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9일 열린 '공공주도 2.0 풍력개발정책 2차 공개 토론회'는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10년 넘게 환경운동을 해오면서 각종 토론회와 공청회에 토론자로 참석해 봤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도민의 의견을 듣는다며 마련된 2차 공개 토론회는 촌극을 빚다 파행으로 끝이 났다. 생산적인 토론은 부족했고, 감정 섞인 고성과 막말만이 남았다.
#제주도, 공공주도 2.0 풍력개발계획 수정안 들고 나왔지만
각종 논란과 비판에 못 이겨 제주도는 공공주도 2.0 풍력개발계획을 수정했다. 그런데 그 수정안이 나온 것이 불과 토론회가 있기 사흘 전이다. 그래서 였을까? 토론회가 개최된다는 보도자료는 고작 이틀 전에 배포됐다. 공개토론회에 공청회의 성격을 가진 자리를 알리는 기간이 고작 이틀에 불과했던 것이다. 공론을 모으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도민의견을 들었다는 명분이 필요했던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이미 토론회 전부터 일어나고 있었다.
게다가 이번 수정계획안도 지난 계획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문제가 제기됐다. 도리어 더 복잡해진 구조로 인해 사업성이 떨어질 것이란 지적도 나왔다. 더욱 중요한 점은 지구지정 이후 민간사업자를 공모해서 사업을 진행하는 것을 지구지정 이전 단계부터 민간사업자를 참여시키는 것으로 바꾸는 것에 대해 공공성이나 공익성, 사업성이 더 좋아진다는 명확한 증거나 자료, 시뮬레이션은 없었다. 제주도가 상생과 정의를 앞세우며 계획을 변경하려고 하지만 제주도의 계획 어디에서도 상생과 정의를 읽을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복잡한 추진계획에 대한 지적에 제주도는 제주도의 환경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현행 공공주도 1.0 풍력개발계획이 반환경적 계획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1.0계획이 반환경적이었거나 환경을 파괴했다는 명확한 근거는 내놓지 않았다. 반면 민간사업자가 주도하는 사업에서 환경성에 반하는 사례는 도내외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제주도는 상식적이고 논리적인 도민의 우려와 비판에 무논리로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비판하고 우려하는 토론자를 향한 좌장의 편견....토론회는 결국 산으로
이번 토론회에서 가장 두드러진 점은 토론회를 진행하는 좌장의 편파적인 진행이다. 제도 개선에 반대와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토론자에게는 긴 시간을 할애하여 토론 내용을 깎아내리는 발언과 평가를 이어갔다. 토론자의 발언을 지적하며 토론자의 발언 시간만큼 자신의 발언을 늘어 놓는 경우도 있었다. 심지어 토론자의 발언이 오해에서 비롯됐다거나 이해부족이라는 막말도 서슴치 않았다. 반면 제주도의 계획에 비교적 옹호적인 입장에 대해서는 상당히 긍정적인 발언으로 청중의 호응을 이끌어 내려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이렇게 편파적인 진행보다 더 큰 문제는 진행 자체가 엉성한 것이었다. 토론이 진행중인 와중에 토론자가 아닌 제주에너지공사 사장과 청중에게 의견을 묻는 납득하기 어려운 진행이 어어졌다. 결국 토론회 방청객들의 분노가 쏟아졌다. 이런 상황에 토론자들이 토론에 집중할 수 있었을까? 당연히 아니다. 더욱이 특정 지역에서 풍력개발을 추진하려는 사업자와 이에 찬성하는 주민대표까지 발언을 이어가는 과정은 이번 토론회를 산으로 보내버리는데 톡톡히 기여했다.
결국 토론자들도 분노했다. 필자 역시 청중 의견은 토론이 끝난 이후에 듣고 토론자들의 토론을 먼저 마무리해 달라고 수차례 요구했다. 심지어 이렇게 토론을 진행할 것이라면 토론을 끝내자고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요구는 묵살되고 산으로 간 토론회는 그 등정을 멈추지 않았다. 결국 발언 기회를 얻은 이정필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소장이 좌장의 편파적 진행을 규탄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대한 좌장의 답은 무엇이었을까? 의미 없는 발언만을 하고 있다는 핀잔이었다. 결국 이정필 소장은 이렇게 이상한 토론회는 처음이라며 퇴장을 선언하고 토론석을 이탈해 버렸다. 그 이후 토론회는 더 이어지지 못하고 파행으로 끝났다.
# 공청회자리로 마련된 토론회의 파행, 사과와 후속계획 없는 제주도
좌장이 토론자의 의견을 평가하며 싸우는 이상한 토론회가 결국 파행으로 끝이 났다. 결국 해야 할 토론은 반도 진행되지 못하고 끝났다. 이정도의 상황이라면 토론회 개최와 운영의 책임이 있는 제주도는 당연히 미흡한 진행과 이에 따른 파행에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이후 토론회를 재개최해 도민들의 의견을 제대로 듣겠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어야 한다. 하지만 제주도는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현장 분위기가 언론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으니, 굳이 먼저 나서서 여론의 질타를 받을 필요는 없지 않나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토론회에 참여해서 이 상황을 있는 그대로 목격한 도민들이 있고 토론자들이 있는데도 실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꿈 깨라는 말과 함께 이번 기고로 명확하게 공개적인 사과와 더불어 토론회의 재개최를 요구한다.
토론회가 정말 상생과 정의를 위해 도민의 목소리를 듣는 자리였다면 이렇게 넘어가면 안 된다. 공개사과 해야 한다. 토론회 재개최는 당연히 진행될 것이라 생각한다. 만약 유야무야 풍력개발 계획 변경을 강행한다면 결국 특정 이권을 쥔 자들을 위해 이번 계획이 변경되었다는 것을 도민사회에 고백하는 꼴이다. 상생이나 정의처럼 매우 무게감 있는 단어를 사용한 계획이라면 적어도 후자의 길을 가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부디 믿음을 배신하는 불신의 길을 제주도정이 가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