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준비 부실한 버스 시스템 변화...어쩔 수 없어 속만 타는 이용자들
제주도는 지난 8월 1일부터 모든 청소년들에 대해 버스 요금을 무료화했다. 광역 지자체에서 최초로 시행된 청소년 버스 요금 전면 무료 정책은 대중교통 활성화를 위해 여러 의미가 있다. 하지만 도입 첫날부터 이 정책은 단말기 미설치 및 카드 오류 등으로 현장의 혼란을 불러일으켰다.
사업 시행을 위해서는 전용 교통복지 카드 등록과 전용 단말기 설치가 필요하지만 시행 첫날 전용 단말기가 설치된 버스는 전체 버스 833대 중 75대에 그쳤고 사업대상 어린이·청소년들에게 발급된 제주교통복지카드 8만7953개 중 2만9529개만 사용 등록이 완료된 상태였다.
준비가 매우 미흡한 상황에서 정책이 시행되자 그 피해는 청소년들에게 돌아갔다. 제주도는 ‘단말기 미설치 및 태그 오류 시 육안으로 카드 확인 후 탑승 처리’ 한다는 안내문을 각 버스 회사와 학교에 보냈지만 운전기사들과 청소년들에게 이 내용이 제대로 전달되지는 못했다. 운전기사에 따라 카드 소지 시 탑승을 허용하기도 하고 무료 탑승이 안된다며 청소년들을 내리게 하는 등 제각각이었다. 혼란스러운 와중에 학원 등의 일정을 놓친 청소년도 발생했다.
7월에 진행된 카드 등록 과정에서도 누리집 접속이 지연되고 회원가입과 로그인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문제가 발생하는 등 8월 1일 혼란은 예견된 것이었다. 제주도는 현재 모든 버스에 전용 단말기 설치를 완료했지만 온라인에서는 카드 오류에 대한 경험담이 이어지고 있다.
청소년 무상버스와 함께 제주도가 도입한 온나라페이
제주도는 기존에 65세 이상의 노인들과 6세~12세 아동, 등록장애인, 국가 유공자들에게 버스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교통복지카드를 지급했다. 이 카드는 기존 티머니 단말기 태그 방식이 적용되었다. 하지만 제주도는 8월 1일 13세~18세 청소년에게도 서비스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결제 방식인 온나라페이 방식을 개발하였고 이에 따라 새로운 단말기 설치가 불가피해졌다.
올해 1월부터 버스 요금 무료가 적용됐던 6세~12세 아동 4만 여명의 경우 1월에 발급받은 카드를 7개월 만에 교체해야 했다. 카드 한 장당 4천 원인 예산이 낭비된 것이다.
버스를 타면 운전석 옆으로 티머니 단말기와 온나라페이 단말기가 동시에 설치되어 있어 탑승객들은 혼란스럽다. 게다가 예산 부족으로 승차 구간에만 설치된 온나라페이 단말기는 교통복지카드를 사용하는 아동·청소년 8만 명의 하차 정보를 누적할 수 없다. 승하차 정보는 효율적인 노선 조정에 필수적이기에 매우 중요하다.
그럼에도 제주도가 대중교통 결제를 고도화한다면 ON나라페이를 개발하고 기존 단말기와 별도의 단말기 도입을 고집한 이유가 뭘까?
제주도 대중교통과는 청소년 무상버스 시행 한 달 정도 지난 8월 27일 ON나라페이에 관한 전문가 토론회를 열었다. 김영길 교통항공국장은 발표를 통해 ON나라페이 도입 배경에 대해 △변동형 QR코드 결제 환경 구현(간편결제) △해외 발행 VISA카드 컨택리스 결제 환경 구현(컨택리스) △어린이·청소년 무상교통복지 구현 세 가지를 들었다. 이 중 앞 두 가지는 '세계 최초'임을 강조했다.
이어서 김국장은 제주도 정책과 연계하여 ON나라페이 활용을 넓히는 한편 국내 확산 및 글로벌 시장 진출, 원화기반 스테이블 코인 발행 가능성을 밝히기도 했다.
이날 대중교통서비스 평가단들은 4만원의 토론 참관비 안내와 함께 참여를 요청받았다. 평가단을 중심으로 청소년 무상 버스와 함께 도입된 ON나라페이의 사용에서 나타난 구체적인 문제점과 개선 방안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룰 것이라 기대했지만 토론의 주된 내용은 블록체인 기반 지역화폐 개발, ON나라페이 확산 방안 등이었다. 끝까지 자리를 지킨 A씨는 ‘너무 어렵고 대중교통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대중교통부서와 무관해보이는 ON나라페이 개발은 작년 7월 초 오영훈 제주특별자치도지사가 모든 부서에 "디지털 대전환 관련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하라는 지시와 연관이 있어 보인다. 도지사 지시에 따라 작년 8월 대중교통 부서는 버스요금 QR코드 결제 시스템을 도입한 바 있다.
