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녀로 대표되는 제주의 여성상. 제주 해녀가 관광용 이미지로 소비되고 있지만, 해녀는 고달팠던 제주 여성의 삶을 표상한다. 척박하고 고립된 자연환경과 가부장제 사회문화는 제주 여성을 강인하게 만들었다. 여전히 가부장제적인 사회문화가 곳곳에 남아 있다. 여러 지표들을 보면 아직 각 분야의 유리천장이 공고하다. 또 제주 여성들의 권리 확장, 여성대표성 확대를 위해 갈 길도 멀다. 임금격차도 여전하며, 가부장제적인 문화도 사회 곳곳에 남아 있다. 여성이 살기 좋은 제주를 만들기 위한 행정 당국의 노력이 필요하다. 제주도는 제주의 여성들을 위해, 그리고 성평등한 제주를 위해 어떤 정책을 펼치고 있는지 6회에 걸쳐 알아보고자 한다.<편집자 주>
“부엌으로 밀려나 있는 마을 여성들이 봉사만 하는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면서 주민 성원권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봐요. 성역할에 구애받지 않고, 마을 공동체 안에서의 권력구조가 더 성평등하고, 다양하게 섞이길 바라면서 그걸 이끌어내는 거죠.”
마을의 부엌에만 머물렀던 여성들에게 성원권을 부여하는 일. 성평등마을 조성사업의 목적에 대한 김이승현 제주여민회 정책위원장의 설명이다. 성평등마을 조성사업은 제주도와 제주여민회·전여농 제주도연합·제주YWCA 등이 지난 2019년부터 진행해왔다.
시작은 지난 2017년 제주여민회가 개최한 ‘여성친화도시 제주실현을 위한 제주여성 100인 원탁회의’ 결과, 제주여성들이 당면한 문제의 해결방안으로 ‘여성대표성 강화’가 도출되면서부터다.
제주여민회는 지역공동체의 가장 기초단위인 리단위 전통마을의 의사결정 구조와 여성의 경험에 대한 실태조사를 2018년 실시했다. 조사에서는 마을에서의 여성대표성이 현저히 낮은 상태로, 이장·개발위원회 등 주요 의사결정 구조에서도 여성들이 배제돼왔음이 확인됐다.
이에 제주특별자치도의 지원으로 제주여민회·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제주도연합은 전국 최초로 지난 2019년 성평등마을 조성사업을 실시했다. 마을단위의 성평등한 문화 및 의식을 확산하고, 의사결정 과정에서 여성대표성을 제고하기 위함이다. 시행 초기 마을 3곳이 참여했으나 올해 14개 마을로 확대됐다.
사업 대상지로 지정된 마을에서는 성평등 교육 및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성평등 프로그램은 의사소통 훈련, 여성주의 자기방어 훈련, 여성영화 상영회, 부녀회의 진행 실습법 강의, 비폭력대화 강의, 성인지감수성 및 성평등 강의, 여성 리더십 강의 등으로 이뤄진다.
성평등마을 조성사업의 핵심 활동은 ‘성평등마을규약 개정’이다. 마을규약 개정에는 대상지 마을 12곳 중 6곳이 참여했다. 수행단체와 부녀회의 검토를 거쳐 마을회 회의에서 최종 의결됐다.
제주지역 대부분의 마을규약은 마을의 의사결정 시 ‘선거권 1가구 1표’를 원칙으로 한다. 남성이 가장의 역할을 하는 가구가 다수다 보니 마을회 의사결정은 남성들의 의견만으로 모이기 쉽다. 이에 성평등마을규약에는 ‘선거권 1인 1표’를 명시한다.
마을 개발사업에 대한 마을회의 결정은 주민들의 의견을 대변하는 만큼 힘이 강하다. 그러나 이 개발위원회는 전직이장 및 청년회장 등으로 이뤄져 부녀회장을 제외하고 여성이 임명된 경우는 드물다. 이에 “개발위원회 구성에 부녀회장 당연직 추가 및 여성비율 30%”를 마을규약으로 추가했다.
이밖에도 “(목적)남녀노소 주민 모두가 평등”, “(주민의무)연령, 성별 등에 따라 차별이 발생하지 않도록 서로 배려하고 존중할 의무”, “(마을 임원조직)성별·연령 균형을 고려해 구상” 등 성평등한 마을을 향한 여러 조항들이 규약으로 제정됐다.
그러나 규약 개정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마을 내 남아 있는 가부장적인 인식 때문이다. 가부장제는 여성과 남성 모두의 인식에 자리잡혀 있었다. 일부 여성들조차도 “여자들이 너무 나선다”며 불평을 드러내기도 했다.
김이승현 제주여민회 정책위원장은 “이장님이나 마을 분위기에 따라서 이 사업이 수용되는 정도가 천차만별이다. 마을마다 정권이 있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한 마을의 성평등마을 사업에 참여했던 A씨는 “마을위원회 여성 비율을 30%로 하자고 하니까 남자들이 막 궁시렁거리더라고. 개발위원 분들이 아직 옛날 방식이 남아 있어 가지고 여자들이 왜 나서냐 이런 식이었어요.”라고 전했다.
반면 성평등마을 규약 개정으로 마을 내 남성 구성원들의 변화가 발견된 마을도 있었다. B씨는 “(마을만들기 사업 관련) 추진위원회를 구성하는데, 대부분 남자들로 구성하는데 마을 남자 어르신 중 한 분이 우리가 성평등마을로 선정됐는데 추진위원회 여성 50%, 남성 50%로 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그 안이 통과됐다. 그 어른이 엄청 보수적인 사람인데, 이런 말을 할 정도니까 엄청 고맙다.”고 말했다.
지난 2021년 제주여성가족연구원이 발표한 ‘제주지역 성평등마을 활성화 방안’ 연구에 따르면 해당 사업이 ‘사업 참여자들의 민주적 마을운영의 필요성을 깨닫는 계기’, ‘남성 참여자들의 성평등 관점 인식 전환 계기’가 됐으며, ‘여성 대표성 확대 및 일부 마을 규약개정 등 가시적 성과’를 보였다고 평가된다.
김이승현 정책위원장은 “어려운 사업이지만 마을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보면 힘이 난다”며 “사람들이 성역할이란 걸 인지하고, 마을 안에서 역동적인 변화가 이러나고, 의식이 깨어나는 걸 보면 정말 재밌고 현장감이 살아있다”고 소회를 전했다.
한편, 제주도와 제주여민회 등 수행 단체들은 성평등마을 조성사업의 향후 과제로 △마을별 여건에 맞는 단계별 사업시행 방안 마련 △신규마을 발굴 및 단계별 사업 시행 △기존 참여마을에 대한 후속사업 지속 △성평등마을 조성사업 추진 기반 활동 강화 △읍면 지역 마을에 특화된 마을 역량강화 프로그램 마련 등을 제시했다.
※ 이 기사는 제주특별자치도로부터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