 형태를 중심으로 볼 때 ‘방애여’는 여러 마을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되는 이름입니다. 해녀들은 물길을 따라 ‘방애여’를 한 바퀴 돌면서 물질합니다. 북촌 해녀의 ‘코지물질’ 순서를 조류의 흐름과 여의 위치를 종합해서 살펴보면, 해녀의 물질이 방애여처럼 한 바퀴 돌면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꼭 ‘방애여’가 아니더라도 제주해녀들은 물의 흐름을 따라서 물질을 합니다. 썰물 때는 서쪽에서 빠져 동쪽으로 흐르는 썰물을 타고 동으로 이동하며 물질을 하고, 밀물 때는 이와 반대로 진행합니다.
◼지방여
‘지방여’도 여러 마을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여입니다. 바다 수심이 완만하게 깊어지다가 특정 지점에 이르러 갑자기 깊어지는 해저지형이 있습니다. 그런 해저 지형에 있는 여를 지방여라 부릅니다. 지방여를 넘으면 본격적인 중,상군 해녀의 깊은 바다가 시작됩니다. 지방여는 ‘문지방’처럼 경계를 이루는 곳이라 하겠습니다.
남원 바다에 ‘엉바위’라는 곳이 있습니다. ‘엉바위’를 넘어서면 수심이 갑자기 깊어진다고 합니다. ‘엉바위’는 길이가 800m에 이르고, 수심 깊은 절벽이어서 여느 지방여와 비할 바가 아니라고 합니다. 남원은 절벽 경승으로 유명합니다. 땅 위의 절벽 지형이 바다속까지 이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엉바위의 깊은 수심 때문에 요즘 해녀들은 엉바위를 넘어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계속)
고승욱.
서귀포에서 태어났다. 제주에서 고교를 마치고 상경하여 미술을 전공했다. 뜻한 바는 없었으나 솔잎을 먹다 보니 어느덧 미술에 업혀 살고 있다. 10년 전 고향 제주에 내려왔다. 제주는 너무나 뜻이 많은 곳이었다. 뜻의 미로를 헤매다가 제주민속을 만나게 되었다. 미술과 제주민속의 연결 고리를 찾느라 고민하고 있는 나는 벌써 중년이다. 뒤늦은 이 고민이 뒤늦은 도둑질이 되기를.. 업둥이는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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