예고된 혼란과 여전히 속출되는 문제들...사후적 대처 중인 제주도
중국 관광객 증가와 함께 제주도는 외국인들 대상의 버스요금 QR코드 결제 시스템을 도입했다. 외국인들이 교통카드 구매 없이 알리페이 등 자국 결제 수단을 이용해서 결제할 수 있는 방법이다. QR코드를 찾아 스캔한 후 요금을 입력하고 결제가 완료되면 기사에게 결제 화면을 보여주어 확인하는 복잡한 결제 과정을 거쳤다. 결제 속도가 느렸기에 시내버스의 정시운행 및 안전 운행을 위협해 왔다.
이러한 문제점을 보완하고 결제 시스템을 고도화하기 위해 제주도는 지난 3월 (재)한국간편결제진흥원, ㈜알앰테크, ㈜케이에스넷 및 결제사 등 7개 기관과 ‘제주형결제시스템 고도화 및 보급확대를 위한 시행협약’을 체결했다. 도내 800여 대 버스에 QR코드 결제 시스템 고도화 및 비접촉식 카드결제를 도입하겠다는 계획과 함께 오영훈 지사는 “제주도가 새로운 결제시스템 비즈니스 모델을 주도”하여 “현금 없는 사회 실현이라는 디지털 대전환의 핵심 과제”를 앞당기겠다는 포부를 내비쳤다.
4월에 청소년 무상버스 정책이 발표되면서 ‘고도화 중인 제주형 간편결제시스템과 연계해 7월까지 청소년용 제주교통복지카드를 발급’하겠다는 계획이 나왔다. 발생 가능한 문제를 사전에 테스트하고 안정적인 준비를 하기에는 턱 없이 빠듯한 일정이었다. 전국 최초로 시도되는 방식인 만큼 제주형 결제시스템의 타당성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충분한 준비가 필요했지만 시행 날짜를 잡아놓고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사업이 진행되었다.
5월, 제주형 결제시스템에 대한 명칭 공모를 통해 ‘온나라페이’ 이름이 정해졌다. 제주도는 도의회 답변에서 제주형 결제시스템 개발에 들어간 12억 5천만 원 중 11억 5천만 원을 무상환펀드로 조성했으며 그 중 VISA에서 4억 원을 출자했다고 밝혔다. 버스에 타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단말기 하단 VISA 로고가 찍힌 면에 카드를 인식시켜야 한다.
버스 운전자들은 새로운 단말기에 문제가 많다고 말한다. 운전기사인 A씨는 새로운 단말기에 대해 “단말기 소리를 최대한 올려도 버스 소음에 가려 결제 여부 음성이 거의 들리지 않는 점, 운전석 쪽으로 화면이 없어서 다인승 처리 과정에 대해 확인할 수 없는 점, 단말기 사용에 어려움을 겪는 버스 이용자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운전자의 자리 이탈이 발생해 안전 문제가 생기는 점” 등을 들며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운전기사 B씨 역시 “청소년들이 카드를 찍어도 처리 속도가 느려서 여러 명이 탈 때 문제가 많고 볼륨이 너무 약해 처리 여부를 확인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제주도 게시판에는 외국인 여러 명 탑승 시 1명만 결제하는 경우가 많지만 운전기사가 확인할 수 없고 결제 속도도 나아지지 않았다는 글이 올라와 있다. 시행 초기라 단말기 작동이 불안하거나 비정상인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제주도 노선팀장은 2일 통화를 통해서 “4월 청소년 무상교통 정책이 발표되고 6월에 관련 조례가 도의회 통과되면서 빠르게 진행할 수 밖에 없었다”며 “지금 나타난 문제는 그때 그때 확인해 바로 대처하고 있다”고 밝혔다. 혼란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굳이 교통복지카드 전용단말기를 설치한 이유에 대해 사업을 담당한 주무관에게 묻자 “티머니 수수료 문제 등 공개하기 어렵다”는 답이 돌아왔다.
'전국 최초' 타이틀 욕심 탓...제주 대중교통 정책에 이용자는 보이지 않는다
온나라페이 도입에서 드러난 광경은 지난 5월 9일 제주도가 전국 최초라며 양문형 버스와 섬식 정류장을 도입할 당시의 혼란과 흡사하다. 교통 흐름과 이용자들의 입장을 고려한 사전 시뮬레이션 없이 도입되면서 승하차 위치 변동에 따른 혼란 및 기존 상대식 정류장의 동시 사용으로 인한 문제 등 도민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대중교통 정책은 이용자들이 목적지에 편리하게 갈 수 있도록 하는 노선 조정 및 버스 배차, 기사들의 안전 운행을 위한 환경 조성이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제주도 교통 정책은 아시아 최초, 전국 최초 타이틀에 급급해 제대로 준비되지도 않은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버스 이용자들과 운전기사들의 편의와 안전은 뒷전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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