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 실험실
시옷서점이 서귀포로 자리를 옮긴 덴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서귀포가 시인 부부의 주요 할동지라는 점, 김신숙 시인의 고향이라는 점 그리고 대학교가 없다는 점.
대학이 없는 소도시에서 자라는 어린이나 청소년들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언젠가는 자기 마을에서 떠나야 한다는 상실감’을 갖고 자란다고 김 시인은 고백했다. 동감한다. 나 역시 제주 서쪽의 한 시골 마을 태생으로 중학교까지는 고향에서 마쳤지만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제주시로 이주해 왔고 지금은 제주시가 집이자 고향이 되었다.
그렇다면 대학이 있는 제주시의 경우는 어떨까. 제주시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이들 역시 섬을 떠나야 한다는 최면술에 걸려 자란다. 더 큰 곳, 더 넓은 곳. 어쨌든 섬이 아닌 곳을 ‘경험’해 봐야 한다는 압박 혹은 의도된 동경이 있다. 상실감과 압박감. 우리 세대뿐 아니라 ‘제주 키즈’들은 지금도 그렇게 성장 중이다.
그런 상실감을 조금이나마 해소하는 방법은 ‘청소년들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어떤 공간 형성’이 아닐까 하는 것이 시인 부부가 내린 결론이었다. 그런 다양한 경험을 가능케 하는 것으로 문학은 꽤 탁월하다. 영상매체도 좋은 방법이나 보는 이를 수동적 위치에 머물게 한다. 문학은 스스로 읽어야 하고 읽으면 상상이 되기 때문에 자연스레 사고하도록 유도한다. 독자가 주체적인 입장이 되기에 실제로 독자의 자아, 자존감 형성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친다.
김 시인은 유년 시절 많은 시간을 동네 서점에서 보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서점이 다섯 군데 정도 있었는데 책 살 돈은 왜 항상 부족한지. 그 서점들에서 한 시간씩 머무르면서 책을 읽었다. 그럼에도 서점지기들은 그녀를 내쫓지 않았다. 그녀가 왜 그러는지 알고 있기에. 당시 서귀포는 도서관 시설도 여의치 않을 때였다.
한창 자아가 여물던 청소년 시절을 서점에 기댈 수 있어서 김 시인은 시인의 꿈을 계속 품을 수 있었다. 현 시인 역시 서점에서 수많은 시집들을 만났기에 이 둘은 서점에 대한 고마움이 가슴 한 켠에 있었다. 성인이 돼서는 그런 공간을 제공하고자 하는 바람을 갖게 됐다고. 이것은 비단 청소년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성인들, 그 성인들은 예술인과 문학을 비롯한 예술인을 꿈꾸는 이들, 그리고 소시민을 위한 것으로 확장됐다.
현택훈 시인은 ‘시’만으로는 살 수가 없어서 ‘시’에서 파생되는 여러 가지 일들을 하게 된 것 같다고 회상한다. 이 부부가 하는 일들의 시작은 어쩌면 그들의 생계를 위한 것에서 출발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막상 뛰어들고 보니 이 일 역시 돈이 되는 건 아니었다. 그들의 유년을 행복하게 해주었던 ‘문학에 대한 보답’으로 의미가 치환됐다. 그 보답의 구체적인 항목은 시인과 소설가를 발굴하고 육성시키는 것. 지역의 이야기 그러니까 제주 문학이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 제주 작가들의 기반을 안정적으로 다지는 것, 제주지역 출판사의 성장, 책방과의 상생 등이다.
“돈에 구애받으면 이런 일들을 할 수 없어요. 돈은 벌려요. 어떻게든.” 김신숙 시인의 말이다. 나에게 이 말은 ‘꿈을 좇는다는 것 자체만으로 이미 배가 불러요. ‘돈’의 가치는 ‘꿈’의 가치를 이길 수 없어요. 절대.’ 라고 들렸다. 생업을 유지하면서도 꿈을 이뤄가는 것. 그것은 결국 마음의 문제인걸까. 혼자였다면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 아마도 이 둘은 마음이 맞고 뜻이 맞아 ‘함께’이기에 백지장을 맞들며 나아가는 것이겠지.
아이들을 위한 독서 논술 지도를 꾸준히 하고, 다양한 문화프로그램을 기획해 선보이고 있는데 이것은 제주 내에서도 제주시에 비해 문화 분야에서 상대적으로 소외 받는 서귀포 청소년들을 위한 일이다. 그리고, 시 합평회, 동인, 동화쓰기 모임 등등 강사가 없으면 할 수 없던 일들도 10년 동안 꾸준히 이어오고 있는데 이것은 소시민들을 위한 활동이자 제주 문학계를 위한 활동이다. 제주의 풍경을 담은 소설이 너무 부족한 것 같아서 약 석 달 전부터는 소설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소설가가 많은 세상에서는 부조리도 좀 없을 것 같다고 김 시인은 말을 덧붙였다.
지역 작가의 힘은 지역성에 있다. ‘지역성이 곧 세계성’인 시대에서 지역 작가의 발굴, 성장의 의의는 ‘세계 문학계의 풍요로움과 발전’과 직결된다. 시인 부부의 혜안으로 언젠가 세계 문학계를 뒤흔들 제주 작가가 탄생하리란 기대가 내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이들이 책방을 기반으로 10년 동안 해오고 있는 동인, 합평회 실험으로 1년에 한 명 이상 등단하고 있으므로 기대감을 갖기 충분하다.
