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오후 10시30분쯤 윤석열 대통령이 긴급 브리핑을 열고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사진=KTV 국민방송)
지난 3일 오후 10시30분쯤 윤석열 대통령이 긴급 브리핑을 열고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사진=KTV 국민방송)

제주환경운동연합의 활동가로 오랜 기간 ‘녹색발광’을 연재하던 필자는 지난달 11월을 마지막으로 12년 11개월을 일한 제주환경운동연합을 그만뒀다. 그리고 12월 한 달은 푹 쉬고 새로운 일을 시작할 예정이다. 다음 ‘녹색발광’에는 서귀포시민이 아닌 새로운 단체명과 직책으로 명기될 예정이다. 어쨌든 12월은 12년 넘게 쉼 없이 달려온 나에 대한 보상으로 정말 마음을 다해 쉬어볼 생각이었다. 1월부터 다시 일을 시작하게 되면 제대로 된 휴식은 또 당분간 없을 테니, 이 기간 쉬면서 독서도 할 요량으로 책도 3권이나 구매해 뒀다. 그렇게 12월은 평안과 안식이라는 2가지 키워드로 채워질 예정이었다.

#12월 3일 그날 밤

12월 3일 퇴사 3일째 되던 날이었다. 전날 오랜만에 딸아이를 재우고 영화를 한 편 보고 잤다. 얼마 만에 호사였는지 모른다. 그리고 늦잠도 잤다. 물론 딸아이를 등원시키려면 늦잠이라 봐야 7시 30분까지 잔 게 다지만 말이다. 평소 같아서야 평일에 6시에서 6시 반에 일어나는 걸 생각하면 무려 1시간이나 더 잤으니 정말 꿀 같은 휴식이었다. 그렇게 딸아이를 등원시키고 이런저런 할 일들을 하고 집에 일찍 들어와 하원을 한 딸아이를 먹이고, 놀고, 씻기고, 재웠다. 시간은 10시 30분을 넘어서고 있었다. 그렇게 나의 아주 평안한 12월 3일이 끝나가고 있었다.

잠깐 SNS를 확인하고 눈을 붙여야지 하고 연 SNS 첫 화면엔 4글자만 덩그러니 있는 게시물이 띄워져 있었다. ‘긴급계엄’ 나는 또 누가 장난을 치는 줄 알았다. 아니면 또 누가 음모론을 퍼트리나 보다 했다. 그런데 왠지 모를 불안감에 인터넷 검색을 하니 윤석열이 긴급담화를 통해 긴급계엄을 선포했다는 속보가 잔뜩 올라와 있었다. 그때까지도 현실이라고 믿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실제 친구들과의 대화에서도 본인 스스로가 탄핵을 선택했다며 국회에서 계엄을 해제하면 끝인데 왜 저러냐는 한심함을 표현하는 대화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시시각각 상황은 변했다. 서울 시내에 군인들이 보인다. 장갑차가 보인다. 헬기가 보인다. 이런 정보가 시시각각 올라왔다. 경찰이 국회 출입을 통제했다는 내용이 나오고 국회의원도 들여보내지 않는다는 정보까지 올라오면서 이건 정말 잘못됐다는 생각이 스쳤다. 곤히 자는 딸아이 얼굴만 멍하니 바라봤다. 머릿속은 복잡했다. 딸아이를 데리고 금요일부터 2박 3일로 서울대공원 나들이를 계획한 필자는 일단 비행기랑 숙소 예약을 취소해야 하나라는 생각 먼저 들었다. 내일 딸아이 어린이집은 갈 수 있는 거냐는 생각이 뒤를 이었다. 그리고 정권에 비판적인 활동가였던 나는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이 뒤를 이었다. 그리고 다시 딸아이를 멍하니 바라봤다.

#12월 3일 오후 11시

국회 상공에 헬기가 출현하고, 착륙했다는 소식이 실시간으로 전해졌다. 이제 웬만한 언론사들은 현 상황을 생중계하기 시작했다. 국회에 국회의원들이 속속 국회로 입성하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이어서 내일 오전 8시 제주도청으로 모이라는 긴급알림이 떴다. 제주지역 계엄군이 제주도청을 장악하는 시점이 오전 8시일 것으로 예측되는바 제주도청을 사수하기 위해 모여달라는 말이었다. 기자회견을 한다는 것으로 되어 있었지만 누가 봐도 잡혀갈 것을 각오하고 나오라는 메시지였다. 국회를 봉쇄하고 군인들이 국회로 향한다는 것은 곧 쿠데타를 의미했다. 계엄령하에서도 국회의 기능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현행법과 헌법상 명백히 쓰여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회를 군대와 경찰로 가로막는다? 국회의원 출입도 막는다? 이것은 명백히 국회 기능을 파괴하겠다는 신호였다. 이것은 윤석열 스스로 친위쿠데타를 자행한 것이었다. 어차피 지금 상황이라면 집에 있더라도 연행될 가능성이 매우 큰 상황이었다. 제주도청을 가는 것 이외의 선택지가 없었다.

