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여름 우리의 여름방학은 제주와 함께였다. 육지에서 방학을 보내겠다는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우리의 성장이 미비해 방학을 제주에서 보내며 더 성장하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는 방학 2주간 우리가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내기 위해 오직 정과 망치로 동자석을 조각하기로 했다.
동자석이란 무덤에 있으며 죽은 영혼에 심부름하는 아이로, 돌로 표현하는 제주 고유문화이다. 동자석은 고인이 살아 생전 좋아했던 물품을 가슴에 품고 있다. 이렇게 심오한 돌이 바로 동자석인데 이번 여름에 그것을 조각하기로 했다.
처음 이 동자석을 만든다고 했을 때 걱정됐다. 왜냐하면 나는 예전부터 무언가 만들거나 손으로 하는 것에 자신이 항상 없었고, 나의 작품에 대한 만족도 없었다. 그래서 작품을 만들며 자포자기하거나 시작조차 안 하는 순간들이 잦았다. 하지만 이번 기회로 그러한 나의 모습을 깨트릴 수 있을 거 같아서 기대되기도 했다.
첫날, 돌하르방 미술관에 갔다. 김남흥 관장님이 운영하시는 제주 조천읍 북촌리에 있는 미술관이다. 점토로 동자석 모델링을 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모델링을 하는 과정에서는 동자석의 비율을 재미있게 나타내야 한다. 머리와 가슴의 비율과 이목구비까지 이야기가 있는 것이 중요했다.
우리는 원래의 동자석의 의미에서 벗어나 우리의 꿈과 희망을 동자석에 담았다. 그렇게 모델이 완성되었다. 모델은 각자만의 특징이 많이 녹아있었다. 별, 드럼 채, 하트, 컴퓨터 기타 등 각자만의 가치가 담긴 모형들이었다.
모형화를 마치고 둘째 날 조각을 시작했다. 본격적인 돌조각을 시작하기 전 관장님이 말했다. 돌조각의 매력은 영원성에 있다고. 시간이 지나 내가 죽어도 수십세기가 지나도 나를 표현한 작품은 남아있을 것이기에 관장님은 정성을 다해 돌조각을 해야 한다고 하셨다. 관장님의 말씀에 힘입어 작업을 시작했다.
모델링 한 것을 가져와 스케치하고 정을 대고 망치로 치며 깎기 시작했다. 돌조각은 쉽지 않았다. 전에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상에서 봤을 때는 석수분들이 시원하고 작업해 쉬워 보였는데 하나하나에 정성과 온 힘을 실어야 했다. 망치가 무거워 자주 팔에 담이 왔다. 만약 조준을 잘못하면 손을 치거나 한꺼번에 많이 깎여 위험할 수가 있었다.
정의 각도나 힘 조절도 필요했다. 어떤 한 친구는 정의 각도 조절을 잘못하여 조각의 코와 귀가 날아가는 경우가 있었다. 나도 그랬다. 그럴 때마다 정말 절망적이었다. 그런데도 관장님이 이렇게 깨져도 손으로 했기에 자연스러움이 있다 해주셨다.
다른 역경도 있었다. 눈에 돌가루가 튀고, 망치로 손을 찧고, 잘못 조각하면 원하지 않은 모양이 나왔다. 그럴 때마다 포기하고 싶었다. 기계를 안 쓰니 답답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깎여나가 형태를 점점 갖추고 있는 돌을 보며 동기를 얻어 작업했다
3일차가 되니 정질이 손에 어느정도 익었다. 익숙해지니 손맛을 알아 갔다. 정의 각도를 조절하여 ‘탁탁’하고 치면 ‘틱’ 하고 떨어져 나가며 점점 형태를 갖추는 게 흥미로웠다. 즐겁게 끝까지 작업하니 예전에는 없던 나의 모습들이 보였다. 전이었다면 '나는 손재주가 없어' 하며 안하려고 하고, 계속하여 회피하려고 포기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렇게 싫어하던 것을 자신감을 얻고 재미있게 하는 ‘나’를 보고 돌조각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돌조각을 즐기며 하다 보니 4만원이었던 일반 돌은 나만의 작품으로 완성이 되었다. 완성하자마자 뿌듯함이 물 밀려오듯 밀려 들어왔다. 이 뿌듯함은 매 순간 올라왔다. 돌을 볼 때도 그랬고, 하루의 조각을 끝내고 바닥에 떨어진 돌가루를 치울 때도 그랬다. 지금까지의 과정들을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이번 작품을 통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작품을 마무리했다는 것에 의미를 크게 둔다. 작업을 하기 전 자신감이 없었지만 이렇게 끝까지 나를 닮은 멋진 작품을 만들었다는 것에 자부심이 생겼다. 잎으로 '해냈다', '할 수 있다'는 마음을 새기고 그걸 나의 힘과 삶의 원동력으로 전환시켜 살 것이다.
볍씨학교에 다니고 있는 16살 조승호입니다. 지금 제주에서 열심히 '나'를 찾아가고 발전해 가는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전태일 연극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어 바쁜 삶을 살 예정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