지역 출판사의 책을 학교나 기관 등의 교재로 활용하는 프로젝트도 진행 중인데 이는 지역 책 판매를 유도하고 지역 출판사를 돕는 차원에서 기획됐다. 지역 출판사가 성하면 그 출판사의 주 고객인 지역 작가들의 삶이 나아지는 건 당연한 결과. 반대로 지역 작가가 성하면 지역 출판사가 흥한다. 그리고 이것은 다시 지역 작가 육성으로 귀결되고 이는 지역의 문학 다양성을 가져올 가능성을 한껏 끌어올린다.
문학이 사람들과 만나서 일으키는 에너지, 가능성을 계속 확장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돈과 시간이 많이 든다. 품을 많이 요한다. 시인 부부가 운영하는 프로그램 대부분은 서울이나 중앙에서 하는 문화예술지원사업의 지원을 받는다. 제주도 주관의 공모사업은 대체로 참여하지 않는데 같은 지역에서 경쟁자를 한 팀이라도 줄이기 위한 마음이다.
또, 문화예술인이 지원할 수 있는 사업은 배제하고 서점이 할 수 있는 분야만 지원한다. 이 역시 문화예술인과의 경쟁에서 한 자리라도 빼기 위한 것이다. 시를 쓰는 것만큼이나 열심히 공모사업 지원서를 써야 하지만 앞으로도 15년 정도는 더 이렇게 살 계획이다. 이것이 지역 문학인이자 지역 책방지기로서 자신들의 역할이라고 둘은 입을 모았다.
# 수평선의 도시 서귀포
이 시인 부부는 지금 이 시대의 책방의 역할에 대해 그 누구보다 진지한 자세로 고민하며 지난 5년을 달려왔다. 시옷서점을 비롯해 제주의 책방들은 ‘책을 판매’하는 곳의 의미와 가치를 넘어선 지 오래다. 책방은 21세기의 소통의 장이자 소시민들의 광장으로 거듭나고 있다. 가족이 해체되고 공동체가 사라진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사람들은 가족과 공동체를 그리워한다. 그 갈증을 책방이 채워주고 있다. 제주 1세대 책방으로 시옷서점은 그 어느 곳보다 그 역할을 완성도 높게 수행해 오고 있다.
김 시인은 시옷서점이 추구하는 가치로 ‘수평선 정신’이라는 말을 했는데 수직적인 문단이나 어떤 세계를 탈피하겠단 말이다. 서열과 관행을 경계한다는 뜻이다. 큰 틀에서 누구나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개개인의 개성과 자율성을 존중한다. 다양한 문학적 활동이 있어야만 수평에 가까운 연대를 할 수 있다고 부부는 믿는다. 늘 수평선이 보이는 서귀포에서 그런 수평선들의 세계를 구축하고 싶어서 이들은 서귀포에 둥지를 틀었다.
어쩌면 시옷서점은 또다시 장소를 옮길지 모른다. 몇 번을 옮긴다 한들 이 서점의 최종 정착지를 나는 안다. 그곳은 어느 조용한 시골 마을의 버스정류장 앞일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을 싣고 나르는 버스가 잠깐 멈추는 버스정류장은 인간관계 같기도 하고, 인생 같기도 하다. 여행객이나 늘 그 정류장을 이용하는 주민이 어느 날 문득 시가 생각나 시옷서점의 문을 열고 들어오기를 현택훈 시인은 꿈꾼다. 그런 시적인 우연이 시를 입는 삶으로 이어질테니까.
헛헛한 마음, 불안한 마음, 우울한 마음, 외로운 마음 등등 그런 마음들을 마중하기 위해서 시옷서점은 오래도록 존재할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나는 이 책방의 발자국을 가만히 따라 걷는 사람이 될 것 같다.
※시옷서점은 서귀포시 중앙로153번길 5 1층에 있어요.
월~목 오전 10시에서 낮 1시까지 운영하고요.
그 외 시간은 예약제이니 시옷서점으로 문의하고 방문하셔요.
시옷서점 책방지기의 추천 책
책이라기보다는 두 시인은 여러 시인들의 이름을 얘기했다. 지난 칼럼에서도 언급됐던 故진이정, 故이연주와 故 여림, 박정대 등이다. 시인 부부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이들이다. 현택훈, 김신숙 시인의 작품들과 함께 이 부부가 사랑한 시인들의 시집을 읽어보면 어떨까 한다.
김신숙 시집 <우리는 한쪽 밤에서 잠을 자고>, <시침핀>, 동시집 <열 두 살 해녀>
현택훈 시집 <지구 레코드>, <남방큰돌고래>, <난 아무 곳에도 가지 않아요>, 동시집 <두점박이사슴벌레 집에 가면>, 음악 산문집 <기억에서 들리는 소리는 녹슬지 않는다>, 산문집 <제주어 마음사전>, 대한민국 도슨트 시리즈 <제주 북쪽>, 공저 <믿을 수 없는 이야기 제주 4·3은 왜?>
제주작가회의 계간지 <제주작가>에서도 부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제주의 시골에서도 책방을 볼 수 있는 요즘입니다. 반가운 일입니다. 책방은 책방지기의 성향에 따라 여러 장르의 책들이 가득합니다. 그래서 책방에 들어설 때마다 새로운 세상으로 초대받곤 합니다. 책방지기의 사심이 가득한 책방은 어떻게 탄생했을까요? 책방지기의 삶을 바꾼 책 한 권과 책방의 탄생기를 들으면서 우리도 인생 설계의 방향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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