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수소경제'라는 말을 쓰지 않으면, 산업 트렌드나 기술 트렌드에 뒤쳐진 사람처럼 비춰지는 인상이다. 전국의 광역지방자치단체중에 수소와 관련된 사업을 하지 않는 곳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수소시범도시, 수소특화단지, 수소트램, 그린수소 생산 실증사업 등 내용도 다양하다. 정부도 수소를 미래먹거리로 인식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도 수소 환원 제철, 재생에너지 기반 그린 수소와 원전 기반 핑크 수소 생산, 관련 인프라와 산업 생태계를 강화한다고 공약했을 정도다. 모두가 수소를 말하지만, 수소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수소 산업의 현황과 한국의 정책상황을 짚고 수소 정책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연속기고를 진행한다.<편집자 주>
# 한국의 수소 정책: 제1차 수소경제 이행 기본계획
2021년 2월 시행된 「수소경제 육성 및 수소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수소법)」에 따라, 정부는 수소 분야의 첫 법정계획인 「제1차 수소경제 이행 기본계획(2021~2040)」을 수립했다. 이 계획은 ‘청정수소경제 실현’을 비전으로 설정하고, 수소의 생산·저장·운송·활용 전주기를 아우르는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한 4대 전략과 15대 실행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4대 전략은 ① 국내외 청정수소 생산 기반 확충, ②수소 저장·운송 등 유통 인프라 구축, ③ 다양한 분야에서 수소 활용 확대, ④기술, 제도, 안전, 국제협력 등 생태계 기반 강화 등이다.
15대 과제에는 그린·블루 수소생산 확대, 해외 청정수소 확보, 수소 유통망(배관망, 충전소) 구축, 발전 및 모빌리티 분야 활용, 산업부문 수소 전환, 기술개발과 인력양성, 표준화 및 안전 확보, 수소 클러스터와 도시 조성, 글로벌 협력 및 국민 수용성 제고 등이 포함됐다.
청정수소 공급 확대 측면에서 정부는 2030년까지 연간 25만 톤급의 그린 수소생산 기반을 마련하고, 2050년까지 300만 톤 규모로 확장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와 함께 수전해 수소의 생산단가를 ㎏당 3,500원에서 2030년까지 2,500원 수준으로 낮춘다는 계획도 포함됐다. 블루 수소의 경우 LNG 인수기지 인근에 블루 수소 클러스터를 조성하고, 2025년부터 생산을 시작한다는 구체적 일정도 명시되어 있다.
탄소 포집·활용·저장(Carbon Capture, Utilization and Storage, CCUS) 기술도 조기 상용화 대상이다. 특히 동해가스전 고갈 가스전을 활용해 연간 40만 톤 규모의 CCS 실증사업을 2025년부터 30년간 운영할 계획이다.
수소 유통 인프라 구축을 위해 정부는 수소 배관망을 산업단지와 발전단지 중심으로 구축하고, 수소 항만과 액화수소 플랜트, 암모니아-수소 전환 시설 등을 개발할 예정이다. 수소충전소는 2030년까지 660기, 2040년까지 1,200기 설치를 목표로 하며, 기존 주유소·LPG 충전소의 전환도 지원된다. 수소거래제를 도입하여 시장 기반 유통체계도 갖추겠다는 계획이다.
수소 활용 분야에서는 청정수소를 발전 연료로 사용하려는 방안이 담겨 있다. 석탄발전소에는 암모니아 혼소 기술을, LNG발전소에는 수소 혼소 기술을 적용하고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 제도((Renewable Portfolio Standard, RPS) 대상에 청정수소 발전을 포함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모빌리티 부문에서는 수소승용차·상용차 전 차종 개발, 수소버스의 광역·시외·고속버스 전환, 청소차 등 특수차량 조기 보급, 수소 기반 선박·트램·도심항공(Urban Air Mobility , UAM) 등 미래 운송 수단 상용화가 포함되어 있다. 이를 위해 생산능력 확보, 충전 인프라 확대, 보조금 지원 정책도 병행된다.
