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공영제, 실현가능성 없는 허황된 사업인가?
"완전공영제인 공영버스가 준공영제 버스보다 친절하다, 서비스가 좋다, 비용이 적게 든다, 효율적이다. 그 어느 것도 나은 점을 찾아볼 수가 없다. 현재 제주도의 현실을 고려할 때 완전공영제 도입은 실현 가능성이 매우 낮으며 재정적‧행정적‧사회적 요인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도민들에게 큰 부담을 줄 수 있다"
"비용은 매년 2천억 정도가 들어가는데 준공영제에 비해서 공영제가 도민들이 보는 혜택은 전혀 없다"
"담당 부서 전체 공통 의견으로 완전공영제의 도입은 불가하다고 판정한 사항인 만큼 공론화 과정의 결과는 무관하게 추진 가능성이 없다. 너무나 문제점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공론화 과정 등을 통해 수시로 브리핑을 하면서 자극적인 기사로 도민들에게 불필요한 혼란을 가중시킬 우려가 매우 크다."
"오히려 현재 있는 공영버스를 준공영제로 전환하는 게 타당하다"
"이게 순차적으로 도입해서 결국 다 도입한다면 이 비용은 누가 낼 것인가? 우리 도민들이 내는 거다... 이거는 혼란이 있을 수 있다고 이야기 안 할 수가 없는 문제다"
제주도민들의 버스공영제 공론화 청구, 부결
위 발언들은 4월 14일과 5월 9일 두 차례 걸쳐 열린 제주도 숙의형정책개발청구 심의회(이하심 의회)에서 교통항공국 책임자인 국장과 심의회 의장인 행정부지사가 한 발언이다. 심의회는 제주도민들이 ‘버스완전공영제’ 방안에 대해 공론장을 열어달라고 청구한 사안을 심의했다. 교통항공국장은 버스완전공영제 추진에 대해 "너무나 문제점이 명확"하다며 공론장을 열어서는 안된다는 의견을 강력히 피력했다.
결국 ‘제주특별자치도 숙의민주주의 조례’에 근거해 도민들의 청구건을 심의한 심의회는 5월 9일 회의에서 ‘버스완전공영제’ 숙의형정책개발 청구건을 최종 찬성 4, 반대 9로 부결했다.
버스완전공영제는 공론장에 꺼내 토론할 수도 없을 정도로 문제가 심각한 제도일까? 제주도가 강력히 반대한 근거는 무엇인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얻은 두 차례 심의회 회의록을 통해 정리해보았다.
버스완전공영제 전환에 대한 행정의 두려움
현재 제주에는 준공영제로 운영되는 7개의 민간 버스회사와 공영으로 운영되는 제주시 공영버스, 서귀포시 공영버스가 있다. 2000년대 초반 일부 민영버스가 폐업하자 2003년과 2004년 각각 제주시와 서귀포시가 공영버스 운행을 시작했다. 일부 공영버스를 운영하는 세종시와 화성시는 세종도시교통공사와 화성도시공사에게 운영을 위탁하지만 제주도는 제주시와 서귀포시 교통행정과 공영버스팀에서 운영을 담당했다. 제주도가 발행한 2024년 12월 31일 기준 교통현황 자료를 보면 제주도의 공영버스는 총 95대로 준공영제 버스 698대의 13% 수준이다.
교통항공국장은 심의회에서 "여객운송사업은 민간사업의 영역"이며 "공공영역에서는 비효율적 운영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말한다. 제주도의 교통 행정을 들여다보면 공영버스의 비효율적 운영은 당연한 결과이다.
공영버스팀이 담당하는 업무는 △공영버스 종사자 노사 관리 △노선 및 운행시간표 관리 △ 차량 구입 및 유지관리(정비 및 수리) △신규 노선 수요 파악 및 신설 △공기업특별회계 예산운영 및 공영버스 종사자 급여 지출·관리 △배차 차량 교체 등으로 하나의 버스 회사를 운영하는 것과 같다.
20년 이상 공영버스 사업을 했기에 제주도 행정이 축적된 운영 노하우를 보유했을 거라 짐작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순환보직의 특성상 담당자는 2~3년에 한 번씩 계속 바뀐다. 순환근무로 배치된 공무원들은 기본 업무를 익히기에도 벅차고 업무가 손에 잡힐만하면 다른 부서로 옮겨간다. 수요에 맞도록 노선을 짜고 그로 인해 버스 이용객을 끌어들이고 비용의 효율적 지출을 위한 아이디어를 짜내는 것은 엄두조차 내기 어렵다. 이런 상황인데 완전공영화라니, 행정 입장에서는 겁이 덜컥 날 수밖에 없다.
게다가 2017년 버스준공영제가 도입되면서 공영버스가 읍면의 비수익 노선을 전담하게 되자 증가하던 공영버스 이용객은 크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오지 노선을 담당하는 공영버스의 운송 적자 증가는 당연한 결과이다. 공영버스가 처한 상황을 쏙 빼놓고 공영버스를 매도하는 사업 책임자의 속내를 이해하기 어렵다. 제주도는 공영버스 운영을 전담하는 시설 설립을 통해 공영버스 운영의 전문성을 축적할 필요가 있다.
