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끼는 딸 상콤이(태명)를 좀 더 좋은 환경에서 키우고 싶어던 필자는 오랜 고민과 계획 끝에 본가가 있는 서귀포시 남원읍 남원리로 이사를 왔습니다. 보다 쾌적하고 좋은 환경은 삶의 질을 올려주었지만, 그에 따라 불편한 것들도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옵니다. 환경운동을 하는 활동가의 눈에 띈 불편함들을 3회에 걸쳐 녹색발광을 통해 이야기 나눠보려합니다.”

필자는 서귀포시 정확히는 남제주군 출생이다. 남원읍이 고향이고 남원읍에서도 주로 남원리에 거주했다. 어릴적 나의 고향은 전형적인 농촌이었고, 내 기억 속의 남원리는 넓게 펼쳐진 귤밭과 귤밭을 휘두른 높은 쑥대낭(삼나무는 당시 방풍림으로 많이 활용됐다)와 마을 앞 올레, 돌담과 돌담 사이 사잇길로 연결된 집들과 집과 집 사이를 가르는 동박낭(동백나무), 돼지가 있는 통시(화장실), 소낭밭(소나무숲)과 대낭밭(대나무숲). 나무로 불을 때던 아궁이, 가끔 뱀이 튀어나와 놀라곤 했던 고팡(창고), 우영팟(텃밭) 그리고 그 우영팟에서 자라던 결명자, 콩, 호박들 마당을 뛰어다니던 반려견들이 생각난다.

딸 상콤이가 안전하게 뛰어놀 수 있어 행복하다.(사진=김정도)

이쯤 되면 필자의 나이를 알고 있는 분들은 놀랄거다. 특히 놀라실 분들은 대부분 제주시 동지역에서 오랫동안 살았던 분들일테고. 제주시에 비해 서귀포시의 변화는 느렸다. 저 얘기가 70년대 얘기인가 싶겠지만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의 이야기다. 어릴적 가장 강렬한 기억을 꼽으라면 봄마다 통시에서 꺼내진 거름을 과수원에 뿌릴 때가 아닌가 싶다. 통통하게 살이 올라 위용을 뽐내던 파리의 기억은 여전히 뇌리 속에 깊이 남아있다. 그에 더해서 동네를 가득 채운 그 냄새의 기억도.

사실 예전에는 왜 이렇게 발전이 느릴까? 왜 우리 동네는 서귀포시 동지역이나 제주시처럼 발전하지 않을까를 심각하게 고민했었다. 철이 들면 나는 제주시에서 살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그렇게 2007년 본가를 떠나 자취를 하고, 결혼을 하고 무려 17년을 남원리를 떠나 살았다. 모든 동물에겐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는 회귀본능이 있다고 하던가. 막상 아이를 낳고 기르다 보니 북적한 도심은 아이에게 좋은 환경이 아니었다. 아이에겐 한없이 위험하고 불편한 곳이 도심이었다. 돌봄의 필요성도 적지 않았다. 필자 역시 불필요하게 소모되는 에너지가 커지는 것에 불안이 생겼다. 뭔가 변화가 필요했다.

그래서 남원리로의 복귀를 결심했다. 다행히 본가는 안거리와 밖거리로 나눠진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본가에 있는 부모님과 누님의 도움으로 밖거리 증축공사를 단행하고 두 달 반에 걸친 공사 끝에 3월의 첫날 남원리에서의 생활을 다시금 시작했다. 남원리로 돌아오니 모든 것이 다 행복했다. 마당에서 상콤이가 뛰놀 수 있었고 마을 안길은 차도 별로 안 다니니 애가 다칠까 염려할 필요도 없었다. 돌담과 나무와 귤밭과 야생초와 야생화가 널려 있는 공간 공간은 답답하게 속에 꾹꾹 눌러진 나쁜 기운들을 몰아내는 듯했다. 그리고 밤길을 걸으면 만나게 되는 별들이란. 제주시에 살면서 나는 우주라는 공간을 생각이나 해봤을까? 우주가 내 머리 위에 있고 그 우주에서 별빛이 쏟아져 내리고 있음을 다시금 자각하고 있다.