#12월 4일 00시

국회에는 대놓고 군병력이 국회 직원과 보좌진들과 대치를 한다. 이 와중에 시민들은 장갑차를 맨몸으로 막고 유혈사태가 일어날지도 모르는 국회 앞으로 모여들었다. 국회의원들도 국회 담을 넘는 등 갖은 방법을 동원해 국회로 집결하고 있었다. 어느덧 150명 이상이 국회의사당에 모였다는 소식이 타전됐다. 어쩌면 이번 쿠데타를 막을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다. 12월 4일 00시 41분 군병력이 국회 본청 유리창을 깨고 진입을 시작했다는 내용이 타전됐다. 00시부터 TV 생중계로 국회 안팎의 상황을 보고 있던 나는 유리창을 깨고 진입하는 군병력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확인했다. 대테러 업무를 포함해 전시, 후방에 투입되어 각종 특수전을 수행하는 군인들이 국회 본청에 난입했다는 것은 실로 극한 공포나 다름없었다. 만약 의사당으로 진입해 국회의원을 물리력으로 제압해버리면 사실상 쿠데타는 성공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민간인을 대상으로 군인들은 일사불란한 제압이나 체포를 하지 않았다. 이후 알려진 사실이지만 부당한 명령이라고 생각해서 최대한 시간을 끌었다는 증언들이 나왔다. 군인들마저도 이 명령이 얼마나 문제가 되는지 알았다는 말이다. 이를 시행한 자들이 이를 몰랐을 리 없다는 것은 너무도 명백하다.

#12월 4일 오전 1시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계엄 해제 결의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2시간 넘는 상황 속에 애를 태우던 모두는 한시름을 놨다. 필자 또한 결의안 통과를 지켜보면서 이제 됐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군인들이 국회에서 철수를 시작했다. 하지만 상황이 어떻게 될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윤석열이 계엄 해제선언을 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전 2시가 지나고 3시가 지났지만, 상황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었다. 내일 8시에 도청을 가려면 잠을 자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불안한 마음을 달래며 잠을 청했다. 그리고 3시간 뒤 일어나 챙기고 도청으로 향했다. 도청을 향하는 사이 검색한 뉴스에는 윤석열이 계엄 해제를 받아드렸다는 내용이 나왔다. 8시에 도청에서 계엄군을 맞닥뜨릴 일은 없겠구나! 안도했다.

그리고 8시 예정대로 기자회견이 진행됐다. 그 시간 오영훈 도지사가 말끔하게 차려 입고 출근했다. 도민들이 도청을 지키겠노라고 연행 위험을 감수하고 목숨을 내놓고 모인 자리였다. 하수처리장 증설공사에 반대하는 월정리 해녀들을 막기 위해 바리케이스트를 설치하기도 했던 오영훈 지사는 그 자리를 어떤 생각으로 지켜보며 지나쳤을까?

#12월 4일 그 이후

딸아이와의 약속을 지켰다. 민주주의가 굳건한 덕분이고, 위대한 시민들 덕분이다. 딸아이는 서울대공원을 다녀와서 너무 재밌었다고 얘기한다. ‘아빠 최고!’를 반복해 말하는 딸아이의 웃는 얼굴을 보자니 12월 3일과 4일에 벌어진 그 일이 꿈이었나 싶다. 하지만 꿈이 아니었다. 나의 평온은 나의 안식은 산산이 부서졌다. 윤석열은 퇴진을 거부했고, 국민의힘은 탄핵 동참을 거부했다. 한동훈은 국민이 허락한 적 없는 국정운영을 도맡겠다고 선언했다. 사실상 12월 7일에 끝났어야 할 탄핵정국이 계속 이어진다. 아무리 쉬는 퇴사자라지만 주권자인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활동가로서 이 사태를 방관할 수는 없는 일이기에 기자회견이며 집회며 계속 참여하고 있다.

계엄법에는 계엄령을 선포하는 이유를 국민의 안녕질서를 지키기 위해서라 한다. 하지만 윤석열의 계엄령은 필자의 안녕질서를 철저히 파괴했고, 그 회복과정도 지난하기만 하다. 윤석열은 사랑하는 사람 한 명을 위해 이번 사태를 저질렀을지 모르겠으나 4천만 국민 개개인의 사랑은 철저하게 위협받았고 평온은 깨졌다. 12월 3일 그 평온했던 그 날 모든 것을 뒤흔들고 망친 사람이 여전히 대통령의 직에 있다. 그리고 이 위험한 사람은 어떤 짓을 또 할지 모른다. 그나마 겨우 지키고 있는 지금의 평온도 완전히 박살이 날 수 있다는 뜻이고 나의 안식휴가는 영원히 빼앗길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기에 반드시 윤석열은 탄핵되어야 한다. 그리고 쿠데타에 가담한 모두는 그 책임의 경중에 따라 처벌받아야 마땅하다.

그런데 여전히 양심을 져버린 국민의힘이 탄핵을 가로막고 있다. 이런 저열한 국민의힘의 패악을 분쇄하고 탄핵으로 가려면 결국 우리 시민들의 힘이 필요하다. 저들도 수백만의 국민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국민의힘을 향한 분노가 최대치가 되는 것을 목도하게 된다면 탄핵 참여는 불가피한 선택이 된다. 다음 탄핵은 12월 14일에 시도된다고 한다.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거리로 나오는 것이다. 지난 박근혜 퇴진에서 제주시청에 나왔던 도민 1만 명이 다시금 제주시청을 가득 메운다면 국민의힘도 별수가 없다. 국민의힘을 탄핵열차에 억지로라도 밀어 넣어야 한다. 나의 평온, 가족의 평온, 공동체의 평온을 지키고 싶다면 이제는 거리로 나아가자! 거리에서 광장에서 탄핵의 답을 찾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동훈에게 한 마디 던지고 끝맺는다.

"한동훈! 탄핵하러 나가. 감옥 가기 싫으면."

김정도 전 제주환경운동연합 정책국장.
김정도 전 제주환경운동연합 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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