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는 재난이 되어 매년 막대한 피해를 안기고 있다. 올해도 변함없이 제주 땅에는 혹독한 가뭄과 무더위가 찾아왔다. 메마른 땅 위에 빗물 대신 농민들의 피눈물만이 가득했다. 반면 한라산에는 많은 비로 인해 흙이 씻겨 내려가며 식생이 뿌리내릴 땅조차 사라지고 있다. 제주인의 삶터가 그리고 생태계가 점점 무너져 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해수면은 나날이 상승하며 태풍에 의한 해일 피해를 매해 걱정해야만 하는 상황이고, 저지대 침수구역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러는 사이 기후재난은 가난한 사람과 취약한 계층, 약자와 소외된 사람들의 안전과 생명을 앗아가고 있다. 기후난민은 이제 먼 타국의 섬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 이웃의 현실이 되고 말았다.
더욱이 제주도는 지리적 특수성에 따라 기후위기가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찾아오는 곳이다. 북반구 지역의 특성상 기후위기는 남쪽에서 먼저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렇듯 제주도는 기후위기에 보다 긴밀하고 면밀히 대응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긴급상황에 놓여있다.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 절약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 에너지를 절약하는 것은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한 가장 보편적인 실천방법이다.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행동이기에 많은 도민들에게 생활화된 실천이다. 더욱이 최근 강력한 무더위와 장기간 이어진 열대야는 막대한 에너지 소비를 불러왔기에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위한 실천과 행동은 자칫 발생할 수 있는 대정전을 막아내는 훌륭한 방파제 역할을 수행했다. 실제 윤석열 정부도 올 여름 막대한 에너지 소비에 대하여 국민들의 에너지 절약 실천을 당부하기도 했다.
이렇듯 시민들이 일선에서 에너지 절약 실천에 앞장서는 동안 이런 실천을 무위로 만드는 일도 버젓이 일어났다. 막대한 에너지를 소비하며 많은 이윤을 남기고 있지만 이에 대한 사회적 책임에는 무관심한 에너지 다소비 건물들이 행태가 바로 그것이다.
제주도의 막대한 에너지 소비를 이끄는 에너지 다소비 건물
에너지 다소비 건물은 ‘에너지이용 합리화법’에 따라 연간 2,000석유환산톤(toe)를 사용하는 건물을 대상으로 지정된다. 석유환산톤이라는 단위는 우리가 이용하는 에너지의 종류가 석유나 석탄, 가스, 전기 등으로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이를 하나의 단위로 나타내기 위해서 사용하는 단위다. 1toe는 원유 1톤에 해당하는 열량을 말하는데 이는 천만kcal에 해당하며 휘발유로 환산하면 약 1,280리터에 달하는 양이다. 2000toe가 얼마나 많은 양의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렇게 막대한 에너지를 소비하는 에너지 다소비 건물은 당연하게도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할 수밖에 없다. 이들 건물들에 사용하는 에너지의 대부분은 전기인데 통상 1toe의 전기를 사용하면 약 2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게 되는데, 2000toe를 사용하면 4000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막대한 양이냐면 이를 상쇄하기 위해 필요한 나무가 무려 50만 그루다. 나무 한 그루는 연간 평균 8kg의 이산화탄소를 저장하기 때문이다.
제주도에는 2021년 기준 132,442곳의 건물이 있는데 에너지 다소비 건물은 13곳으로 이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0.01%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들이 사용하는 에너지는 70,285toe인데 제주도 전체 건물에서 사용하는 에너지 311,447toe의 22.56%를 이들이 사용하고 있다. 전체 건물의 0.01%에 불과한 에너지 다소비 건물이 전체 건물이 소비하는 에너지의 22.56%를 소비하는 말도 안되는 불균형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에너지 다소비 건물의 정체
에너지 다소비 건물로 지정된 곳중에 공익목적인 곳도 분명히 존재한다. 현재 13곳의 에너지 다소비 건물 중 한 곳은 제주대학교병원이고, 또 다른 한 곳은 제주대학교이다. 그리고 나머지 한 곳은 제주국제공항이다. 병원은 도민을 치료하는 목적으로, 제주대학교는 미래 인재를 양성하고 과학기술을 연구하는 목적으로, 제주국제공항은 대중교통인 항공기를 운용하는 곳으로써 공공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다. 그렇다면 나머지 10곳의 건물은 어떤 곳들일까?
10곳 중 9곳은 대규모관광숙박시설이고 나머지 한 곳은 대형수족관이다. 공공목적 시설 3곳을 제외하고 이들이 사용하는 에너지 양은 제주도 전체 건물 대비 17.45%에 이른다. 그리고 압도적으로 에너지를 소비하는 드림타워와 제주신화월드 단 2곳에서 사용하는 에너지 양만 전체 건물 대비 9.2%를 차지하고 있다.