삶의 질과 쾌적함이 정말 계산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 게다가 남원리 집은 하나로마트에서 걸어서 7분, 그 유명한 별다방과 걸어서 7분, 제주시로 향하는 급행버스를 탈 수 있는 남원환승정류장까지 걸어서 10분, 읍사무소를 비롯해 각종 생활에 필요한 시설까지의 거리 역시 10분 내외에 위치해 있다. 솔직히 이렇게 좋은 조건에 내려가지 않는 것도 이상할 정도였다. 여기까지는 생각과 계획 범위 내였다.

밤하늘에 별이 가득한 남원리의 밤(사진=김정도)

그런데 내 생각과 계획을 벗어나는 문제들이 있다. 이렇게 삶의 질과 조건이 좋은 곳임에도 불구하고 일상생활에 불편함은 당연히 존재한다. 그런데 이 불편함이란 것이 따지고 보면 읍면에 대한 소외론, 읍면에 대한 낙후론과 크게 연관이 있는 문제들이었다. 일단 남원리에서 필자가 가장 불편한 것이 바로 제주시로의 이동이다.

필자는 제주시에서 일을 하기에 출퇴근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자가용을 타고 다니지 않는 것이 필자가 환경운동을 하는 활동가로써 내세우는 정체성이기 때문에 버스는 나를 제주시로 옮겨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이동수단이다. 남원리에서 제주시로 향하려면 버스의 선택지는 크게 두 가지다. 제주시 도심권으로 빠르게 진입하는 131번 또는 132번 급행버스를 타거나, 다소 천천히 이동하는 231번 또는 232번 일반 간선버스를 타는 것이다.

급행과 일반 간선 두 가지를 이용해 본 결과 일반 간선으로 제주시로 가는 것은 정말 너무 힘든 일이다. 짧게는 1시간 10분, 경유 등 돌아가는 경우는 1시간 20분이 걸린다. 승차감도 차이가 크다. 급행의 경우 짧게는 50분, 돌아가는 경우는 1시간 정도가 시간이 걸린다. 승차감은 월등히 좋다. 좀 더 편하게 그리고 빨리 제주시로 향하는 데는 급행버스가 좋은 선택지이다. 그런데 이 선택지에 여러 한계가 있다.

131번과 132번은 남원읍 관내의 주민들과 관광객을 제주시 도심과 제주공항으로 빠르게 이동시키는 목적을 띈 노선이다. 문제는 이 급행버스가 1시간에 한 대가 운영된다는 점이고, 비용도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먼저 1시간에 한 대가 어떤 문제일까? 첫차가 남원환승정류장에서 출발하는 시간은 6시 4분, 제주시에 도심 주요거점인 동광양정류장에 도착하는 시간은 6시 50분, 제주시 버스터미널에는 57분에 도착한다. 일단 이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것은 너무 이르니 다음 버스를 보자.

다음 버스는 무려 1시간 20분 뒤인 7시 24분이다. 이 버스는 교래사거리에서 5.16으로 우회하여 제주대학교 입구, 제주대학교 병원, 제주시청을 거쳐 제주시 버스터미널, 제주공항으로 이동한다. 제주시청 도착시간은 8시 18분, 터미널은 8시 24분이다. 다음 버스는 1시간 10분 뒤인 8시 34분에 출발하고 제주시 동광양에는 9시 20분, 터미널에는 27분에 도착한다. 일단 출근을 전제로 하면 첫차와 두 번째를 이용해야 한다.

그러면 간선버스를 타면 되지 않느냐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제주시 도심권에 8시 30분 이전에 도착할 수 있는 버스의 마지노선은 남원환승정류장에서 7시 19분으로 급행보다 5분 일찍 탑승해야 한다. 그리고 급행보다 늦게 도착해야 한다. 간선버스는 출근시간에 선택지로 삼기 어렵다. 남원읍 시민들의 이동권을 고민하고 대중교통을 활성화시키려 했다면 지금의 구조는 잘못됐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아침 출근 시간에 버스를 증차해야 한다.

더도 말고 7시 40분 전후로 5.16로로 우회하지 않고 바로 동광양과 터미널로 가는 버스가 있다면 8시 30분 정도에 도심권으로 들어온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제주시로 출근하려는 사람에게 상당한 이점이 생기는 것이다. 자가용을 두고 출퇴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남원읍에 사는 시민들에게 제공된다는 말이다. 이렇게 버스로 출퇴근을 하는 시민이 는다면 당연히 탄소배출이 줄고  기후위기에 더욱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된다. 게다가 헌법상의 권리인 이동권의 보장도 더욱 강조될 터다.

