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인 1898년 9월 1일 한국 최초의 여성인권선언으로 일컬어지는 '여권통문'이 발표됐다. 정부는 이를 기념해 매년 9월 1일부터 7일까지 양성평등주간으로 지정해 다양한 기념 행사를 개최한다. 올해로 28회째를 맞은 양성평등주간, 제주도에서도 다양한 행사가 열렸다. 제주도정은 기념식에서 매년 성평등한 제주를 실현해 나가고 있다고 자평하고 있다. 올해 역시 마찬가지다. 성평등한 제주, 어디까지 왔을까. 얼마나 더 달려가야 할까. 제주 정치는 여성들에게 얼마나 열려 있을까. 어떻게 열 수 있을까. 제주투데이는 '다함께, 기회를' 코너에서 이 같은 질문들을 던져보고자 한다.<편집자 주>

제12대 제주도의회 의원들. (사진=제주도의회 제공)
제12대 제주도의회 의원들. (사진=제주도의회 제공)

제주도민 민의의 전당이자, 조례를 만들고 집행부를 감시하는 제주도의회. 여기서 의장은 의원들의 수장이자, 의회의 얼굴이다. 그러나 그 얼굴들은 모두 남성이다. 

제주도의회 제12대 전반기 의장단은 김경학 의장과 김황국·김대진 부의장으로 구성돼 있다. 3명 모두 남성이다. 익숙하다. 역대 의장단을 살펴보면 여성은 보기 힘들다. 1952년 5월 20일 도의회 개원 이래 전인홍(제주읍·무소속) 초대 의장을 시작으로 의장은 모두 남성 뿐이었다. 여성 부의장은 9대 후반기 방문추(민주통합당·비례대표) 단 한명이다.

타 지역도 상황은 비슷하다. 역대 의장단 중 여성이 '0명'이었던 광역의회는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변화의 움직임이 있는 곳도 있다. 전북도의회의 경우 제12대 의장으로 여성(국주영은)이 역대 처음 선출됐다. 세종시의회는 현재 의장(이순열)과 부의장(박란희) 모두 여성이다. 현재 부의장이 여성(이영애)인 대구시의회는 2012년(김화자)과 2018년(배지숙) 등 2명의 여성의장이 있었다. 1995년 개원 이래 역대 여성 부의장은 모두 7명에 달한다.

'의장은 다선의원이' ... 여성, 다선은 커녕 의원이 없다

의장단은 동료 의원들이 직접 뽑는다. 지방자치법 제57조에 따르면 시·도의 지방의회는 의장 1명과 부의장 2명을 각각 무기명투표로 선출해야 한다. 지방의회의원 중 총선거 후 처음으로 선출하는 의장·부의장 선거는 최초집회일에 실시한다. 임기는 2년으로, 전·후반기로 나뉜다.

왜 남성 의원들에게만 표가 몰릴까? 재선 의원인 강성의(화북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개인적 의지로 의장이 되고 싶어 당의 투자를 받는 방법도 있겠지만, 관행적으로 다선 의원들에게 표가 몰린다"며 "3선 이상 등 경력이 많은 의원이 의장이 되기 쉽다는 얘기다. 국회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김경학 현 의장만 봐도 일리있는 말이다. 의장단 선거에서 45표 중 43표를 얻어 당선된 김 의원은 지난 2010년 제10대 도의회 입성 후 내리 3선에 성공했다. 11대 후반기 의장을 역임했던 좌남수 전 의원 역시 4선으로 후보군 중 최다선 의원이었다. 전북도의회 역사상 첫 여성의장인 국주영은 전북도의회 의장도 전주시의원 2선, 전북도의원 3선 등 정치경력만 약 20년이다.

그러나 제주 여성의원 연혁에선 3선 이상 의원을 찾을 수 없다. 애초 여성 의원 비율이 적다. 교육의원을 포함한 12대 제주도의회 전체 의원 44명 중 여성은 9명(전체 20.4%)에 불과하다. 애초 여성의원 수가 적고, 3선 이상이 없으니 여성 의장 선출 가능성이 줄어든다.

이조차도 과거보다 나아진 편이다. 개원 이래 약 50년이 지난 뒤에야 첫 여성의원이 등장했다. 첫 여성의원은 1998년 6대 도의회에서 나왔다. 임기옥 전 의원(새천년민주당, 비례대표)이다. 이후 ▲7대 2명(9%) ▲8대 6명(13.6%) ▲9대 5명 (11.1%) ▲10대 7명(16.6%) ▲11대 9명(19.1%) 등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다.

제주도의회가 본회의장에서 제415회 임시회 제1차 본회의를 열고 있다. (사진=제주도의회 제공)
제주도의회가 본회의장에서 제415회 임시회 제1차 본회의를 열고 있다. (사진=제주도의회 제공)

여성 입문 어려운 제주 정치계 ... "지형 변해야"

도내 여성 의원은 정당 득표율에 따라 선출되는 비례대표가 대부분이다. 직접 후보로 등록해 상대 후보와 다퉈야 하는 지역구 의원이 남성에 비해 현저히 적다. 여성은 공직에 선출되기까지 더 많은 장애물을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치계에 발을 들여놓기 힘든 이유로 '일·가정의 양립'이 주로 지목된다. 김경미(삼양·봉개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아직 육아의 기본 책임은 여성에 있다고 보는 만큼, 기혼 여성들이 지역구 선거에 쉽게 도전하긴 힘들다"며 "특히 여성들은 정치에 입문할 수 있는 폭 자체도 좁다"고 말했다.

국주영은 전북도의회 의장은 "가족들의 지지가 아니었다면 약 20년간 활동을 이어오기 힘들었을 것"이라며 "발을 들일 때만 해도 여성이 선출직에 출마, 현장을 누비는 것 자체가 낯선 모습이었다. 다행히 시민들 의식이 긍정적으로 변해가고 있다"고 회고했다.

이에 정치 입문과정의 지형 자체가 변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경미 의원은 "국회의원 보좌관도, 정당 내 정책실장.사무처장 등 정책을 만들고 조직을 구성하는 핵심 역할도 대부분 남성이 되기 쉽다"며 "당 차원에서 정치에 입문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여성에 문이 활짝 열려있어야 다선 의원도 나오기 쉽다"고 주장했다.

신현정 전 제주녹색당 비례대표 후보는 "국가인권위의 여성 공천할당제 권고를 적극 수렴해야 한다"며 "현 지역구 공천 시스템은 지극히 남성 위주로, 여성은 비례대표 순번에만 올리는 데 그친다"고 의견을 냈다.

신 전 후보는 "여성들이 남성에 비해 정치에 관심이 적다는 의견도 있는데, 가부장적인 당 내부 문화도 일조한다. 특히 거대 양당의 경우, 유력 정치인들이 성비위로 물러났다는 것이 방증"이라며 "더 작은 단위인 마을자치에서 정치적 효능감을 느끼는 것도 중요하다. 내가 사는 동네를 바꿔본 경험이 쌓이면 의지가 생긴다. 그러나 현 마을회나 주민자치위 중 여성 의결권이 보장된 곳은 드문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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