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선8기 오영훈 도정은 '도민 모두가 주인되는 자치분권 제주'를 내세우며 제1호 공약으로 ‘제주형 기초자치단체’ 도입을 내놓으며 국내에서 시도된 적 없는 기관통합형을 언급한 바 있다.
이에 제주도는 8월 중으로 행정체제개편위원회를 구성하고 오는 10월부터 내년 12월까지 '제주형 기초자치단체' 도입 방안 마련을 위한 연구용역(15억원)을 진행한다.
제주도는 그동안 제기됐던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제주에 가장 적합한 최적의 대안을 도출한다고 하지만 일각에서는 기관통합형으로 답을 정해놓고, 그에 대한 근거를 만들려는 '꼼수' 아니냐고 우려하고 있다.
지방자치 2.0 시대 기초자치단체 도입이 상수라면 과연 어떤 형태로 가야 할까.
'풀뿌리민주주의 회복'과 '지역균형발전' 두 가지 원칙으로
기초자치단체 도입을 추진한다면 논의해야 할 것들이 많다.
먼저 행정구조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현행처럼 1개 도 2개 시로 갈 것인지, ‘잃어버린 4개 시·군’ 형태를 되살릴 것인지, 1개 도 3개 시로 새롭게 구성할 것인지 다양한 선택지를 두고 아직 도민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어서다.
기초자치단체 수는 생활자치와 풀뿌리민주주의와 비례하지만 행정 효율성과는 반비례한다. 따라서 어디에 방점을 두느냐에 따라 필요한 기초단체 수는 달라질 수 있다.
오영훈 제주지사는 5~6개가 적당하다는 견해를 비췄다. 제주투데이 강봉수 논설위원은 칼럼을 통해 3개의 기초자치단체를 제안했다. 여기에 신용인 교수가 주장하는 읍면동 자치를 통해 논의의 폭을 확장시킬 수 있다. (☞관련기사:제주형 기초지차제는 진짜 민주주의로!)
'몇 개의 기초자치단체를 신설할 것인가'와 더불어 '행정구역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도 고민해야 한다.
강봉수 위원은 풀뿌리민주주의 회복과 지역균형발전 이 두가지 원칙이 흔들리면 기초자치단체 부활은 의미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행정구역 조정에 있어 인구, 산업, 문화, 교육, 연령 등의 고려가 반드시 필요하다.
좌광일 사무처장은 "3개의 기초자치단체를 국회의원 선거구로 조정하는 것이 논란을 최소화 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했고, 강봉수 논설위는 도심권과 읍면지역의 불균형을 해소하려면 3개의 도농복합형 기초자치단체가 가장 적절해 보인다고 했다.
기초 수와 행정구역 조정까지 합의된다 해도 끝난 게 아니다. 청사를 어디에 설치 할 것인가도 큰 과제다.
또한 기초 폐지로 권한이 확대된 도의회가 과연 재도입에 적극적으로 나설지도 의문이다.
'느닷없이' 등장한 '기관대립형'이란?
기초자치단체 폐지 이후 지난 16년간 '기초부활'과 '행정시장 직선제' 논의가 꾸준히 제기됐지만 이는 전국적으로 채택하고 있는 '기관대립형'을 전제로 했다.
기관대립형이란 국내에서 채택하고 있는 단체장-의회형을 말한다. 단체장과 의원은 4년 임기로 각기 주민이 선출해 상호 간 견제와 균형을 이루도록 하고 있다. 제주도를 제외한 국내 지자체는 모두 이같은 기관 구성을 하고 있다.
경기도 기관 구성을 보면 광역자치단체로 경기도(도지사:김동연)와 경기도의회(의장:염종현)가, 기초자치단체로 수원시(시장:이재준)와 수원시의회(의장:김기정)가 설치 돼 있다.
문제는 오영훈 제주지사가 후보시절 '제주형'을 전제로 꺼내든 '기관통합형' 카드다. 전국에서 한 번도 시도된 적 없는 기관통합형을 제주도에서 실험해 보자고 언급한 것.