실제 이들의 막대한 에너지 소비는 제주도 전체 건물의 에너지 소비량을 끌어올리는데도 큰 역할을 했다. 2020년 건물에서 사용한 에너지 총량은 289,201toe였는데 2021년에는 311,447toe로 22,246toe가 증가했다. 무려 7.14%가 증가한 것이다. 2018년 대비 2019년에 1%가 증가하고, 2020년에 2.86%가 증가한 것에 비해 상당히 이례적으로 크게 증가했다. 이렇게 막대한 양이 증가한데 기여한 것이 바로 에너지 다소비 건물이다. 2021년에 증가한 22,246toe의 99.5%가 바로 에너지 다소비 건물에서 발생한 것이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가정에서 가게에서 에너지 절약을 위해 고군분투하며 노력해서 에너지를 줄인다 한들 이들이 막대한 에너지를 소비하는 현재의 구조가 이어지는한 그 노력은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다. 이들에게는 실로 막대한 사회적 책임이 존재하는 것이다.
사회적 책임 위해 투명하게 정보공개 해야
현재까지 제주도에서는 에너지 다소비 건물에 대한 현황만 확보하고 있을 뿐 이들에 대한 어떠한 견제도 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법상으로도 규제할 마땅한 방법이 없는 것은 맞지만 이들에 대해서 사회적 책임을 다할 것을 요구하고 변화를 이끄는 것은 제주도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여태까지 이들 에너지 다소비 건물을 운영하는 업체들과 협약을 통해 자발적 감축을 추진했다거나 실제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모습을 보여준 적은 단 한건도 확인되고 있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시민들의 여론을 모아 이들에게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려는 시민운동을 전개하려해도 정보는 철저히 차단되어 있다.
제주도는 에너지 다소비 건물에 대한 정보공개에서 업체명을 제외한 정보만을 제공하고 있다. 이렇게 업체명을 제외한 정보를 제공하는 이유는 에너지 소비가 기업의 영업비밀이라는 점 때문이다. 도대체 왜 에너지 소비 정보가 영업비밀이 되는 걸까? 그 이유가 상당히 특이한데 정보가 공개될 경우 비슷한 위치에 있는 기업과의 경쟁에서 불리해질 수 있다는 것이 업체명 비공개의 이유다.
쉽게 얘기해서 환경문제에 관심 많은 투숙객이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 호텔을 이용하지 않고 비교적 에너지를 덜 사용하는 업체의 호텔을 이용할 수 있고, 그에 더해서 사회적 평판이 나빠져서 수익이 떨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업에 지장이 생기니 영업비밀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21세기 모든 기업이 ESG를 부르짖는 마당에 도대체 이런 말도 안되는 주장에 제주도가 수긍해서 에너지 다소비 건물 업체명을 비공개한다는 것은 정말 이해할래야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기후위기가 이미 제주의 1차산업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 있고, 제주관광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마당이다.
이에 더해 도민의 건강과 안전 심지어 생명까지도 위협하는 상황에 한가하게 에너지 절약에 애쓰는 기업이 운영하는 호텔에 자신들의 고객을 뺏길까봐 걱정하는 에너지 다소비 호텔 챙기기에 급급한 제주도의 태도는 도민의 상식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기후위기에 대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 제주도가 이끌어야
오영훈 지사는 후보시절 에너지 다소비 건물에 대한 투명한 정보공개는 물론 도청 홈페이지에 이에 대한 정보를 매해 공개하겠다고 공표한 바 있다. 게다가 이미 서울시는 이에 대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으며, 탄소중립법 시행으로 기후위기가 국민의 재산과 생명에 직접적인 위해를 끼친다는 점도 법률로써 명확하게 정의됐다. 기업의 비밀이라도 국민의 재산과 생명에 영향을 끼치는 경우 무조건 공개하는 것이 현행 법률체계이다. 그렇다면 현행 법률에 근거해 에너지 다소비 건물에 대한 공개는 가능하고, 심지어 도지사의 재량권으로도 충분히 공개할 수 있다.
드림타워만 하더라도 올해 여름 가뭄으로 농민들이 고통을 감내하고 있을 때, 폭염과 열대야로 도민들이 고통받고 있을 때 막대한 에너지가 소비되는 외부 야간 조명을 계속 운영해 왔다. 심지어 가뭄임에도 버젓이 분수시설을 운영하기도 했다. 실내온도가 너무 내려가 고객들이 추위를 호소하는 일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당시는 전국적으로 예비전력 부족이 우려되며 정부가 에너지 절약을 호소하는 시점이기도 했다. 만약에 드림타워가 막대한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음이 투명하게 공개되고 모든 도민이 확인할 수 있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면 드림타워가 이렇게 무모하고 무리하게 에너지를 사용했을지 의문이다. 그만큼 제주도의 역할이 중요했었던 것이다.
결국 제주도의 에너지 다소비 건물에 대한 문제를 풀어나가는 첫 관문은 투명하게 정보가 공개되는 것에 있다. 적어도 에너지 소비를 지난해 대비 최소한 동결할 수 있을 정도는 되어야 우리는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기업들이 노력하고 있다고 수긍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결국 제주도가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고 도민들게 이를 알리는 것에서 시작될 수밖에 없다. 제주도가 기후위기를 진지하게 위기로 받아드리고 있다면 지금이라도 투명한 정보를 공개하고 이들 에너지 다소비 건물들이 에너지를 저감할 수 있도록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