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지역 작가들의 작품들을 따뜻하게 읽어온 김신숙·현택훈 두 시인의 [시인부부 제주탐독]이 이번 회로 마무리 됩니다. "서로 함께 부르는 노래"를 찾아나가는 두 시인. 두 시인이 함께 불러갈 "내일의 노래"들을 기대합니다.<편집자 주>
제주장애인주간활동센터와의 인연은 3년 정도 되었다. 나는 제주역사 강사로, 아내는 제주어 강사로 뇌병변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수업을 진행했다. 특수교육에 대한 이해가 없던 우리는 처음에는 소통의 어려움 때문에 시행착오를 겪어야만 했다. 1년이 지나고 그래도 나름 소통이 된 아내는 살아남았고, 나는 계약 연장에 실패했다. 아내는 혼자 시창작 수업 등으로 인연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다시 1년이 지나 아내가 새로운 프로젝트를 만들면서 나도 참여하게 되었다. 시, 그림, 글쓰기 수업 등을 진행하고서 미디어 표현까지 해보는 프로그램이었다. 발화가 어려운 그들과 카카오톡으로 마음을 주고받으며 시를 쓰고, 그림을 그렸다. 클로이, 강건모 등 강사도 함께 했다.
그 프로그램을 통해 고혁준, 김재홍, 김혁종, 박철, 임혜성, 최한승 등 여섯 명의 작가가 탄생했다. 글과 그림을 모은 책을 발간했다. 강건모의 도움으로 그들의 음성을 녹음하고, 영상을 만들었다. 말소리를 내는 것조차 버겁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들은 분명하게 말을 하고 있었다. 충분히 표현하며 예술을 펼치고 있었다. 평소에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못했다. 그래서 책 제목이 ‘너의 목소리가 들려’이다. 포근한 표지는 클로이의 작품이다.
아트락소극장에서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늦가을 갑자기 추위가 온 저녁이었다. 싸락눈이 내린 날이었다. 옷깃을 여미며 소극장에 들어갔더니 작가들은 휠체어를 탄 채 한창 리허설을 하고 있었다. 막이 오르자 빛이 호흡 따라 흔들리는 것 같았다.
임혜성은 여섯 살까지 세브란스 병원에서 지냈는데, 그때 어린 환자들 앞에서 한 가수가 '아빠와 크레파스'를 불러주었다고 한다. 그런 추억이 있어서 복을 많이 받은 아이라고 하는 부분에서 어느새 내 눈가에도 눈물이 맺혔다. 불 꺼진 객석에 앉은 가족들이 훌쩍이는 소리도 들렸다.
저자로 참여한 장애인 작가들은 그 어느 때보다 밝게 웃었다. “너를 포근히 안아줄게/ 너 하고 싶은 것 다 해/ 나 힘든 거 신경 쓰지 말고”라는 김재홍의 시 「휠체어의 마음」처럼 따뜻한 작품들이 많다. 모두 뿌듯한 마음으로 무대에 올랐다.
수업 시간에 그들은 작은 농담에도 크게 웃어주었다. 대부분 노래를 좋아하며 감성적이다. 서정성을 충만히 지니고 있다. 여러 예술 활동을 펼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매주 수요일 오전마다 아내와 함께 제주장애인주간활동센터을 찾아 갔는데 수업이 끝난 지금은 그 시간이 되면 왠지 허전하다. 아내는 내년에도 그들과 함께 할 새로운 예술 활동을 궁리 중이다.
부창부수(夫唱婦隨)의 뜻은 남편이 먼저 노래하고, 아내가 따라 부른다는 뜻인데, 우리 부부는 이 순서가 바뀌었다. 어디 우리 부부뿐이랴. 더욱이 누가 먼저면 어떠한가. 서로 함께 부르는 노래면 그만이다. 내일은 또 내일의 노래를 불러야지.
'시인부부의 제주탐독'은 김신숙 시인과 현택훈 시인이 매주 번갈아가며 제주 작가의 작품을 읽고 소개하는 코너다. 김신숙 시인은 시집 『우리는 한쪽 밤에서 잠을 자고』, 동시집 『열두 살 해녀』를 썼다. 현택훈 시인은 시집 『지구 레코드』, 『남방큰돌고래』, 『난 아무 곳에도 가지 않아요』, 음악 산문집 『기억에서 들리는 소리는 녹슬지 않는다』를 썼다. 두 부부가 만나고, 읽고, 지지고, 볶는 제주 작가와 제주 문학. '시인부부의 제주탐독'은 매주 1회 게재한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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