산업 분야에서는 수소산업단지 조성, 수소환원제철로의 전환, 석유화학 공정 대체, 시멘트 소성로 수소 연료화 등 수소 전환 기반 마련이 추진된다. 또한 기술개발, 인력양성, 국제표준 선점, 수소 안전성 확보, 글로벌 협력 확대, 수소 전문기업 육성 및 금융 지원 강화, 규제특구 지정 및 수소도시 조성 등 생태계 기반 조성도 병행된다.
제1차 수소경제 이행 기본계획은 블루 수소와 그린 수소 생산 기반을 확대하고, 이를 중심으로 한 국내 수소 공급 체계를 구축하며, 수소 활용을 위한 기반 조성을 통해 청정수소 중심의 수소경제 생태계로의 전환을 도모하고자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계획 전반은 생산, 유통, 활용, 인프라, 기술개발 등 전 주기를 포괄하지만, 실제로는 대규모 생산 기반 확립과 수요처 확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 수요 창출보다 공급이 먼저?
앞서 지적했듯, 기존 산업에서의 활용 외에 실질적인 추가 수요는 아직 형성되지 않았다. 일부 상용화된 기술을 제외하면 대부분 새로운 기술 영역에 머물러 있으며, 이들이 실제 상용화로 이어질지도 확언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지금 당장 많은 양의 저배출 수소가 필요하지는 않다.
그리고 저배출 수소 특히 블루 수소의 핵심 기술은 CCUS 기술의 확보다. 하지만 이 탄소 포집 기술은 앞서 언급했듯 완벽한 기술이 아닐뿐더러, 기후위기 대응의 이점보다 부정적인 면이 더 두드러져 있다. 이런 와중에 정부가 추진 중인 사업은 동해 고갈 가스전을 활용하여 연간 40만 톤을 저장한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이 계획을 2023년에 확대하여 연간 120만 톤을 저장하는 것으로 변경하고 2025년에 사업에 착수해 2030년에 저장을 시작하는 것으로 사업 규모와 기간을 변경했다. 이재명 정부도 이에 대한 관심을 나타낸 상황이다. 그렇다면 이 계획은 실현할 수 있고 타당한 계획일까?
고갈된 가스전은 수백만 년 동안 가스를 가두어 둔 자연적 구조로 이산화탄소 저장에 가장 적합한 장소로 여겨지는 것은 사실이다. 동해 고갈 가스전에 연간 최대 120만 톤의 이산화탄소를 저장할 수 있다는 평가도 있다. 해외에서도 이와 같은 가스전 저장 방식이 활용되기에 국제적 흐름에 부합하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에도 역시나 적잖은 문제가 있다. 고갈된 가스전을 활용한 CCS에 대한 주된 비판은 ①이산화탄소 누출 위험과 환경 영향, ②기술적 불확실성과 안전성, ③경제성 부족, ④ 기후위기의 근본적 대응이 아닌 ‘그린워싱’ 수단, 이렇게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가장 먼저 비판을 받는 지점은 지층에 120만 톤의 이산화탄소를 주입할 때 기존 시추공이나 단층 구조 등 미확인 경로를 통해 재누출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주입 과정에서 압력 변화로 지진을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지진이 발생하면 당연히 이산화탄소 누출의 가능성은 커진다. 누출 시 이산화탄소가 해양으로 유입될 경우 해양 생태계에 미칠 영향도 충분히 검토되지 않았다.
또한 저장 용량의 한계도 문제다. 동해 고갈 가스전의 저장 용량은 약 1,200만 톤 수준으로 연간 국가 배출량을 고려하면 미미한 효과만 기대할 수 있다. 이처럼 극소량을 저장하기 위해 들어가는 비용도 막대하다. 실제 동해 CCS 사업 역시 약 2조9천억 원을 정부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가스전을 활용한 CCS와 같은 기술이 기후위기 대응의 본질을 흐릴 수 있다는 점이다. 화석연료 기업들은 CCS를 통해 기존 사업 모델을 유지하면서도 탄소 감축 노력을 하는 것처럼 포장할 수 있다. 이는 석탄 및 가스 발전소의 조기 폐쇄나 재생에너지로의 근본적인 전환을 늦추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 수조 원의 정부 재정을 투입해 블루 수소 생산을 위한 CCUS를 추진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 정책 결정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무리한 블루 수소 양산이 아니라, 이재명 정부가 천명한 바와 같이 햇빛과 바람을 중심으로 한 재생에너지 기반의 전환 정책이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