기관통합형은 의회가 자치단체 견제기구로 기능하는 현 제도와 달리 의결기능과 집행기능을 단일기관으로 통합하는 구성을 말한다.
기관통합형 아래 다양한 조직구성이 가능하지만 선거를 통해 기초의회를 구성하고, 선출된 의장이 자치단체장 역할까지 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해외 경우를 살펴보면 영국의 '의회+위원회' 모델의 경우 의장은 상징적 역할만 할 뿐, 실질적 행정 집행은 수석행정관이 한다.
의결기능을 하는 분과위원회 아래 집행기능을 하는 실국을 설치, 공무원 조직은 의회 결정을 준비·보좌하고 시행하는 역할을 한다.
인구 5만 미만 소규모 자치단체에서 주로 채택하는 미국 모델 '위원회' 형은 의회를 따로 구성하지 않고 위원으로 구성하는 합의제 위원회가 의결기관과 집행기관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단체장은 위원 중 호선하지만 의례적 기능만 수행한다.
프랑스나 독일 일부 지역에서 채택한 '의회+시장형' 모델도 있다. 직선제로 의회를 구성하고 선출된 의원 가운데 다시 선거를 통해 의원 겸 단체장을 뽑는다. 이때 단체장은 위원회와 지위가 동등하다.
목적은 시민 권력 강화
구성은 다양해도 기관통합형의 목적은 의회기능 강화에 있다.
현재 제주도는 단체장을 '제왕적 도지사'로 불릴 만큼 행정 권력이 세다. 따라서 기관통합형 기초자치제 도입을 통해 주민 대표기관인 의회에 모든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자는 것이다.
주민자치연대 좌광일 사무처장에 따르면 이론상으로는 '민주 정치'와 '책임 행정' 구현이 가능해 학회에서는 오래전부터 기관통합형 구성이 거론돼 왔다.
의결기관과 집행기관 사이 대립·갈등 발생 소지가 없어 행정 안정과 능률을 담보할 수 있다.
집행기관이 주민에 의해 선출된 의원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자치 행정에 주민 의사가 반영될 수밖에 없다.
또한 의결과 집행의 통합으로 정책 효과 극대화도 기대할 수 있다.
치명적 단점이 있다. 의원 한 명이 의결기관이란 말이 있듯, 단체장을 세워둔다고 해도 이는 상징적 역할만 할 뿐이다. 따라서 지방행정을 총괄 할 단일 지도자가 없어 행정의 종합성과 통일성을 이루기가 어렵다.
또한 하나의 기관이 정책을 개발하고 시행하고 평가하므로 제대로 된 견제가 불가능하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할 수 있어, 언론의 권력 감시 기능이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
문제는 기관통합형의 경우 찬반을 떠나 사회적 논의를 제대로 해본적이 없다는 점이다.
좌광일 사무처장은 이같은 점을 우려하며 "기초자치단체 폐지 전 기초의회 자질 논란도 많아 역량 확보가 현재로써 가능할지도 의문"이라고 설명했다.
제주도 입장은?
느리더라도 다양한 방안을 두고 종합적으로 검토해 제주만의 최적의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견해와, 기존 기관대립형 구성을 전제로 논의된 내용을 정리해 민선8기 안에 마무리하자는 견해가 상충하고 있다.
한 축에서는 기초의회 없이 자치단체만 도입하자는 주장과, 현제 단일계층구조를 그대로 두고 시장직선제만 도입하자는 주장도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오영훈 지사가 공식적으로 입에 올린 기관통합형의 경우 기존 논의를 원점화 시키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또한 제주도가 15억원을 들여 진행하는 기초자치단체 도입을 위한 연구용역의 경우 기관통합형 모델을 전제로 이를 뒷받침할 근거를 마련하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반면 정부 설득용 명분으로 새로운 행정체제 시도만큼 좋은 것도 없다는 옹호론도 존재한다.
제주도 관계자는 "기초자치단체 도입을 위한 연구용역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최적의 방안을 도출하는 데 있다"면서 "기관통합형 모델은 단지 제시만 됐을 뿐,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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