공영제 초기 인수 비용 따져보기
공영제 전환을 위해서는 노선권과 차량, 차고지 등을 인수해야 하기에 초기 비용이 많이 든다. 제주도는 공영제 전환 비용으로 초기 인수비 1,874억 원, 매년 추가 운영비 739억 원을 주장한다.
초기 인수비부터 살펴보자. 제주도의 주장에 따르면 민간버스 면허권 인수에 1,047억 원(698대×1억5000만 원), 차고지 매입에 827억 원이 든다.
2023년 나온 ‘목포시 시내버스 공영제 타당성 검토 및 실행방안 연구용역’ 보고서를 보면 신안군의 경우 대당 영업권 보상 비용은 3천900만 원이었다. 노선의 적자 수준이 심각한 상황이어서 협의를 통해 노선에 대한 권리 보상 없이 영업권만 인수하여 노선권을 획득했다.
정선군은 노선권과 차량 등 유무형 자산을 포함하여 대당 1억1천9백만 원, 화성시 역시 모두 포함하여 대당 8천만 원을 보상했다. 제주도가 예로 삼은 목포시의 경우 대당 1억4900만 원의 노선권 인수비용을 지급했다. 올해 공영제를 추진하는 의령군의 경우 노선권과 면허권을 포함 대당 4천700만 원으로 협의했다. 이와 같이 시내버스 노선권 가격에 대한 명확한 기준은 없으며 결국 지방자치단체와 운송회사와의 협상 여부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차고지의 경우에도 일괄 매입이 아니라 임대, 단계적 매입 등 다양한 비용 분산이 가능하다. 이와 같이 초기 인수 비용은 행정의 능력에 따라 충분히 조정될 여지가 크며 장기적 비전을 가지고 비용을 분산하는 방법도 가능하다. 제주도는 최대 비용을 산정해 비용에 대한 공포를 자극하고 있다.
공영제 운영 비용 따져보기
제주도가 제시하는 추가적인 운영비 역시 계산이 맞지 않는다. 제주도는 2022년 준공영제 버스의 하루 운영비(표준운송원가)가 63만4600원이고 공영버스는 76만7000원이기에 모두 공영제로 전환하면 매년 739억 원의 운영비가 추가로 발생한다고 말한다. 단순 계산하면 민간버스 회사 698대에 공영버스 하루 운영비를 적용하면 337억 원이 증가한다. 제주도가 주장하는 추가 운영비 739억 원의 절반에도 못미친다.
게다가 목포시의 용역보고서는 준공영제 버스의 대당 1일 표준운송원가 66만9072원인데 비해 공영제 버스는 65만5998원으로 오히려 더 낮아지는 것으로 파악한다. 제주도의 경우 민간 버스 7개사를 공영화한다면 차량 구입이나 정비 등에서 대량 구매를 통해 단가를 낮출 수 있고 표준운송원가에 포함되는 임원 인건비 역시 줄일 수 있다.
준공영제 하에서 중복노선을 조정하는 것이 버스 회사의 저항 때문에 쉽지 않았다면 공영제 하에서는 노선 효율화가 용이해져서 버스 이용자가 늘 것이고 이는 운송 수입 증가로 이어질 것이다. 현재 제주도 공영버스의 표준운송원가가 준공영제 버스보다 20% 이상 높은 상황은 오히려 제주 버스 행정의 무능력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다.
신안군, 정선군, 목포시 등 버스공영제 도입 잇달아
신안군을 시작으로 군 단위 버스완전공영제 실험이 이어지고 있다. 신안군은 ‘버스공영제사업 경제성 분석 검토 용역’을 통해 16년간 버스공영제를 시행하면서 매년 160억 원의 경제 성과를 냈다고 발표했다.
2020년 7월 버스공영제를 시작한 정선군 역시 연평균 이용객이 매년 14.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 소멸을 막기 위해 공공에서 대중교통을 확보하려는 노력은 완주군, 의령군에서 이어지고 있다.
시 단위로는 목포시가 최초로 시민들이 참여하는 공론화 과정 끝에 공영화 방향을 결정한 후 2024년 목포시의 모든 노선을 매입했고 올해부터 목포식 공영제를 도입하고 있다. 이런 흐름들은 "준공영제에 비해서 공영제가 도민들이 보는 혜택은 전혀 없다"는 제주의 교통담당 책임자의 발언을 무색하게 한다.
제주도는 올해 양문형버스, 섬식정류장을 전국 최초로 도입하면서 단계적으로 섬식정류장 시설공사비 310억 원, 양문형 저상버스 구입비 1956억 원 등 총 2300억 원을 투입하려 한다. 결국 비용의 문제가 아니라 어디에 돈을 쓰는가의 문제이다. 공영제 전환과 섬식정류장·양문형버스 도입 중 도민들이 원하는 정책 방향은 무엇일지 도민들에게 물어는 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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