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지에 사는 사람이 내게 맛집을 추천해달라고 할 때 나는 우물쭈물한다. 내가 평소에 자주 가는 식당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런 식당을 기대하는 건 아닐 것이다.
서귀포에서 문학 프로그램이 끝나고 뒤풀이 장소를 알아볼 때 식당을 선뜻 추천하지 못하는 나는 서귀포를 정말 모르는 사람인 것 같아 자괴감이 든다. 현지인이라고 해서 여행자의 기분을 상하게 할 권리는 없다.
제주도를 좋아하게 만든 이미지에 큰 영향을 준 노래가 최성원의 ‘제주도의 푸른 밤’이다. “아파트 담벼락보다는 바달 볼 수 있는 창문이 좋아요.” 이 노랫말에 등장하는, 바다가 보이는 창문은 제주도 사람에겐 흔한 풍경이지만 여행자에게는 너무나 근사한 뷰가 된다. 그래서 최근에 바다 뷰가 좋은 곳마다 카페가 들어서 있는 거겠지.
이다혜의 책 『여행의 말들』(유유, 2021)에서도 이 노래가 여행의 말들 중 하나로 언급된다. “노랫말을 처음 들었을 때 막무가내로 당장 제주도에 가고 싶어 잠을 이루지 못했다. 제주도의 푸른 밤은 상상으로도 아름답지만 실제로도 나를 실망시킨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종달리의 밤은 유난히 푸르다. 거기에는 그냥 밤이 있고 바다가 있다. 그리고 나는 제주도 사람이 아니라서, 일상에서 풀려난 기분을 한껏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제주도 사람이 아니라서” 제주도를 할 수 있는 데까지 느낄 수 있다. 제주도 사람인 나는 제주도를 느끼는데 오히려 한계가 있을 수 있다. 이주한 예술가들이 제주도의 특징을 잘 잡아내 예술로 표현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현지인 맛집’이라는 말을 쓰는 것처럼 여행자와 현지인의 동선은 잘 겹치지 않는다. 서로 일부러 피하려고 하는 것도 아닐 텐데 말이다. 하지만 요즘의 여행 패턴이 마을 길까지 살피는 것으로 변화하고 있어서 현지인들은 여행자들을 피해 자신들만의 장소를 찾아다니는 형국이다.
하지만 영특한 여행작가나 기자들이 제주도의 비경을 찾아내 소개하고, SNS 인플루언서가 그곳에서 인증 사진을 찍으면서 금세 힙한 여행지로 부각된다. 그럼 이제 현지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내가 한때 자주 가는 산책길이 도두봉이었다. 해안도로 찻집에서 커피를 마시고 그곳에 오르곤 했다. 오랜만에 그 작은 언덕을 오르는데, 여행자들이 많아서 의아했다. 산꼭대기에 맛집이 있을 것도 아닌데, 어느 지점에서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닌가. 알고 보니 그곳은 이른바 도두봉 키세스존이었다.
“신혼부부 밀려와 똑같은 사진 찍기 구경하며”라는 노랫말과 같이 나는 그들이 사진 찍는 걸 구경하다 나도 따라 줄을 서서 사진을 찍으려는 생각은 잠시 했다가 돌아서 걸어내려왔다. 어쩌다 동네 산책길이 핫플레이스가 된 건지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내려왔지만 한동안 그곳을 찾지 않고 있다.
제주도에는 최근에 마을 풀장이 많이 생겼다. 바다가 지척인데 인공 풀장을 만들어 물놀이를 하는 마을도 있다. 그래도 아직은 그런 곳까지 여행자들이 찾아오지는 않는 것 같다. 휴양지에 사는 사람들도 휴가가 필요하다. 이제는 8월에 금능해수욕장이나 함덕해수욕장에 가지 못한다. 가면 고생바가지일 게 뻔하기 때문이다.
프리랜서인 내게 연차나 휴가라는 말은 없어서 언제 어떻게 휴가를 가져야 할지는 모르겠으나, 그래도 8월이 가기 전에 여행자들이 없는 한적한 곳에 가서 바닷물에 발이라도 담그고 싶다. 몇 해 전만 해도 그곳이 서귀포 황우지 해안이었는데, 이젠 그곳도 점령당한 지 꽤 됐다.
'시인부부의 제주탐독'은 김신숙 시인과 현택훈 시인이 매주 번갈아가며 제주 작가의 작품을 읽고 소개하는 코너다. 김신숙·현택훈 시인은 제주에서 나고 자랐다. 부부는 현재 시집 전문 서점 '시옷서점'을 운영하며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면서 제주 작가들의 활동 영역을 넓히는 다양한 기획도 부지런히 추진한다. 김신숙 시인은 시집 『우리는 한쪽 밤에서 잠을 자고』, 동시집 『열두 살 해녀』를 썼다. 현택훈 시인은 시집 『지구 레코드』, 『남방큰돌고래』, 『난 아무 곳에도 가지 않아요』, 음악 산문집 『기억에서 들리는 소리는 녹슬지 않는다』를 썼다. 시인부부가 만나고, 읽고, 지지고, 볶는 제주 작가와 제주 문학. '시인부부의 제주탐독'은 매주 금요일 게재한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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