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이왓에 부는 바람』, 김영화, 이야기꽃, 2022
 『무등이왓에 부는 바람』, 김영화, 이야기꽃, 2022

제주도 어디선가 아코디언 소리가 들리면 그 자리에서 풍경과 함께 흔들리는 음악 소리에 귀를 열면 좋을 것이다.

제주도 곳곳을 다니며 자연과 어우러진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모임이 있다. 전직 영어교사, 직장인, 농부, 초등교사, 소방관 등으로 구성된 바숨(바람이 숨결이 될 때)이다.

설문대할망 이야기를 그림과 함께 풀어낸 『큰할망이 있었어』를 낸 김영화 작가가 새 책을 출간했다. 동료 예술가들과 동광리 어르신들과 함께 조 농사를 지으며 만든 『무등이왓에 부는 바람』(김영화, 이야기꽃, 2022)이다. 이 책 안에 바숨의 모습이 있다.

한해 농사처럼 영근 이 책은 무등이왓을 다루고 있다. 잃어버린 마을 무등이왓에는 큰 팽나무가 있다. 사람들은 그 나무 아래 앉아 건들거리는 바람을 맞는다. 그 바람은 4·3 때도 불던 바람이다. 세월이 흘렀지만, 무등이왓의 스산한 공기는 바뀌지 않았다.

1948년 가을, 큰넓궤에 숨어있던 사람들은 두고 온 밭을 걱정했을 것이다. 어서 난리가 끝나 밭으로 돌아가기를 손꼽아 기다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대부분 돌아가지 못했다.

 4·3 당시 무등이왓 같은 잃어버린 마을이 제주 4·3연구소의 조사에 의하면 108개로 파악하고 있다. 소개령이 내려져 불태워지고, 학살당하거나 뿔뿔이 흩어진 뒤 재건한 마을도 있지만 대부분 버려진 채 차가운 바람만 불었다.

무등이왓 마을을 걸으면 그해의 이야기가 들려올 것만 같다. 돌담이나 대나무숲이 남아 마을의 기억을 증언한다. 130여 채 넘는 집들이 있던 그때 마을 사람들은 밭에서 일을 하고, 저녁이면 모여서 밥을 나누어 먹었을 것이다.

그후 73년이 지났다. 2021년 사람들이 다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밭을 일구어 작고 노란 좁씨를 뿌렸다. 사람들은 힘을 모아 농사를 지었다. 그리고 마침내 수확을 했다. “참새 떼가 절반은 먹고” 남은 좁쌀을 거두었다.

농사를 지을 때 실제 있었던 일을 책에 담았다. 그 중에 인상적인 부분이 초벌 매고, 두벌 매는 사이 누군가 호미를 잃어버린 부분이다. 호미를 찾으려고 했으나 찾지 못하자 누군가 “ᄎᆞᆽ지 말라게. 흘친 골갱이로 지신님들 밤새낭 검질매엄실 거여.”라고 말한다. 땅과 함께 사는 제주 사람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그해 큰넓궤에 숨어있다가 숨을 거둔 156명을 위로하는 제를 지냈다. 흰 쌀밥에 숟가락을 꽂고 동구리(눈깔사탕)도 그 옆에 놓았다. 그 당시 희생당한 어린 넋들을 위해서다. 알곡으로 술을 빚어 큰넓궤 깊숙한 곳에 술을 저장했다.

김수열 시인은 시를 읊었다. 시 제목이 「솎고 돌아오는 길」이다. “아무런 죄 없는 것들을 솎아내고 돌아오는 길/ 누군가 대신 솎아져/ 지금 내가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에/ 모골이 송연해진다.”고 썼다. 김영화는 시를 읽는 모습을 보며 “시인의 목소리에 노을이 묻었습니다.”며 감화되었다.

조밭을 배경으로 아코디언 연주가 이루어졌다. 아코디언 소리에 어울려 조들이 춤을 췄다. 바숨이라는 팀 이름처럼 무등이왓에 부는 바람과 어우러져 음악이 흔들렸다. 바숨은 매주 토요일 제주담을매장 야외에서 열리는 ‘자연 그대로 농민장터’에서, '제성마을 왕벚나무 살려내라' 집회장 등에서 아코디언을 연주한다.

지난 9월 30일에는 ‘조와 당신을 위한 작은 음악회’가 무등이왓에서 열렸다. 가수 조성일은 노래를 불렀고, 춤꾼 박연술은 춤을 췄고, 바숨은 아코디언을 연주했다. 그것은 제목 그대로 ‘잃어버린 마을에서 보내는 선물’이었다.

숨결은 생명의 상태를 말한다. 바람은 곡식을 잘 익게 만든다. 제주도에 바람이 부는 한 생명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함께 살아야 한다. 그러면서 우리의 마음도 점차 영글어 갈 것이다.

현택훈, 김신숙 '시인부부'
현택훈, 김신숙 '시인부부'

'시인부부의 제주탐독'은 김신숙 시인과 현택훈 시인이 매주 번갈아가며 제주 작가의 작품을 읽고 소개하는 코너다. 김신숙 시인은 시집 『우리는 한쪽 밤에서 잠을 자고』, 동시집 『열두 살 해녀』를 썼다. 현택훈 시인은 시집 『지구 레코드』, 『남방큰돌고래』, 『난 아무 곳에도 가지 않아요』, 음악 산문집 『기억에서 들리는 소리는 녹슬지 않는다』를 썼다. 두 부부가 만나고, 읽고, 지지고, 볶는 제주 작가와 제주 문학. '시인부부의 제주탐독'은 매주 1회 게재한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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