그런데 급행버스가 도입되고 여태까지 고작 1대의 버스조차 증차시키는 노력이 제안이 없었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깝다. 버스를 이용하지 않으니 읍면지역은 자연스럽게 자가용으로 이동하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런 문화로 자리잡았다. 이런 문화를 만든 것이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자가용이 없을 때 발생하는 이동의 불편함 때문이 아닌가?

다음으로 요금 문제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간선버스의 이용요금은 버스카드를 1,150원이다. 급행버스는 20킬로미터까지 2천원이고 버스카드를 이용해도 할인은 적용이 안 된다. 그리고 이동거리 5킬로미터씩 늘어날 때마다 200원의 추가요금이 붙는다. 최대요금은 3천원이다. 남원환승정류장에서 출발해서 터미널에 내릴 경우 비용이 2,800원이다. 일반 간선버스의 2배가 넘는 가격이다. 왕복으로 타면 5,600원이고 이를 한 달에 22일 정도는 이용한다고 가정하면 123,200원이 든다. 물론 여기에는 제주시 도심지에서 타는 간선버스의 비용은 뺐다. 이를 합치면 15만원이 훌쩍 넘어가게 된다.

물론 내연기관의 자가용을 이용할 때보다 비용이 적게드는 것은 맞지만 부담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대중교통의 활성화에 걸림돌이 되는 것이 바로 요금의 문제인데, 급행버스가 이렇게 높은 가격 차이를 보이게 되면 당연히 기피할 수밖에 없다. 전체 요금 자체의 조정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말이다. 그것이 너무 어렵다면 적어도 출퇴근 시간에는 감면정책을 도입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대중교통 활성화 정책으로 무료버스는 물론, 적은 비용으로 대중교통 전반을 이용하는 월정액권 등이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과연 제주도는 버스이용에 대한 활성화에 관심이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늘 도로 확장에 밀리는 대중교통 이용 활성화 정책.(사진=김정도)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은 늘 도로 확장을 얘기한다. 대중교통 이용 활성화는 뒷전으로 밀리기만 한다.(사진=김정도)

4·10총선을 앞두고 서귀포시에 출마한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후보가 남원읍을 타겟으로 만든 공약이 남조로 4차선 확장이었다. 자가용의 효율적 이용이라는 측면을 강조한 공약이다. 지역구의 현역 국회의원이자 차기 국회의원이 될 수 있는 정치인이 생각하는 지역공약이 이  정도 수준이다. 이동권이라는 시민의 권리,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대중교통 이용 증대의 필요성을 반영한 정책과 입법 공약은 그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결국 기후위기에 도움이 되는 시민들, 즉 두 발로 걷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자가용 이용을 줄여 주는 시민들을 위한 그들을 배려하는 정책은 이번 총선에서 찾아볼 수가 없다.

더욱이 제주지역 읍면지역의 인구소멸을 걱정한단다. 일자리 때문에 교육 때문에 의료 때문에 제주시로 향하는 주민들의 발목을 붙잡고 싶다면 여기에 일자리를, 교육, 의료시설을 만드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여기에 살면서 제주시로 오가는 것을 편리하게 하면 될 일이다. 그래서 자가용이 없는 주민들도 출퇴근과 병원을 오고 가는 일과 교육과 문화를 향유하는 데 불편을 느끼지 않게 하면 된다.

다시 남원리로 돌아와보니 읍면지역 소외론은 아주 작은 부분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그것들이 모이고 모여 발전 소외론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런 논의는 엉뚱하게 대규모 토건사업이나 개발사업으로 변형된다. 제2공항 역시 그중에 하나일 것이다. 말로만 읍면의 발전, 살기 좋은 읍면을 얘기할 것이 아니라 정말 생활에 밀접하게 필요한 것들을 작은 것부터 채워나간다면 살기 좋은 읍면이 될 수 있다. 이런 점을 4·10총선에 출마하는 정치인들이 꼭 알아줬으면 좋겠다.

김정도 제주환경운동연합 정책국장.
김정도 제주환경운동연합 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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